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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현주컴퓨터, 40일 간의 어지러운 질주
[비즈니스] 현주컴퓨터, 40일 간의 어지러운 질주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4.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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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축소, 협력업체 인수에서 결국 삼보정보통신으로…MOU 파기 책임 여부 ‘불씨’ 그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던 현주컴퓨터가 마침내 지상에 내려앉았다.
정착지는 삼보정보통신이다.
지난 2월9일 현주컴퓨터는 김대성 사장이 보유한 주식 568만9943주(26.34%)를 삼보정보통신 강웅철 사장에게 주당 703원, 모두 40억원에 장외 매각키로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현주컴퓨터는 김대성 사장의 품을 떠나 삼보정보통신 강웅철 사장을 새 선장으로 맞았다.
중간과정을 무 자르듯 잘라놓고 결과만 받아든 사람이라면, 40여일에 걸친 현주컴퓨터의 어지러운 질주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중견 PC제조업체의 맏형격으로 소비자 PC시장에서 선전해온 현주컴퓨터가 하루아침에 떠돌이 난민선이 돼 망망대해를 표류한 사연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치열한 지분싸움과 이해득실을…. 현주 김 사장, MOU 깨고 삼보정보 택해 현주컴퓨터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건 지난해 12월, “현주컴퓨터가 PC사업을 정리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지난해 12월27일, 현주컴퓨터의 김대성 사장은 전직원 회의에서 ‘회사정리’ 방침을 발표하고 이를 사내게시판에 게시하면서 소문을 확인시켰다.
이와 함께 230명에 이르는 전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등 사업정리 수순에 본격 들어갔다.
하지만 나흘 뒤, 김 사장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12월31일 공시를 통해 그동안 말해온 ‘PC사업 정리’ 방침에서 ‘PC사업 축소 및 신규사업 추진’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로부터 사흘 뒤인 1월2일에는 노조측에 “사업을 인수하라”고 제안하는 하는 등 믿음직하지 못한 행동을 반복했다.
1월5일에는 다시 전직원을 모아놓고 “유니텍전자를 중심으로 한 협력업체협의회에 주식 전액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말바꾸기가 계속되면서 진의를 밝히라는 요구가 거세지자, 김대성 사장은 1월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채권·채무·고용승계를 포함한 보유주식 전량을 협력업체협의회(이하 협의회)에 매각하고, 경영권은 유니텍전자 백승혁 사장에게 넘긴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1월12일에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협의회와 체결했다.
이로써 정리와 철수를 오가던 현주컴퓨터의 운명은 새 주인을 맞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파문은 이제부터였다.
중견 PC 제조업체인 주연테크가 MOU 체결 직후부터 갑자기 현주컴퓨터의 주식을 집중 매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16일까지 주연테크는 현주컴퓨터의 지분 245만여주를 매집해 단숨에 2대 주주(11.39%)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송시몬 주연테크 사장은 “순수한 투자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이때를 전후해 주연테크와 현주컴퓨터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나돌았다.
주연테크와 현주컴퓨터의 주가도 덩달아 치솟았다.
2월5일, 송시몬 사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주컴퓨터에 대한 적대적 M&A 의사가 없다”고 밝히면서 ‘판’을 다시 한 번 뒤집었다.
M&A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칼자루는 다시 협의회측이 쥐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현주컴퓨터 김대성 사장이 ‘핵폭탄’을 터뜨렸다.
주연테크측의 발표 이틀 뒤인 2월7일, “본계약 체결을 위한 협의 과정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며 일방적으로 MOU 체결을 깬 것이다.
현주컴퓨터가 삼보정보통신에 팔릴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결국 김대성 사장은 2월9일, 삼보정보통신과 40억원 규모의 주식 전량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격 발표함으로써 마침표를 찍었다.
이에 대해 강웅철 삼보정보통신 사장은 “삼보정보통신 법인 명의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현주컴퓨터 지분을 매입했다”며 “기존 PC사업을 지속하는 한편, 주주이익 최대화를 위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삼보정보통신측도 “강 사장이 양사 경영을 모두 맡게 될 것”이라며 현주컴퓨터 경영을 지휘할 것임을 밝혔다.
주연테크, 어부지리 5억 이상 거둬 기나긴 질주는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동승했던 여러 당사자들에겐 그 나름의 전과와 상처가 남았다.
먼저, 이번 분쟁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쪽은 주연테크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주연테크측이 현주컴퓨터의 지분 245만주를 매집하는 데 투자했다고 밝힌 돈은 12억원이다.
1주당 매입가격이 490원이 채 안 되는 셈이다.
반면, 삼보정보통신의 강웅철 사장이 새로운 인수자로 알려진 2월9일을 기준으로 현주컴퓨터의 주가는 706원이다.
불확실성 해소로 당분간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송시몬 사장은 한 달 동안 적어도 5억3천만원 이상을 앉아서 벌어들인 셈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현주컴퓨터의 사업 정리설이 알려지면서, 일부 고객이 주연테크로 흡수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주연테크 스스로도 이 점을 인정한다.
“지난 1월 PC 판매량이 예상치보다 30%나 늘어났다”며 “현주컴퓨터 사태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주연테크 관계자는 밝혔다.
한편, 경영권 인수를 눈앞에 두고 ‘뒤통수를 맞았던’ 유니텍전자 백승혁 사장은 협의회와 의논을 거쳐 조만간 공식 대응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유니텍전자측은 2월12일 현재 ‘현주컴퓨터 사태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현주컴퓨터 김대성 사장이 MOU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부분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주컴퓨터 직원들은 일단 두고보자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구조조정과 사업정리설이 불거지면서 김대성 사장과 마찰을 빚었던 노조측도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노조측 관계자 또한 “지금으로선 공식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강웅철 삼보정보통신 사장이 지분을 인수한 이후에도 현주컴퓨터 직원들은 모두 정상근무하고 있으며, 별다른 공식 성명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마지막으로, ‘현주 태풍’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김대성 사장. 그도 실리는 짭짤하게 챙겼다.
현주컴퓨터가 2월7일 공시를 통해 협상 결렬 사실을 발표할 무렵 알려진 1주당 주식 매각 가격은 예상가의 절반인 250원으로, 이 경우 전체 매각대금은 14억여원이 된다.
김대성 사장이 삼보정보통신측에 매각한 주식대금은 40억원. 결과적으로 김 사장은 26억원을 더 챙긴 셈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김대성 사장은 “돈을 위해 MOU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비난을 떠안게 됐다.
아직도 약간의 불씨는 남아 있다.
협의회측은 최근 “김대성 사장이 정당한 사유 없이 경영권을 다른 파트너에 넘기면, 당초 받기로 한 대금 14억원의 초과금에 대해 몰수할 수 있는 권리를 협의회쪽이 갖는다는 내용이 MOU에 들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대성 사장은 “MOU는 가계약처럼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이행해야 할 것을 안 지킨 건 오히려 협의회쪽”이라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협의회측이 계약 파기의 책임을 법정에서 물을 경우, 초과금 26억원의 향방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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