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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머니] 한국 증시 外人시대, 그들만의 투자기법
[씽크머니] 한국 증시 外人시대, 그들만의 투자기법
  • 박현/ <한겨레> 경제부 기
  • 승인 2004.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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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자금력으로 시가총액 50% 가까이 꿀꺽…수백억대 평가차익 올린 펀드 수두룩 지난해에 이어 새해 들어서도 한국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도하는 장세가 전개되고 있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물론 기관 투자가들도 외국인들의 왕성한 식욕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몇몇 증시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한국적 시각과 투자방식이 아닌 외국인의 시각과 투자방식으로 투자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조언한다.
외국인들이 보유 중인 한국 주식이 거래소 시가총액의 40%를 넘어 50% 가까이 가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비록 비위가 상할지라도 이런 조언을 그냥 흘려 보낼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어떤 주식을, 어떤 방식으로 매매해, 얼마나 벌었을까?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분석해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상장기업의 지분 5% 이상을 가진 외국계 펀드는 대략 40~50개 정도로 추산된다.
외국계 펀드가 거래소시장에서 지분이 5% 이상이라고 신고한 건수는 2002년 103건에서 지난해엔 178건으로 72.8%가 급증했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곳은 캐피털그룹, 푸트남, 소버린자산운용, JF에셋자산운용, GMO이머징마켓펀드, 템플턴자산운용, 피델리티펀드다.
이들 외국계 펀드들은 지난해 각각,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평가차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됐다.
그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명실상부한 ‘한국 증시 최대의 큰손’ 캐피털그룹이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우량주식 24개를 보유 중인 캐피털그룹은 지난해 국내 증시 활황으로 실현이익만 3천억원대를 올렸으며 평가이익은 무려 1조2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3대 뮤추얼펀드인 ‘아메리칸펀드’의 모기업인 캐피털그룹은 현재 국내 증시에서 2개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투자자문으로 출발한 캐피털그룹인터내셔널(CGII)과 운용사로 시작한 캐피털리서치&매니지먼트(CRMC)가 그것이다.
기법1-미국계 뮤추얼펀드: 가치투자의 귀재 캐피털그룹은 2002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2000년 이후 보유 중이던 삼성전자 주식 1111만주(7.4%) 가운데 30만원대에서 141만주(1.1%)를 매도했으며, 지난해 하반기에는 40만원대에서 171만주(1.01%)를 매도했다.
주당 10만원 차익을 냈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하더라도 3천억원대에 이르는 이익을 실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지난해 말 현재 보유 중인 삼성전자 798만주(5.29%)의 지난해 연초 대비 평가이익은 9500억원대에 이른다.
이 펀드는 현대산업개발·신한금융지주·현대차에서도 상당한 평가이익을 올렸다.
이 펀드는 2000년 10월 현대차 지분 8.07%를 매수해 2002년 2월에 이 가운데 2.46%를 매도한 뒤 나머지 5.61%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현대차 주식은 지난해 초 2만8천원대에서 지난해 말 4만7천원대로 급등했으므로 캐피털그룹은 지난해에만 약 2300억원의 평가이익을 올린 셈이다.
이 펀드는 현대산업개발·제일기획·신한금융지주·한국가스공사·대림산업·한일시멘트·효성·한국전기초자·부산은행 투자로도 수십억~수백억원대의 평가이익을 냈다.
반면 LG카드와 삼성전기에서는 평가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도 전체적으로는 약 2천억원 이상의 평가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5대 뮤추얼펀드 중 하나인 푸트남은 삼성전자 단 한 종목으로만 최근 2년 간 1조원에 육박하는 차익을 실현했다.
푸트남은 2001년 11월에 삼성전자 주식 784만주(5.18%)를 평균 19만원대에 매입했는데, 2002년 4월 161만주(1.07%)를 평균 33만원대에 매도해 2천억~3천억원대의 차익을 실현했다.
이어 지난해 6월 말까지 487만주(3.22%)를 매도했다.
푸트남은 32만~36만원대에서 매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차익은 6천억~7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푸트남은 주로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기간을 이용해 이익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가치투자의 대명사인 미국 제1의 뮤추얼펀드 피델리티펀드도 2002년부터 한국 증시에 발을 담궜다.
피델리티펀드는 지난해 10월 호남석유화학 주식 223만주(7.02%)를 3만5천~3만9천원대에 매입해 지난해 말 현재 400억원대의 평가이익을 올리고 있다.
피델리티는 이 밖에 태평양, 코리안리, 탑엔지니어링 등을 지난해 매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델리티는 올해 상반기 중 금융감독원의 인가를 받아 국내 자산운용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역시 가치주 투자로 유명한 템플턴 자산운용은 우물 몇 개를 더 깊이 파는 스타일을 취했다.
템플턴은 현대산업개발과 삼성정밀화학 주식을 각각 17.34%, 17.05%를 보유하고 있다.
또 LG생활건강, 아가방 주식도 10% 이상 보유했다.
템플턴은 비록 LG카드에서는 큰 손실을 입었지만 현대산업개발과 삼성중공업에서는 큰 이익을 거둬 전체적으로는 약 300억원 가량의 평가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4개 펀드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뮤추얼펀드답게 철저한 가치투자로 승부를 걸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거의 모두가 우량기업주, 업종 대표주다.
이들은 우량주식들을 매수해 최소 6개월에서 3년 가량을 보유하는 양상을 보였다.
캐피털그룹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하고 나서 2년 반이 지나서야 이익을 실현하는 인내심을 보였다.
현대차의 경우엔 약 1년반 만에 일부 이익을 실현하고 나머지는 3년째 가지고 있다.
또한, 한번 매수 종목으로 선택하면 집요하게 매수를 계속하는 양상을 보였다.
캐피털그룹은 현대산업개발을 지난 2001년 7월에 처음 5%를 매수한 뒤 같은 해 10월 추가로 1.32%를 샀으며, 2002년 5월(1.23%), 2003년 2월(1.04%), 3월(1.29%), 4월(1.09%)에 매수해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템플턴자산운용도 삼성정밀화학을 지난 2002년 3월 처음으로 5.45% 매수한 뒤 같은 해 12월까지 10.96%로 지분을 늘렸다.
이어 지난해 1월(1.16%), 4월(1.47%), 5월(1.15%), 7월(1.19%), 9월(1.12%) 추가 매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삼성정밀화학 주가는 지난해 별로 상승하지 못해 템플턴은 별 재미를 못 봤지만 지분은 계속 지니고 있다.
때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기법2- 소버린·GMO: 인수합병 테마株 공략 소버린자산운용과 GMO이머징마켓펀드는 지난해 인수합병 테마로 이득을 챙긴 경우다.
소버린은 지난해 4월 SK㈜ 지분 14.99%(1902만주)를 기습적으로 매집한 뒤 경영진 교체까지 시도하고 있는 펀드다.
이 펀드는 SK㈜ 지분을 사 모으는 데에 모두 1767억원을 투입해 지난해 말 현재 평가액은 5689억원이다.
3921억원의 평가이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소버린은 지난해 12월26일 지분 12%를 자회사 크레스트증권에서 다른 자회사로 이전함으로써 장부상 이익을 실현했다.
경영진 교체를 하지 않더라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GMO이머징마켓펀드는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 다툼을 틈타 이익을 올렸다.
이 펀드는 지난해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모두 122억원에 사들인 뒤 11월에 238억원에 되팔았다.
불과 3개월 만에 116억원 가량의 이익을 남긴 것이다.
SK㈜와 현대엘리베이터의 사례는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이면서도 주식가치가 저평가된 기업들의 경우 외국계 펀드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 테마는 지난 한해 내내 국내 주식시장을 달궜다.
그러나 GMO이머징마켓펀드는 단순히 인수합병 테마를 노린 펀드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
이 펀드는 스스로 중장기 가치투자를 표방하고 있는데,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1만~2만원대에 들어갔다가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자 차익을 실현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GMO펀드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4만~8만원대에서 매도했다.
이 펀드는 또 LG상사·대상·한신평정보 등을 매매해 100억원 가량의 평가이익을 올렸다.
기법3- JF자산운용: 중소형주 단기매매 캐피털그룹 다음으로 국내 주식을 많이 가진 JF자산운용은 업종 대표주보다는 중소형 개별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매매도 3개월 안팎의 단기매매 방식을 취한 경우다.
JF에셋자산운용은 성신양회·삼양제넥스·LG전선·대림요업·동양기전·동양화재·금강고려화학 등 무려 20여개 기업에 투자했다.
이 펀드는 보유 주식을 매수한 지 3개월 만에 판 경우도 많았으며, 대개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대림요업의 경우 주가가 2400~2700원대이던 지난해 5~8월에 지분 9.30%를 매수한 뒤 10월부터 매도에 나섰다.
매도 시점의 주가는 1800~2000원대였다.
손실을 본 것이다.
이 펀드는 동양화재·삼양제넥스 투자에서 이런 식으로 약간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삼립산업이나 동양기전 투자에서는 이익을 봤다.
JF자산운용의 전략은 지난해 국내 증시가 업종 대표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추산됐다.
JF자산운용은 이전 같으면 국내 증시의 높은 변동성을 감안할 때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지난해에는 통하지 않았다.
국내 투자자들이 대부분 JF자산운용과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펀드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법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이익을 챙겨 가고 있다며,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견제할 국내 기관 투자가들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기관 투자가 육성이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이 문제는 몇 년이 지나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단기적으로 국내 투자자들이 외국계 펀드와 경쟁해 이기는 방법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방법은 스스로 외국계 펀드들과 같은 투자방식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즉 우량종목을 골라 중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가치투자를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외국계 펀드에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춘 몇몇 국내 기관 투자가들에게 돈을 맡기는 것이다.
국내 투신운용사나 자산운용사 중에서도 중장기적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펀드들을 찾을 수 있는 만큼 이들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렇더라도 외국계 펀드들에게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투자기법은 공부를 해서 따라잡는다고 쳐도 이들의 막강한 자금력에는 결코 맞설 수 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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