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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총성 없는 산업스파이 전쟁 시대
[커버] 총성 없는 산업스파이 전쟁 시대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4.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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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변신은 무죄?!국내 유일의 산업방첩기관 중요성 더해져…이해당사자간 공동감시체계 결성에 힘쏟아야

그럼 우리나라도 ‘전쟁’ 중? 답은 분명 ‘그렇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해외 산업스파이들이 활개를 치는 무대가 되어버렸다.
잠시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2003∼2004년 세계경쟁력 보고서’를 들여다보자.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술경쟁력은 조사 대상 102개국 가운데 여섯 번째. 미국과 핀란드, 대만, 스웨덴, 일본 다음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도 충분히 국내의 첨단산업기술을 노리는 해외 산업스파이의 표적이 됨직하다.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8년 이후 165명의 산업스파이 혐의자가 적발돼 사법처리됐다.
모두 41건에 달한다.
추정 손실액만 31조원. 전쟁에서 입은 상처가 얼마만큼 큰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해외 산업스파이의 눈길이 쏠리는 곳은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 제조기술분야. 몇 년 전 S전자, L반도체의 전·현직 연구원 20여명이 개입해 첨단 반도체기술을 대만 기업에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추정 피해액만 1조2500억원. 엄청난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이쯤에서 되짚어볼 문제가 하나 있다.
창이 있으면 방패도 있는 법! 치열하게 전개되는 ‘경제정보전’에서 자국의 산업기술을 보호하는 문제가 이제 국가안보의 필수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펼쳐지는 21세기 산업스파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지름길은 튼튼한 ‘산업방첩체계’로 무장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그 중심엔 각국의 국가정보기관이 서 있다.
세계 산업스파이의 60%가 몰려 있다는 미국에선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관세청, 군 정보기관 등 11개 기관이 연방방첩국(NCIX)을 구성했다.
투입인원만 3만여명. 영토를 놓고 다투는 실제 전투병력에 못잖은 규모의 새로운 산업전투병력이다.



총괄조직 산업정보처 신설 검토중

최근 눈에 띄게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변신에 관심이 쏠리는 건 이 때문이다.
국정원이 산업스파이 색출 및 보안교육 등을 위한 조직을 운영한 건 지난 93년부터다.
지난해엔 산업정보팀을 국정원 1차장 산하 직속 조직으로 개편해 대대적인 몸집물리기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조직이 바로 ‘산업기밀보호센터’. 현재 국내 산업방첩체계의 최일선에 나선 장본인이다.
국정원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1차장 산하에 산업정보처를 신설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발맞춰 산업보안 능력을 높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국정원이 민간부문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그 첫 결실이 바로 지난달 첫선을 보인 전자, 생명공학 및 화학, 정보통신, 기계 등 4개 분야별 ‘민·관 산업보안협의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한국반도체산업협의회 등 국내 69개 첨단산업체 및 경제단체가 한데 모인 협의회다.
주요 국가 산업기술의 보호 동향 등 최신 정보를 지원하고 선진 보안관리기법을 공유해 자율 보안관리체계를 구축하도록 힘쓴다는 게 국정원의 의도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한 관계자는 “첨단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이 잦아 막대한 국부 손실이 우려되고 있는데도 대다수 기업과 연구기관 경영자들의 보안의식이 취약해 이 보안협의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라 강조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산업방첩 활동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한켠에서는 국정원 주도로 선을 보인 민·관 산업보안협의회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정원이 구상하는 단독 정보망 구축은 사후대처에 그칠 뿐인데도 국정원이 지나치게 생색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김광수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자부 등 정부부처와 기업체 및 검찰 등 수사기관 간에 산업방첩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스파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사전예방에 도움이 되는 정부 산하기구의 설치가 더 절실하다는 얘기다.



주무부처와의 공조체계 힘써야 반론도

결국 이런 목소리 속엔 국정원의 산업방첩 활동이 일방통행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중요한 건 ‘공조체계 시스템’을 시급히 갖추는 일이란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산업기밀 보호를 위해선 폭넓은 이해 당사자 간의 협력체계가 절실하다”면서 “이번 민·관 산업보안협의회는 주무부처에게 한마디 협의도 없는 국정원의 일방적인 독점활동에 불과하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국정원은 앞으로 주무부처와의 공조체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총성 없는 산업스파이 전쟁 시대에 산업방첩체계를 강화하는 일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법률·행정지원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국정원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루어지는 산업보안 활동에 우려의 눈길이 쏠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강대국들과의 치열한 경제정보전에 나설 여력을 갖춘 유일한 산업방첩기관은 국정원뿐이다.
산업방첩 활동에서 국정원쪽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의 한 관계자는 “각 기업별로 나눠져 있었던 산업보안 활동이 이번 협의회를 통해 총괄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협의회 출범을 계기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는 일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간 국정원 내부부서 간 인식에선 커다란 차이를 보인 게 사실이다.
2차장 산하의 국내파트가 ‘1등 부서’이며, 1차장 산하의 해외파트는 ‘2등 부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국내파트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국내 정보수집이 1순위, 다음으로 해외 정보수집이 2순위며, 산업방첩 활동은 가장 인기가 없는 3순위였다.
그간 국정원의 산업방첩 능력이 다른 나라의 국가정보기관에 비해 뒤떨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국정원이 보여주는 변신에선 급변하는 시대와 호흡을 맞추려는 의지가 읽힌다.
경쟁 기업과 경쟁 국가의 최신 산업정보를 캐내려는 산업스파이 활동이 보편화된 현실에서, 산업정보 수집과 산업보안 활동이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국내 유일의 산업방첩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찾으려는 국정원의 몸짓은 앞으로 더욱 관심을 끌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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