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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사바로읽기] 씨티의 한미은행 인수 선언, 그 이후
[경제기사바로읽기] 씨티의 한미은행 인수 선언, 그 이후
  • 하준/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
  • 승인 2004.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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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들은 외국계와 ‘싸운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한 확장과 인수전략을 내세울 것이고, 산업자본의 금융진출에 대한 요구 역시 한층 높아질 것이다.
국내자본도 금융기관 소유와 경영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하고, 국내 산업자본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언론보도를 보노라면 ‘이때가 기회다’ 싶은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케 해준다.
금융공룡 씨티그룹이 한미은행 인수를 선언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복합기업의 한미은행 인수가 미칠 파장이 얼마나 클 것인지에 대해 국내은행들은 전전긍긍하는 표정이다.
그런데 한동안 고민을 하던 은행장들이 마침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민은행의 김정태 행장은 씨티은행과 맞서 싸우기 위해 세계적인 제휴 파트너를 물색하겠다고 했고, 김승유 하나은행장 역시 프라이빗뱅킹 부문에서의 경쟁에 대응하게 위해 성과에 따른 보상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때마침 언론들도 외국은행에 대응하기 위해선 금융산업 간 합종연횡과 서비스 향상 및 전문화, 글로벌전략의 실현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섰다(<한국경제> 3월29일 ‘다산칼럼’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중은행의 리더들이 이처럼 굳은 각오를 다졌는데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지만, 아쉽게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은행들의 지난해 영업실적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2003년 국내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1조8591억원으로, 2002년에 비해 3조2천여억원(63%)이나 감소했다.
합병과 대형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다양한 금융기법의 도입과 위험관리 강화로 세계적인 은행이 되겠다던 포부를 밝힌 것이 어제 일 같은데, 고객이 맡긴 돈을 부실기업에 꾸어주었을 뿐 아니라 무분별하게 벌여놓은 카드사업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구조조정을 거치며 2000년까지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다 2년 연거푸 엄청난 흑자로 돌아서며 장밋빛 전망에 부풀었던 국내 은행산업이 여전히 취약한 토양 위에 서 있다는 신호다.
바로 이럴 때 외국의 거대은행이 진입한다는 소식이 한층 더 걱정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지난해 수익이 나빠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던 바로 그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총여신의 50%를 넘어선 가계대출에만 의존하다간 결국 큰 사고를 피할 수 없으리라던 목소리를 잊었는가? 아무리 씨티가 세계적인 금융그룹이라지만 국내엔 고작 12개 지점밖에 없다.
자산 규모도 12조원에 불과하다.
1100여개의 지점을 거느리고 200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국민은행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그러나 씨티는 무분별하게 규모를 늘리기보다는 수익성 높은 분야를 특화하면서 착실하게 성장을 거듭해 왔다.
모두들 카드사업이 돈이 된다며 몰려들었지만 씨티의 국내 카드시장 점유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간 외국 단기펀드들이 국내은행을 잇따라 인수하는 데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은행을 본업으로 하는 외국자본의 진출 역시 또 다른 문제를 낳기는 마찬가지다.
국내은행들은 외국계와 ‘싸운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한 확장과 인수전략을 내세울 것이고, 산업자본의 금융진출에 대한 요구 역시 한층 높아질 것이다.
국내자본도 금융기관 소유와 경영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하고, 국내 산업자본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언론보도를 보노라면 ‘이때가 기회다’ 싶은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케 해준다.
재벌이 경영한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 투신사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나 하는 것을 굳이 되묻고 싶지는 않다.
은행의 경영자들 역시 정신 차려야 한다.
합병과 대형화가 곧 놀라운 성적을 보장해 주었는가? 외국계 대형은행의 핑계를 대기 전에 부실대출에 조심하고 위험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면서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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