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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은행 스마트카드, 출발부터 ‘삐걱’
[이슈] 은행 스마트카드, 출발부터 ‘삐걱’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4.0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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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 참여 적고 발급비용도 부담…‘다기능 원카드’ 기존 취지 무색 3월로 예정된 금융권 @스마트카드@(IC카드) 도입 사업이 뚜껑도 열리기 전에 휘청이고 있다.
도입비용과 단말기 설치문제 등을 두고 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과 은행 및 신용카드사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금감원은 은행이 발급하는 현금카드를 2005년까지 모두 스마트카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금융범죄를 예방하고, 카드 도난과 위·변조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스마트카드를 지원하는 자동화기기는 현금카드 전환이 끝나는 내년까지 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한 목표량에 맞춰 보급을 완료하기로 했다.
신용카드는 단기간에 바꿀 경우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점을 고려해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바꿀 방침이다(<표> 참조). 금감원은 우선 3월부터 여의도지역을 대상으로 스마트카드를 시범 도입한 뒤, 7월1일까지는 국내 모든 은행과 카드사가 스마트카드 발급을 시작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스마트카드에 탑재할 서비스 종류는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스마트카드에 현금·신용·증권·교통카드 등 다양한 기능을 넣는 것은 물론, 서로 다른 금융사의 카드도 한 장에 모으겠다는 것이 금감원의 밑그림이다.
신용카드 기능은 시범 서비스서 제외 그렇지만 금감원이 내놓은 그림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는 당분간 접어둬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우선, 3월부터 시작되는 시범 서비스가 단순한 현금 입·출금 기능만 지원한다는 데 있다.
현재 각 은행 자동화기기에서 제공하는 신용카드 관련 기능은 여기서 빠졌다.
관련 리더기가 아직 안 나온 탓이다.
“금감원이 강조하는 건, IC카드로 자동화기기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건데요. 신용거래 표준 인증을 받은 리더기는 빨라도 3~4월께나 나올 전망인데, 그 전까지는 자동화기기에서 신용카드 연동 기능을 테스트할 수 없잖습니까.” 시범 서비스에 참여하는 한 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결국 스마트카드 시범 서비스는 현금카드 기능만을 대상으로 다른 은행끼리도 거래가 가능한지 시험하는 ‘공동망 테스트’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시범 서비스에 참여하는 은행수도 예상보다 적다.
일단은 몇몇 선발 은행들이 시범 서비스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카드 한 장으로 모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KB올인카드’를 2월25일부터 선보인다.
국민은행은 금감원의 일정에 맞춰, 우선 여의도지역 우수고객 가운데 1천명을 뽑아 스마트카드를 시범 발급할 생각이다.
우리·제일은행과 경남·부산은행 등 일부 지방은행 및 수협은 3월2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며, 하나은행과 신한은행도 3월15일부터 동참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감독 당국인 금감원은 시범 서비스를 보름 가량 앞둔 2월 중순까지도 “아직 참여 은행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며 준비 상황을 쉬쉬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은행권 ‘조율’에 분주하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주요 은행에 “실제 오픈일을 팩스로 알려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금감원이 몇몇 은행이 먼저 서비스를 실시하는 것보다는, 서비스 개시일을 좀 늦추더라도 여러 은행이 동시에 참여하는 게 모양새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스마트카드 발급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이 산처럼 버티고 있다.
신용카드사의 경우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스마트카드로 전환하면 되므로 부담이 적은 편이지만, 은행은 당장 내년까지 모든 현금카드를 스마트카드로 교체해야 한다.
기존 마그네틱카드의 1장당 발급비용은 200~300원 안팎이다.
하지만 스마트카드는 IC칩 용량이나 내장되는 정보량에 따라 발급비용이 천차만별이다.
대충 계산해도 적게는 2천원에서 많게는 7천원이 넘는다.
내년까지 교체를 완료해야 할 현금카드수는 국민은행이 약 1천만장, 신한·하나·우리은행 등은 400만~500만장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1장당 발급비용을 2천원으로만 잡아도 은행마다 카드 발급비용만 100억~2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자동화기기 교체비용과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부담은 더 늘어난다.
발급비용 적은 단순기능 카드만 선호 이 때문에 주요 은행들은 비교적 발급비용이 저렴한 폐쇄형 스마트카드를 우선 도입할 태세다.
폐쇄형 카드는 발급 단계에서 특정 기능을 IC칩에 담으면, 나중에 새 기능이 나와도 이를 추가하거나 뺄 수 없다.
이에 반해 개방형을 채택하면 발급 뒤에도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거나 없앨 수 있다.
폐쇄형 카드는 기능이 정해져 있는 대신 발급비용이 싼 반면, 개방형은 활용도가 높은 대신 발급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은행 입장에선 당장 신용카드 서비스가 시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개방형을 채택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폐쇄형 카드를 발급하는 데도 마그네틱 카드의 10배에 이르는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일부 은행은 카드 발급비의 일부를 고객에게 부담하는 방식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폐쇄형 카드를 채택하면 다양한 카드 기능을 한 장에 담을 수 있다는 스마트카드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따라서 나중에 새로운 기능을 넣으려면 다시 새 카드를 발급해야 하는 문제점이 남는다.
은행 입장에선 당장은 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중복 투자라는 비난이 뒤따르기 때문에 진퇴양난이다.
금융권이 스마트카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데는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취지로 도입한 서비스는 시작부터 불안한 걸음걸이인 데다, 이를 바로잡을 묘안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감독 당국도 시범 서비스 시행 결과에 따라 하나씩 고쳐나가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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