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포커스] 일자리 사회협약 실효성 있을까
[포커스] 일자리 사회협약 실효성 있을까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4.02.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사정위 ‘발등의 불 끄기’식 타협안 추진…민주노총 불참 속 졸속 우려 “정부대책이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겁니까, 아니면 영세민을 돕기 위한 겁니까? 이전처럼 공공근로나 늘려서 6개월 동안 복사만 죽어라고 시키는 건 아닌지. 당장 실업률 수치만 떨어뜨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요?”(청년실업자 김아무개씨) “요즘 품위유지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모릅니다.
면도도 매일 하고 구두도 매일 닦고. 제조업이라도 점퍼차림으로는 다니지도 못해요. 가뜩이나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꺼려하는데, 사장이 허술하게 보이면 안 되니까요.”(서일전기 성백룡 사장) 지난 1월27일 열린우리당의 청년실업정책 토론회에서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억울함이 가득 배인 얼굴로 하소연하는 청년실업자나, 입사만 하면 신주단지처럼 모시겠다는 중소업체 사장이나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실업의 강풍은, 단순히 일자리의 수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고용의 질까지 높여야 하는 아주 복잡한 해법을 필요로 하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사실 실업률 자체로만 보면 국내 고용사정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현재 전체 실업률이 3.6%라는 통계청 자료만 봐도 그렇다.
학계에선 수치로만 보면 완전고용에 가깝다는 표현까지 쓸 정도다.
하지만 구직을 아예 단념한 실망실업자가 대거 잠재돼 있는 데다, 15~29세 사이의 청년층 실업률은 8.6%(2003년12월기준)까지 치솟아 체감 실업률은 높아만 가고 있다.
그나마 취업에 골인한 청년층도 절반 가량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이 낮거나 비정규직이다.
대졸자가 늘어난 데 비해 소위 ‘괜찮은’ 일자리는 최근 5년 동안 32만6천개나 줄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 2월7일까지 협약안 마련키로 경기가 회복돼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인수 부원장은 “국내총생산(GDP) 1억원 증가당 고용증가를 나타내는 취업계수가 1980년 10.6명에서 1990년 6.03명, 2000년에는 3.7명으로 줄었다”고 말한다.
실제 지난해 2.9%의 경제성장에도 일자리는 3만개나 줄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과연 정부가 쓸 만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띄워 국민적 기대감은 잔뜩 부풀어 있지만, 실효성 있는 처방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는 사회적 협약도 이런 맥락에서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사회적 협약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전통적인 유럽의 일자리 나누기 모델과 노동비용 절감을 중심으로 하는 영미식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절충한 제3의 길로, 9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유럽의 강소국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써 왔던 처방이다.
대개 임금안정과 고용창출, 세제개혁 등이 협약 내용으로 담긴다.
이미 청와대에선 이런 사회적 협약에 대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1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노사관계 안정 없이는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며 “올해를 노사정이 대타협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한해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국민의 정부가 IMF가 권고했던 경제개혁에 상당한 비중을 뒀지만, 정치개혁과 노사관계 개혁이 병행되지 않으면서 한계에 부딪쳤던 기억을 떠올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원회는 오는 2월7일까지 협약안을 마련키로 하고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1월12일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경총 부회장, 노동부차관, 공익위원 등이 모여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 기초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지금까지 4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기본골격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노사정위 김금수 위원장은 1월29일 열린 본회의에서 “구체적인 협약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으나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루어진 상태”라고 밝혔다.
아울러 관련 내용에 대해 관계부처 간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논의 중인 영역은 노동시장과 임금구조, 사회복지, 세제, 노사관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게 노동계는 고용보장과 일자리 간 차별완화를, 경영계는 임금안정을 얻는 한편,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간다는 약속을 해 주지 않겠냐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문가들 “의미 없는 합의 가능성 높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골격을 갖추고 있는 데 비해, 내실을 따져 보면 낙관적인 관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사정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민주노총이 논의 테이블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전체 노사분규의 81.2%가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노사관계의 핵심 당사자가 빠져 버리게 되는 셈이다.
당장 지난 연말에 있었던 손배가압류에 대한 노사정 합의문 역시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나와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 노사관계TF팀에 깊숙이 개입한 바 있는 한 노동전문가는 “합의가 불가능하거나, 설사 된다고 치더라도 의미 없는 합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민주노총과 경쟁구도에 놓여 있는 한국노총이 민감한 합의에 섣불리 합의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노사 양쪽의 공방전만 들여다봐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전해진다.
경총은 1월27일 대기업 임금동결과 출자총액 제한제도 폐지 등을 들고 나왔고, 한국노총은 투명경영 보장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등을 선결과제로 제시했다.
또 합의가 되더라도 93~94년 한국노총과 경총 임금합의의 전례를 봤을 때 외곽에 있는 민주노총의 반발로 더 큰 노사불안을 가져올 소지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일자리 문제로 오랜만에 사회적 대화기구를 복원해, 장기적으로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 갈 수 있지 않겠냐는 장밋빛 전망이 무색해질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일각에선 노사정위 바깥에서 논의가 시작될 수도 있지 않냐는 제안이 나오기도 한다.
노사정위를 탈퇴한 민주노총의 참여를 최대한 유도하자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선임연구위원은 “정치권에서 제안한 경제지도자회의를, 합의를 추인하는 행사로 만들지 말고 일자리를 위한 사회적 연대의 첫 대화 테이블로 상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별도의 협상기구를 한시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부산대 황한식 교수 등 공익위원들도 노사정위 본회의에서 “사회적 협약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논의구조가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단 정부는 애초 일정대로 협약만들기를 서두르고 있는 분위기다.
따라서 특유의 감성적 조급증이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르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은 “이런 분위기로 간다면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노사정 대타협을 총선용으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는다.
10년 뒤 내다보는 장기대책 만들어야 이런 가운데 연일 쏟아져 나오는 정부의 실업대책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들고 나오면서, 각 부처들도 선심성 정책들을 우르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서 8만개의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거나, 신규채용을 하는 기업에게 세제해택을 주겠다는 식이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올해 직업훈련이나 연수 등을 포함해 모두 14만명에게 일자리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 토론회에서 그는 “구조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우선 단기대책도 필요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도 없는 데다, 기존 실업대책을 재탕, 삼탕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하대 김대환 교수는 “적어도 앞으로 10년 뒤까지 지속가능한 한국 경제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수침체와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한 제반 문제들이 뒤엉켜 있는데, 단기대책만 내세워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그간 참여정부에서 불거진 친노동이냐, 친기업이냐 혹은 2만불 소득이냐, 균형발전이냐의 논란을 불식시킬수 있는 정책목표”라고 말한다.
성장과 사회통합이 서로 충돌하는 정책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일자리 문제를 단발성 한건주의식 정책으로 밀어붙인다면, 더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 정부가 답해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