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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MBA 리포트] Put people above profit!
[이원재의 MBA 리포트] Put people above profit!
  • 보스턴=이원재 기자
  • 승인 2004.0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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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1960년대라면 이 자리는 로 스쿨이고, 법률가들로 채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는 비즈니스맨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언어는 비즈니스의 언어이고 여러분은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제 과거 법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여러분이 고민할 차례죠. 어떤 자본주의를 꿈꿀 것입니까.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 것입니까.” 기업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조직 혁신의 동력을 가르쳤던 조직이론 교수가 한 학기 강의를 마치며 남긴 말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언어가 된 비즈니스의 논리를 독자들과 나눠보려 한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혁신을 숭상하고 현장을 중시하는 미국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미래의 경영자들에게 설파하는 지식과 정신의 정수를 전달하고 싶다.
기업은 무엇에 살고 무엇에 죽으며, 기업에 몸을 담은 개인은 어떻게 자신과 조직을 번영시키고 또 파괴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이론과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게야.” 최인호씨가 쓴 소설이자,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던 <상도>에서 주인공 임상옥에게 그의 정신적 스승 홍득주가 던진 말이다.
임상옥은 평생 이 뜻을 받들어 장사를 한 끝에 조선 후기 최대의 거상으로 자라났다.
18세기 말 조선의 상인이 받들던 이 말을 다시 만난 건, 21세기 초 미국 MIT MBA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였다.
슬론 스쿨(MIT 경영대학) 학장 리처드 슈말렌지의 소개를 받고 연단에 오른 찰스 베스트 MIT 총장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Put people above profit.” (사람을 이익보다 소중히 하라) 오리엔테이션 첫 날, 첫 번째 강연, 첫 마디였다.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설었다.
사람을 이익보다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이 <상도>에서 들어 익숙한 것이었는데도 낯설었던 이유는, 그 자리가 미국 최고의 공학도들이 모여든 MIT라는 학교였고, 그 경영대학인 슬론 스쿨 MBA 신입생 전체를 놓고 2년간의 교육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MBA’란 그 어떤 학위과정보다도 인간보다는 기업 조직의 전략과 이익을 중시하고, 학문적 이론보다는 시장과 ‘정글의 법칙’을 가르치는 곳 아닌가. ‘MIT’는 그 어느 학교보다도 기술과 과학을 소중히 하는 곳 아닌가. 실제로 MIT 슬론 스쿨은 그 어느 비즈니스 스쿨보다도 과학을 소중히 하며 ‘경영과학’을 지향하는 학교다.
창시자 알프레드 슬론은 “현대 기업 경영현장의 복잡한 실제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푸는 것을 지향”하며 학교를 열었다.
수학과 통계학 등 계량적 방법론을 가장 앞장서서 경영현장에 접목시킨 학교이기도 하고, 경영자를 지향하는 하이테크 기업 기술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학교이기도 하다.
상도, 200년 만에 태평양을 건너다 그런 학교에서 첫 마디부터 과학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고 ‘사람’을 소중히 하라니, 그것도 경영의 궁극적 목표인 이익보다도 소중히 하라니, 낯선 것은 당연했다.
“조선의 상인이 MIT보다 200년을 앞섰구나” 하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전체를 휘감고 있는 ‘사람’ 그리고 ‘윤리’라는 주제가 고리타분한 훈계가 아니라 최근 급변한 경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안된 경영 혁신 전략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현장에 곧바로 적용하도록 만들어진 경영도구였다.
그리고 MIT에서만 관심을 가진 주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세계 전체의 관심사였다.
인터넷 거품부터 시작해서, 회계장부를 조작하며 투자자들을 속이다 파산한 엔론이나 월드콤이 몰고온 기업투명성 스캔들, 그리고 자신들의 고객 기업들을 위해 터무니없는 기업분석 보고서를 써대던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의 스캔들 주변에는 모두 명문대학 MBA출신 경영 전문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즘도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심심치 않게 비윤리적 경영 행위로 기소된 경영자들의 재판 관련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런 경영 스캔들 폭풍 속에 대부분의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조직을 기계처럼 생각하고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을 떡 주무르듯 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쳐왔던 과거 MBA 교육과정에 대한 반성이 시작됐다.
기업이 사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 기업이 주주나 사회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물론 이런 반성의 끝에서 나온 것이다.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앞다퉈 이 분야 연구에 나섰고, 그 결과물로 새로운 교과과정이 들어서고 있다.
MIT와 이웃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도 2004년부터 윤리학을 MBA의 필수 과목으로 개설할 계획이다.
뉴욕의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유명한 경영대학원 인시아드도 윤리교육을 강조한 교과과정을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움튼다 비즈니스 스쿨뿐 아니다.
유수한 기업 경영자나 정계의 리더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슬론 스쿨의 동문이기도 한 HP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가치는 신뢰에서 나온다”면서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강조했다.
HP를 포함해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등 유수한 기업들이 속속 기업 내에 사회책임 경영 담당부서를 따로 두고 부사장급 책임자를 배치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는 정계나 시민단체들의 공도 크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들은 기부나 환경 경영 등 사회책임 경영활동 지출에 대해 세금 공제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안하고 있다.
슬론 스쿨 동문인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 역시 기업의 관심사가 “주주에서 이해 관계자들로, 한 가지의 (재무적) 가치에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로, 재무제표에서 균형 잡힌 발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최근의 각종 스캔들은 비즈니스 세계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만일 자본주의가 무너진다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윤리와 책임이라는 약한 고리로부터 붕괴의 물결이 시작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비즈니스 세계 리더들을 한 깃발 아래 뭉치게 했다.
경영 이론가들이 모여 있는 세계 유수 경영대학들을 포함해 기업가, 정치가들은 사람과 윤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만들자는 큰 뜻 아래 속속 뭉치고 있는 것이다.
200년 전 조선의 상인이 생각해 낸 것을 이제서야 생각하고 있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흐뭇해하기만 할 때가 아니었다.
미국 자본주의는 도덕성 스캔들이 터지자마자 뿌리를 근본부터 돌아보고 치료에 나선 것이다.
기업가, 금융권, 학계, 정치권 모두가 순식간에 힘과 아이디어를 모았고 불과 2∼3년 만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미국 자본주의의 무서움, 또는 위대함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가나 정치가들이 조선 상인이 200년 전에 했던 얘기를 아직도 실천에 옮기려 들지 않고 여전히 정글의 법칙을 숭상하며 ‘차떼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적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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