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1. 주변 4강, 타협 속 물밑 견제
1. 주변 4강, 타협 속 물밑 견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2.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북아 질서 100년전과 닮은꼴…경제통합 목소리도 점차 커져 러일전쟁 100년을 맞은 2004년, 연초부터 동북아에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기습 참배해 이웃나라의 민족감정을 자극했고, 한국이 독도 우표를 발행하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일본 정부는 또 태평양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투지역인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하고, 의회에서의 막바지 승인절차를 밟고 있다.
1월15일엔 중일 영토분쟁 지역인 다오위다오 해상에서 선상 시위 중이던 중국 민간단체 회원들을 일본 순시선이 물대포로 공격했다.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둘러싼 한중 갈등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미국은 용산 미군기지를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해군이 핵잠수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터져나왔다.
지표 밑에서 서서히 움직이다 결국은 지형을 완전히 뒤바꾸는 맨틀운동처럼, 세계 각국의 이러한 움직임들은 동북아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만한 거대한 변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 주는 징후들이다.
동북아 변화의 진앙은 중국이다.
매년 8%대의 초고속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해외직접투자(FDI) 대상국으로 올라섰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은 최근 활발하게 ‘신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신외교는 특히 중일관계의 재정립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중국은 줄기차게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사과를 일본에 요구해 왔다.
그러나 신외교는 미래지향적인 전환을 근간으로 한다.
언제까지 과거사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되 이제는 이를 어느 정도 초월하자는 것이다.
중국 ‘신외교’ 전략으로 실리 추구 또 하나의 신외교 전략으로는 중일 수교 이후 일본으로부터 받아 온 도움을 솔직히 인정할 때가 되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이 개발도상국에 주는 정부개발원조(ODA)의 최대 수혜국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에서 나온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는 데도 적극적이다.
경제발전이 결국 무기증강과 팽창주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맞서, 중국은 인민해방군의 규모를 대폭 줄이고, 대신 질을 높이기로 방향을 정했다.
또한 중국은 그동안 동북아 안보나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을 배제해 온 정책을 버리고, 일본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일본이 몇 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중국이 앞장서 밀어 주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충돌을 가장 두려워한다.
홍정표 일본 미야자끼국제대학 교수는 “중국은 미국에 대해 상당히 긴장하고 있으며, 중국 지도부에서는 과거 소련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결국 미국과의 대결을 추구하다 쇄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중국은 제2의 소련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미국은 자신의 세계 패권에 도전할 가장 강력한 후보로 오래전부터 중국을 점찍어 두고 있었기에 중국을 포위하는 유라시아 전략을 구사해 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을 구실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미군이 기지를 확보한 것이나, 부시 정부가 악의 축으로 꼽은 이라크, 이란, 북한이 모두 중국 주변 나라인 게 우연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 동쪽의 전략적 발판인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중국 동북3성은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 간 역사분쟁으로 최근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훨씬 이전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잠재적인 분쟁지역으로 꼽아 온 곳이다.
중국은 만주지역이 남한이 주도하는 지역경제블록에 포섭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 경제블록은 중국 서남부와 홍콩, 타이완으로 형성된 ‘중화권’(Greater China)에 비견해 ‘대한민족권’(Greater Korea)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북한이 추진한 신의주 경제특구가 실패한 것도, 중국의 강력한 견제 때문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신의주가 개방될 경우 중국의 동북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장쩌민 전 주석은 김정일에게 경제특구를 개성에 설치하라고 주문했다.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이 지역의 사정은 훨씬 복잡해진다.
미국 국제정책센터 아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셀리그 해리슨은 <코리아 엔드게임>에서 동북3성을 들어, 원유 매장 가능성이 큰 서해 대륙붕 지역과 함께, 통일 이후 한중간에 영토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붕괴할 경우엔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도 있다.
북한군과 난민이 중국 국경을 넘어 유입될 경우, 미군이 포함된 남한군과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문화적 불신이 경제통합 벽 올해 들어 동북아의 지역통합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지역통합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여전히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곳은 동북아가 유일하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효과만 따진다면 동북아통합은 벌써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중일 간의 정치적, 문화적 상호 불신이 걸림돌이다.
김세원 서울대 교수는 ‘동북아 경제통합의 비전과 과제’에서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인 발전에 통합된 동북아 시장은 거의 필수적인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특화산업 육성을 중심을 추진되고 있는 산업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무역장벽이 없는 거대 시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지역 통합 움직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유럽연합(EU)은 애초 정치적 동기에서 출발했다.
분열과 대립, 전쟁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경제를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무기의 생산원료인 석탄과 철강부문의 통합은 이제, 통화통합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김 교수는 “민족정서나 외교적 불신,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관계는 결코 깨끗하게 정리될 수 없는 문제”라며 “동북아의 경우 순서를 바꾸어, 경제통합을 먼저 하고 이를 통해 미해결의 각종 현안을 청산하는 과정을 밟아 나가는 길을 모색해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야흐로 동북아에 질서재편과 통합의 새로운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