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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초대형 태풍 ‘씨티’ 금융권 비상
[특집]초대형 태풍 ‘씨티’ 금융권 비상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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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은행 인수 후 행보에 관심 쏠려…“파급효과 크지 않다” 회의적 시각도 2004년 2월23일 서울. 씨티그룹은 칼라일그룹과 JP모건 CorsairⅡ가 이끄는 투자자 컨소시엄과 한미은행 관련 인수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발표장 안의 긴장된 분위기 못지않게, 바깥에선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가 가져올 파장을 가늠하려는 시중 은행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국내 은행 판도를 순식간에 뒤바꿀 주인공으로 떠오른 씨티그룹은 과연 어떤 곳인가? 이미 오래전 국내에 진출한 탓에 친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존재가 바로 씨티그룹이다.
씨티그룹이 국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예측하고 싶다면? 그럼, 우선 멕시코로 가야 한다.
최근 씨티그룹이 현지 은행을 인수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게 멕시코 바나멕스 인수 건이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씨티그룹이 멕시코 2위 은행인 바나멕스를 125억달러에 매입한 것은 한미은행 인수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씨티그룹은 북미 자유무역 협정(NAFTA)이 체결될 경우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교역이 확대될 것을 기대하고 미국 내 멕시코계 이민자에게 영업을 확대하기 위해 바나멕스를 인수했다.
비록 바나멕스 인수가 한미은행의 인수에 직접 견줄 바는 아니지만, 인수형태는 두 경우에 있어 유사하다.
예컨대 씨티그룹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바나멕스의 지분 전액을 인수해 상장폐지한 사실만 봐도 한미은행 주식의 공개매수를 서두르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다만 한미은행은 국내 순위 6위에 머물지만 바나멕스는 멕시코 내에 1천353개의 지점과 2만7천여명의 직원을 지닌 멕시코 제2위의 은행이라는 점이 다르다.
게다가 씨티그룹이 바나멕스를 인수한 이후 바나멕스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간 것과 바나멕스에게는 독립적인 결정 권한을 많이 부여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미은행 글로벌체제에 편입될 듯 때문에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글로벌체제로 운영하느냐, 아니면 로컬브랜치로 운영하느냐에 대해선 아직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무게중심은 한미은행을 아시아 지역 전략에 편입시켜 글로벌체제로 운영할 것이라는 쪽에 더 실여 있다.
멕시코 바나멕스는 인지도가 높은 멕시코 2위의 은행이기 때문에 독자운영을 하도록 했지만, 한미은행은 규모와 인지도 면에서 지역적 중심에 서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논거다.
이런 판단을 하는 쪽에선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한다 해도 기존 씨티은행의 조직은 예탁자산 1억~10억원 이상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 특화하고, 한미은행은 씨티골드와 통합해 현행과 같이 중산층에 대한 가계금융업을 강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오석태 씨티은행 자금부장도 “한국 지역에 따로 전략이 있기보다는 아시아 지역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물론 한미은행이 씨티그룹의 글로벌체제에 편입될 것이라는 주장은 씨티그룹의 현지화 전략과도 궤를 같이 한다.
씨티그룹은 조직적인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인해 세계 어느 지점에서나 일률적이고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하다.
때문에 씨티그룹은 전세계를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보고 동질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단지 차별화된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해외지점 인력관리뿐이다.
세계 각국에 진출해 있는 인력을 그 지역의 현지인으로 채용함으로써 그에 맞는 전략을 효율적으로 시행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화 전략과 더불어 씨티그룹의 전통적인 전략을 하나 더 꼽으라면 통합전략을 들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는 금융업의 영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를 일정 기준에 의해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를 일컫는데, 씨티그룹은 2000년 3월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상업은행 업무, 투자은행 업무, 보험 서비스 업무 이외에도 증권자회사의 추가합병 및 비금융분야로의 진출도 모색함으로써 글로벌 금융 서비스를 구축해 왔다.
모든 걸 한꺼번에 묶어서 관리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 씨티그룹이 개인과 기업고객에게 모든 금융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룹을 통할하는 통합전략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씨티그룹은 그룹 차원의 리스크 관리를 통해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업무가 분리되어 온 은행 업무와 비은행 업무는 물론,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의 거래 등에 방화벽을 설치해 한 조직이 부실화할 경우 다른 그룹으로 확산되는 걸 막도록 했다.
비은행업무 통해 수수료 수익 노려 그렇다면 씨티그룹이 한미은행 인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하려는 이유는 뭘까. 한국금융연구원의 구본성 연구원은 “한마디로 한국금융시장이 안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국금융시장은 IMF 환란사태를 겪으면서 투명성과 신용정보에 대한 활용도가 높아졌다.
게다가 대기업들도 돌아가면서 이미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뒤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여기에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데이터가 모이면서 고객을 세분화할 수 있게 되자 씨티그룹의 장점인 고객차별화가 가능해질 수 있게 됐다.
특히 리스나 대부업무와 같은 유사은행 업무 경험이 풍부한 씨트그룹으로선 이런 비은행 업무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높이고 ‘금융그룹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한미은행이 씨티그룹에 선택된 이유 가운데는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의 색깔이 비슷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구본성 연구원은 “한미은행은 카드전략을 상호브랜드(co-branding) 전략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씨티그룹의 영업전략과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한미은행이 비교적 고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신세계나 갤러리아 백화점과 제휴해 ‘한미-신세계 카드’ 형식으로 카드사업을 진행시킨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고소득층에 대한 소매금융쪽에 타깃을 맞춘 영업전략이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이 동일하기 때문에 씨티그룹이 제일은행보다는 한미은행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이는 씨티그룹의 ‘교차판매’ 전략과도 관계가 있다.
씨티그룹은 오래전부터 이상적인 교차판매 모델을 갖춘 기업을 목표로 기업인수합병을 추진해 왔고, 이를 통해 지주회사의 형태를 갖출수록 이익이 증대돼 온 게 사실이다.
실제로 교차판매 실적은 연간 26%의 성장을 거둬 2002년에는 122억달러에 이르렀다.
일단 고객의 접점을 씨티은행으로 설정해 놓고 이후에 모든 금융 서비스와 연결해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각 사업부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둬 현재 각 분야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
씨티그룹의 전면 등장이 가져올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은행들은 씨티그룹의 공격적인 경영에 일단 긴장하는 모습이다.
한미은행 인수를 발표한 자리에서 데릭 모건 씨티그룹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 스스로 ‘공격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시중 은행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 금융시장에 가져올 파급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미은행의 인지도를 높이는 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씨티은행 관계자마저도 “한미은행 인수를 통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친다.
특히 씨티은행이 상류층 고객의 자산관리에 노하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기존 경쟁 은행의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한국 고객들은 이자율이 낮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며 대면영업에 비중을 많이 두는 점도 씨티은행의 영업전략에는 걸림돌이다.
국민은행 “이미 적절한 준비” 여유 이 때문인지 씨티그룹의 선전포고에 대해 ‘위협적’이라는 쪽과 ‘해볼 만하다’는 쪽의 목소리는 엇비슷하게 나오는 상태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한미은행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인이 씨티그룹으로 바뀌면 경쟁상대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HSBC 은행이 한국 진출을 추진했던 4~5년 전부터 외국은행 진출에 대해 적절한 준비를 해왔다”며 “PB센터를 통해 이들에게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 말했다.
다소 여유 있는 반응을 보인 셈이다.
어쨌든 씨티그룹의 인수합병 손길은 드디어 국내 은행에까지 미쳤다.
당장 한미은행의 상장폐지를 위해 씨티그룹은 한미은행 주식을 매집하고 나섰다.
일단 상장폐지를 위해서는 80% 이상을 매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장폐지를 통해 공시의무를 포함한 주주에 대한 부담을 덜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소액주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고배당을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씨티은행의 행보는 당분간 금융권의 핵심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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