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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체인식산업- 지문으로 열고 눈동자로 잠근다
[특집] 생체인식산업- 지문으로 열고 눈동자로 잠근다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4.0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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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도입 눈앞, 은행선 실용화 바람…DB 호환·사생활 침해 등은 미완의 숙제

올해 1월5일부터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대다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미국 내 주요 공항과 항구의 입국심사대에서 좌우 집게손가락의 지문을 대고 디지털 카메라로 얼굴을 돌려야 비로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9·11 테러’ 이후 테러 위협에 바짝 긴장한 미국이 ‘생체정보’를 이용한 출입국 시스템을 시범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사증면제 협정 또는 특별협정을 맺은 몇몇 나라들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은 이에 응해야 한다.
물론 한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지문이나 얼굴, 홍채 등 신체 일부분을 이용해 출입문을 통과하고 금융거래를 하는 일은 지금까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상 속의 세상이 올해엔 실생활에서도 펼쳐질 전망이다.
미국이 올해부터 생체정보를 이용한 출입국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생체인식 관련 시장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생체인식이란 사람의 생체정보를 이용해 개인을 식별하는 학문 또는 기술이다.
생체인식에 쓰이는 정보들은 여러 가지다.
얼굴과 지문, 홍채와 정맥을 비롯해 손 모양, 음성과 필적 등이 모두 본인 식별에 쓰이는 갖가지 정보들이다.
온몸이 곧 열쇠이자 신분증인 셈이다.


각각의 인식기술은 장·단점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지문인식이다.
사람마다 다르고 평생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생체정보보다 먼저 연구에 들어가 기술진보가 가장 빠르고, 관련 센서와 장비의 발달속도가 빠르다.
현재 국내에서 생체인식 관련 분야에 뛰어든 업체는 대략 40~50여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60% 가량이 지문인식 분야에 주력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5년께 바이오여권이 종이여권 대체

하지만 몇 년 동안 생체인식 시장은 지리멸렬한 상황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생체인식 기술 자체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이 시장형성을 막아 왔다.
여기에는 사생활 침해 문제와 생체정보 등록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등이 복합 작용했다.
관련 장비는 아직도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는 데다 기술적으로도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았다.
게다가 눈길을 끌 만한 대형 도입 사례조차 거의 없어, 아직까지 실생활과 떨어진 공상과학 영화 속의 기술 정도로만 여겨져 온 것이다.


하지만 올해엔 사정이 좀 다를 듯하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앞장선 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데다 기술발전으로 고집적·고효율 장비가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부품값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장비를 구입하는 부담도 크게 줄었다.
또한 9·11 테러 이후 생체인식 기술이 차세대 인증 시스템으로 각광받으면서 일반인의 거부감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역시 가장 반가운 소식은 잇따른 대형 프로젝트로 ‘먹잇감’이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은 국내 정부 부처가 손잡고 추진하는 출입국 관리 시스템이다.


지난해 11월 중순, 건설교통부는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인천국제공항 허브화 세부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오는 2005년까지 생체인식형 여권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생체인식 정보를 이용해 출입국 관리는 물론, 생체인식 기능이 들어간 여권과 비자를 도입해 출입국자 관리와 범죄예방에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2005년 하반기께면 지금의 종이여권은 IC칩이 박힌 스마트카드 형태로 바뀐다.
이 IC칩에 본인의 생체정보를 넣게 된다.
삽입되는 생체인식 데이터는 국제민간항공(ICAO)에서 정한 표준에 따라 얼굴 데이터를 기본으로 홍채와 지문정보를 선택, 추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교육원이 주축이 돼 지난해 7월 사업자 선정에 들어간 결과 삼성SDS(얼굴), 테스텍(지문), 세넥스테크놀로지(홍채) 컨소시엄을 연구과제 수행업체로 선정했다.
이들 업체는 올해 10월께 시범 서비스를 선보인 뒤 2005년 하반기께 상용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사업의 파급 효과는 기대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업계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데 기대하는 바가 크다.
겉보기엔 건설교통부가 앞장선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출입국 관리와 여권 발급 등에 직접 관련된 법무부와 외교통상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기술적인 부분은 정통부가, 행정상의 문제는 행정자치부가 각각 담당하는 등 국가 주요 부처가 긴밀히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생체인식 출입국 시스템은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체정보를 등록하는 대가로 국내에서의 활동 제약을 완화시켜 주려는 서비스 성격이 강하다”며 “범죄 방지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업계에서는 생체인식 여권 시스템이 구축되면 장비구축 비용만 3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세넥스테크놀로지의 이봉준 과장은 “올해 7월까지 복합 생체인식기 개발이 끝나면 8월부터 법무부와 외교통상부에서 실질적으로 진행할 구축사례가 나올 것”이라며 “국내의 모든 생체인식 업체가 탐내는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로는, 주민등록증 위·변조 방지 시스템이 있다.
전국 동사무소의 민원서류 자동발급기에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민원인이 주민등록증을 넣고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대면, 발급기는 우선 주민등록증의 지문과 손가락의 지문이 일치하는지를 즉석에서 판별한다.
그런 다음 이 지문이 민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지문과 일치하는지를 최종 확인한 뒤 민원서류를 발급해 주는 식이다.
지난해 9월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1동·역삼1동사무소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전국 동사무소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차원에서 일본과 함께 추진하는 사업도 눈에 띈다.
일본의 국토교통성은 ‘e공항 프로젝트’의 하나로 생체인식 항공 발권 시스템 ‘e체크인’ 시범 서비스를 지난 1월8일부터 인천 국제공항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시작했다.
이 사업을 위해 일본쪽에선 신도쿄국제공항공단, 일본항공(JAL), NTT데이터 등이, 국내에선 인천국제공항공단, KDN스마텍 등이 참여했다.
한국과 일본의 JAL 이용자 가운데 5천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얼굴과 지문, 홍채 등 생체정보를 여권에 IC칩 형태로 담아 신원확인과 발권, 탑승수속을 처리하는 것이다.
시범 서비스는 6월 말까지 진행되며, 이용자는 여권을 리더기에 대기만 하면 바로 통과할 수 있다.
개인정보와 여권을 일일이 대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은행, 시장 성패 가늠 시험대 올라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 도입이 검토되는 분야도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관리하는 ‘선원수첩’이다.
외국을 자주 드나드는 선원들을 대상으로 선원수첩에 생체인식 정보를 삽입해 출입국과 본인 인증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ILO에서도 몇몇 나라만 찬성하면 사업을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께면 생체인식용 IC칩이 내장된 선원수첩이 등장할 전망이다.


각종 위·변조 사고가 빈번한 금융권도 생체인식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인 곳 가운데 하나다.
이 가운데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현금자동지급기(CD)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에서 신용카드나 현금카드 대신 지문만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지문인식 자동화기기 서비스’를 금융권 최초로 도입했다.
이용을 원하는 고객은 은행창구에서 미리 지문을 등록하면 된다.
이를 위해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말까지 전국 700개 영업점, 2천여대의 CD/ATM기기에 지문인식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오는 3월까지 2천여대를 추가할 예정이다.


서비스를 시행한 지 1개월이 지난 1월 초 기준으로 1만4천여명의 고객이 지문을 등록했다.
이 가운데는 지난 2001년 1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바이오인증 서비스’ 이용 회원도 3천명 포함돼 있다.
우리은행은 3월부터는 자동화기기뿐 아니라 은행창구를 이용할 때도 도장이나 서명, 비밀번호 대신 지문으로 거래하는 시스템을 적용할 방침이다.
또 올 상반기 이후에는 지문인식을 이용해 모바일뱅킹을 할 수 있는 ‘바이오폰’도 선보인다.


우리은행 e비즈니스사업단 백종선 부부장은 “바이오폰의 경우 상용화를 위해 센서 크기를 더 줄여야 하는 등 몇몇 해결해야 할 점이 남아 있다”며 “생체인증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상품은 기술적 검토를 거쳐 모두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앞으로 생체인식 금융거래 서비스를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국에 수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생체인식 기술이 은행의 새로운 경쟁력이자 차별화된 서비스로 부각하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지문인식 자동화기기 서비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앞으로 생체인식 시장의 성패를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생체인식 시스템은 인증 방식에 따라 2가지로 나뉜다.
사용자가 전용 단말기 한 대를 쓰는 1대 1 방식과, 여러 사람이 한 대의 단말기를 쓰는 1대 N 방식이다.
우리은행이 2001년부터 인터넷뱅킹에 적용한 바이오인증 서비스는 각 개인이 한 대의 지문인식 단말기를 PC에 연결해 사용했기 때문에 전자에 해당한다.
반면, 이번에 도입한 자동화기기 서비스는 한 대의 기기를 여러 사람이 쓰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다.


1대 1 방식은 단말기 구입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면 1대 N 방식은 여러 명이 한 대의 단말기를 쓰기 때문에 1인당 비용이 줄어든다.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영자 입장에선 1대 N 방식에 끌리는 게 당연하다.
앞으로 등장할 공항의 출입국 시스템이나 공공기관 민원 서비스 등도 모두 1대 N 방식의 생체인증 시스템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우선 1대 N 방식이 공공 서비스를 중심으로 대중화될 것으로 예상하며, 그 첫 시험대로 우리은행의 자동화기기 서비스에 주목하는 것이다.



시장 커지려면 정부가 나서야

그렇다고 생체인식 시장의 미래가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생체인식 시장은 ‘피지 못한 꽃’이자 ‘차세대 유망산업’이다.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위해선 지금부터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가장 시급한 건 데이터베이스의 호환 문제다.
아직은 한 기관에서 입력한 지문이나 홍채 등 생체 정보를 서로 다른 기관에서 공유할 수 없게 돼 있다.
단말기끼리 생체정보가 호환되지 않는 데다, 업체별로 데이터베이스를 따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ㄱ은행에 지문을 등록하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ㄴ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또다시 지문을 등록해야 하는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선 매번 생체정보를 등록하는 것이 번거로울 뿐 아니라 거부감마저 들게 마련이다.
이는 생체인식 시장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단말기로 모든 생체인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때만이 비로소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문인식 전문업체 니트젠의 정순원 박사는 “결국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ICAO가 국제표준을 확정했고 국내 생체인식 적용 관련 표준안도 어느 정도 정리됐습니다.
결국은 각 업체별로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를 통합 관리하는 공인인증센터(CA)를 만들어야 하는데요. 구축비용도 만만찮을 뿐더러 보안문제 등으로 개별업체가 추진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가격을 현실화하는 일도 대중화를 위한 필수 요소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 해도, 5만원 안팎의 돈을 들여 개인용 단말기를 구입해 인터넷뱅킹을 즐기려는 이용자는 아직은 드물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1대 N 방식의 서비스를 중심으로 이용자를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생체인식 시스템에 들어가는 IC칩이나 LCD디스플레이 등의 부품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공용단말기 가격도 현실적인 수준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데 업계는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생체정보 수집에 대한 일반인의 거부감을 뛰어넘는 일이다.
자신의 생체정보가 디지털 정보로 변환돼 중앙 서버에 저장된다는 건 아무래도 개운치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결국 사회적 합의에 의해 풀 문제다.
정순원 박사는 “가격에 비해 경제성이 뛰어나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 도태될 것”이라며 “결국은 시장이 결정할 문제”라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정순원 박사는 “요즘은 다중인식 시스템과 암·복호화 기술 등 기술적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문제도 차츰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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