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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법원이 칼자루 쥔 ‘개인채무자회생제’
[이슈추적] 법원이 칼자루 쥔 ‘개인채무자회생제’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4.03.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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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구제한다 기대감 높아…금융기관, 세부 운영안 발표에 촉각 신용불량자 400만명.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개인워크아웃제와 개인파산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탈출구를 찾지 못한 신용불량자들의 한숨소리가 잦아들 줄을 모른다.
정부에서 이번엔 이들에게 ‘개인채무자회생제도’라는 새로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운용안이 확정되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최근 신용불량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뉴스가 전해졌다.
지난 3월2일, 오랜 논란 끝에 ‘개인채무자회생법안’이 극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실제 이 제도가 궁지에 몰려 있는 신용불량자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있는 길이 넓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는 제도로 개인워크아웃과 개인파산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원에서 주관하는 개인파산은 일단 파산선고를 받고 나면 직업선택에 제한을 받게 되고, 파산 신청자의 잔여자산 처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용자가 많지 않았다.
금융기관들의 협약에 따라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시행하는 개인워크아웃은 상대적으로 신청조건이 까다롭지는 않지만, 변제계획의 확정 효력에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번에 통과된 개인채무자회생제는 이 두 제도의 중간형태를 띄고 있다(박스 기사 참조). 신용불량자·금융기관 일단 ‘환영’ 신용불량자뿐 아니라 금융기관도 개인채무자회생법의 국회 통과를 일단은 반기는 분위기다.
장기연체로 어차피 대손처리해야 할 채권이라면, 상환조건을 다소 완화해서라도 회수를 극대화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LG카드 채권기획팀 김원구 부장은 “새 제도가 시행되도 채권회수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상환이행률이 높다면 채권자 입장에서 나쁠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은 내심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고 있다.
개인채무자회생법은 조정대상에 금융기관의 채무뿐 아니라 개인채무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되면 채무자가 임의로 채무액을 조작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개인 간의 채권채무 관계의 경우,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사실여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채권자가 채무관계를 속일 경우 채권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은행 카드채권팀 관계자는 “담보채무는 문제가 없지만 비담보채무에는 사채가 포함돼 있어 악용할 소지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금융기관이라고 해서 사정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은행은 대부분 대출을 해줄 때 담보를 설정해 놓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채권회수에 큰 어려움이 없다.
이 때문에 개인채무자회생제가 시행되더라도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대출의 80% 가량을 차지한다.
무담보 신용대출의 비중은 20%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신용대출의 경우에도 개인신용도를 점수화해 대출 심사에 반영했기 때문에 돈을 떼일 염려가 그만큼 적다.
조덕현 신한은행 신용기획부장은 “개인채무자회생제도가 시행되도 은행들은 채권회수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카드사와 제2금융권엔 비상이 걸렸다.
홍춘식 하나은행 채권관리팀장은 “담보를 잡고 있는 은행보다는 오히려 신용채권비율이 높은 카드사나 제2금융권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개인채무자회생제의 신청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핑계로 채무이행을 기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LG카드 김원구 부장은 “실제로 개인채무자회생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지원대상이 되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들이 채무이행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현대카드 관계자도 “개인워크아웃제 도입이 발표됐을 때도 3개월 이상 장기연체자의 전화통화 성공률이 56%에서 20%대로 떨어졌다”며 “제도 자체보다는 제도를 악용하려는 일부 채무자들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도덕적 해이 최소화가 과제 임병철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불량자들을 제도의 틀로 끌어들이려면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인채무자회생제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란 걸 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신용불량자들이 개인채무자회생제에만 매달릴게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 맞는 회생절차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인채무자회생제, 개인워크아웃, 개인파산 가운데 어떤 회생절차 밟았느냐에 따라 신용회복 이후에 대우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각 제도에 따라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모두 동일하게 대우하면 성실하게 자신의 의무를 이행한 채무자에게 자칫 불이익을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실한 채무자와 그렇지 못한 채무자를 구분해 줘야 채무상환에 대한 의지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개인채무자회생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개인채무자회생제도는 이제 겨우 법안이 통과됐을 뿐이다.
구체적인 운영안이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은행과 카드사를 포함한 금융기관들은 이 제도의 실제 운영을 맡게 될 법원의 입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체적인 운영안에 따라 개인채무자회생제도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고, 400만 신용불량자들의 대규모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법원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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