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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사회책임경영②] 선진 글로벌 기업들 실천 사례
[기획연재/사회책임경영②] 선진 글로벌 기업들 실천 사례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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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미지 공든 탑 쌓고...잠재시장 창출 밑거름으로

“1921년에 비료 저장소가 폭발해 60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죠. 폭발 진동이 인근 도시 만하임까지 갈 만큼 위력적이었다고 해요. 2차 세계대전 때는 무려 4만개의 폭탄을 연합군이 이 지역에 쏟아 부었죠.” 세계적인 화학기업 바스프(BASF) 본사가 있는 독일 중부 루드빅스하펜. 촘촘히 들어선 200여개의 크고 작은 공장이 우선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곳에서 만약 사고가 일어난다면? 공장 투어 안내를 맡은 마테른에게 노파심에 던진 질문에, 그 후로는 특별한 사고가 없었다며 안심시킨다.
그는 바스프에서 평생을 일하다 정년퇴직한 노동자 출신이다.


그래도 쉽사리 불안감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공단 바로 옆으로 라인강이 흐른다.
“라인강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전체 물류의 50%가 라인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위험한 화학물질은 배로 운반할 수 없어요. 사고가 나면 라인강 전체가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바스프는 오염 확산을 막는 2중, 3중의 안전장치도 갖추고 있다.


바스프 같은 화학기업에 사회책임 경영은 이제 생존조건과 같다.
유럽에선 70년대부터 환경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기업활동을 감시하는 환경단체도 셀 수 없이 늘어났다.
이들은 기업에 치명타를 가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기업으로선 사회책임 경영을 통해 공동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신뢰를 얻는 것밖엔 길이 없다.
바스프 지속가능성센터 아네트 쿤데는 “(이러한 전략은) 기업의 위험을 낮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바스프, 이해 관계자에게 정보 공개

바스프는 우선 모든 정보를 직원, 소비자, 환경단체, 지역주민 등 이해 관계자에게 숨김없이 공개했다.
아네트 쿤데는 “88년부터 발간한 환경보고서는 믿을 만한 자료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며 “좋은 수치가 됐든 나쁜 수치가 됐든 조사결과를 사실 그대로 보고서에 다 적어, 바스프가 하는 일을 확실하게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지역주민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바스프가 진출한 세계 39개국에서 57개의 ‘지역자문위원회’(CAP)가 운영되고 있다.


8천여개의 다양한 화학 제품을 쉬지 않고 쏟아 내는 바스프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공룡’이기도 하다.
바스프는 독일 최대의 전력 소비자다.
매년, 3500만명이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전기뿐 아니다.
4600km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시베리아에서 천연가스를 직접 끌어다 쓴다.
에너지 정책은 기업 자체의 비용절감 측면에서도 중요한 관심사인 셈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스프가 내놓은 비장의 카드가 바로 유명한 ‘페어분트’(Verbund)다.
간단히 말하면 일종의 집적화 전략이다.
예를 들면 루드빅스하펜에 모여 있는 200여개의 바스프 공장은 생산한 재료와 제품을 내부에서 주고받고, 폐에너지를 서로 끌어다 재활용한다.
아네트 쿤데는 “루드빅스하펜에서만 한해 3억유로의 물류비와, 1억5천만유로의 에너지, 5천만유로의 인프라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며 “페어분트가 바스프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바스프는 루드빅스하펜 말고도 벨기에, 미국, 중국, 말레이시아에 5개의 페어분트를 건설했다.


그러나 바스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네트 쿤데는 “기업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며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뭘 원하는지 발 빠르게 잡아내고, 그걸 현실화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기업 경영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원칙을 일상적인 비즈니스 활동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스프는 환경 문제에서 벗어나 고용, 인권, 지역사회 개발, 빈곤퇴치 같은 사회적 이슈로 관심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지난 2001년 내놓은 사회책임 보고서가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아네트 쿤데는 “좋은 기업은 항상 자기 기업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사회책임 경영에 투자하는 건 결국 기업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회책임 경영의 2개 축을 이루는 환경문제와 노동, 인권 같은 사회적 이슈는 조금 성격이 다른 측면이 있다.
환경은 지역적인 반면, 예를 들어 인권은 국제적, 보편적이다.
아동 노동으로 나이키가 국제적인 비난의 표적이 됐던 건 바로 인권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만약 환경오염이 문제였다면 다른 나라 소비자들이 그처럼 들고 일어섰을 가능성은 적다.
최근 들어 사회책임 경영의 강조점이 점차 이러한 사회적 이슈로 옮겨 가고 있지만,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기업이 아직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요즘 영국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동상 건립 문제로 시끄럽다.
애초 런던 시내 중심부인 트라팔가 광장에 만델라 동상을 세울 예정이었는데, 런던 시의회 일부 의원이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두 손을 열정적으로 내젓는 동상 모습이 트라팔가 광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깬다는 게 이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이들의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한다.
한때는 남아공 백인정권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엄숙한 장소에 흑인 동상이 서는 게 달가울 리 없을 거라는 분석이다.
서구 사회에서도 인권과 인종문제는 여전히 복잡한 문제라는 걸 잘 보여 주는 사건이다.



BT “기업 평판 높아지면 매출도 쑥쑥”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은 모두 사회책임 경영을 고민합니다.
브리티시텔레콤(BT)은 97년부터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지요.” 영국을 대표하는 통신기업 BT 던스턴 호프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BT의 앞선 출발을 강조하며 다양한 활동 상황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최근 만델라 동상 건립문제와 관련해 가장 흥미를 끈 건 아무래도 BT의 독특한 인사정책이다.
BT에선 인종차별이 오히려 해악이다.
던스턴 호프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직원들의 ‘다양성’이 우리의 가장 큰 경쟁력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BT는 소수인종, 장애자, 성적 소수자를 적극 채용한다.
“영국에는 많은 인종이 있지요. 아프리카인도 있고 인도인도 있어요. 그들을 직원으로 데려오는 게 점점 중요해집니다.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좀 더 이해하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죠.” 던스턴 호프 지속가능성 책임자의 설명이다.
BT는 이들 소수자 그룹을 미래 유망 시장으로 본다.
지금도 장애자는 450억파운드, 소수인종은 150억파운드, 성적 소수자는 100억파운드의 구매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BT가 비교적 일찍 사회책임 경영을 도입할 수 있었던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BT는 84년 대처 수상이 민영화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공기업이었다.
던스턴 호프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노동 정책, 적극적인 사회 공헌 등 사회책임 경영이란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추구해 온 것과 아이디어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관심이다.
또한 그는 “10대 주요 대주주 가운데 5곳이 사회책임 문제를 토론하자고 요구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사회책임 경영을 둘러싼 논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회사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꾼 지난 2000년, 사회책임 경영이 과연 계속 유지할 가치가 있는 건지 경영진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며 “기업 이미지를 위해서나, BT의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열쇠라고 그때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사회책임 경영에 본격적으로 힘이 실리기 시작한 건 물론이다.


BT는 사회책임 경영과 고객 만족도를 연관짓는다.
던스턴 호프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서비스 품질, 가격과 함께 고객이 BT 제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BT는 기업 이미지와 평판이 1% 높아지면 고객만족도가 0.42% 올라간다고 분석한다.
고객만족도가 올라가면 당연히 매출은 늘어난다.
그는 “사회책임을 비즈니스와는 완전히 다른 거라고 생각해선 성공할 수 없다”며 “비즈니스 목표와 사회책임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루드빅스하펜, 런던=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장광/ 한겨레기업평가센터 컨설턴트 lite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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