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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기자의 MBA리포트] 역전의 승부수, 사회책임경영 - 나이키 이야기(2)
[이원재 기자의 MBA리포트] 역전의 승부수, 사회책임경영 - 나이키 이야기(2)
  • 보스턴=이원재 기자
  • 승인 2004.03.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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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개혁파 정치 신인이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됐다.
하늘을 찌르던 지지도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본인이 아니라 사촌뻘 되는 친척이 뇌물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까. (1)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므로 모른다고 잡아뗀다.
(2) 백배사죄하며 백의종군해 정치자금 투명화 운동에 투신한다.
나이키는 (1)번 전략을 추진하려다 더욱 거센 저항에 부딪쳐 (2)번으로 돌아섰고, 결국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나이키 사례를 놓고 시작된 토론은 열기로 가득했다.
입학 심사 때 다양성을 중요한 고려 대상으로 삼는 MBA에는 워낙 다양한 경력과 국적, 그리고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 서로 극단을 치닫는 의견들이 걸러지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나이키는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
아동 노동을 시킨 것은 하청업체들이다.
부도덕한 경영자들은 파키스탄의 공장장들이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가들이다.
기준을 어기라고 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왜 나이키에게 책임을 묻는가.” “무슨 소린가. 나이키 사례는 다국적 기업의 제국주의적 횡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청업체가 무슨 힘이 있는가. 나이키가 원가를 낮추지 않으면 당장 계약을 해지한다고 위협했을 테고, 무슨 수를 써서든 생산비용을 낮춰 납품가격을 저가로 맞춰주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다.
” 처음 나이키 경영진의 시각은 전자였다.
“우리 회사가 아니라 하청업체에서 잘못한 일”이라며 발뺌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와 투자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정적인 보도는 늘어갔고, 아웃소싱에 힘입어 나온 눈부신 실적 뒤에 가려진 제3세계 공장들의 노동 착취 실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속속들이 파헤쳐진 것이다.
참다 못한 나이키는 고발을 계속하는 시민단체와 언론을 상대로 반박 주장을 펼쳐보기도 하고 산발적인 로비 공세를 벌이기도 하지만 전혀 먹혀들지를 않았다.
연간 매출은 오랫 동안의 고속 성장세가 꺾이면서 1997∼98년 갑자기 하락세를 탔다.
더 중요한 건 주가였다.
주가는 97년 이후 그 동안의 오름세를 접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미국 주식시장이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지수는 상승가도를 달리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투자자들이 사회책임 관련 리스크가 나이키 성장에 치명적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식시장의 냉혹한 심판 나이키 경영진은 결국 소비자들의 공세 앞에 무릎을 꿇고 상황 전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사회책임경영 전문가인 마리아 에이텔 부사장을 전격 영입한 것이다.
에이텔 부사장은 백악관, MCI커뮤니케이션스,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거치면서 기업이 사회와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MIT MBA 신입생들의 세계화와 기업책임 토론 시간에 발제자로 초청된 바로 그 사람이다.
에이텔 부사장은 나이키에 들어오면서 언론 보도에 대한 산발적 대응 대신 불거진 문제 자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기업시민권’(corporate citizenship)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우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노동 및 환경 관련 업무를 모아 기업책임부를 신설했다.
현재 나이키에는 전세계 나이키 제품 생산지에 흩어져 근무하며 각 공장의 노동과 환경 문제를 담당하는 직원만 85명이 된다.
여기에 신발 공장 노동자의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등 안전, 건강, 경영자 태도, 인력개발, 환경 관련 내용을 담은 새 생산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새로운 하청계약을 맺지 않는 것은 물론, 기존 하청업체에게도 주문 물량을 조정하거나 자격을 평가하는 데 이용하는 등 제재를 가한다.
이 지침은 기업책임부에서 현장에 나가 있는 직원들이 하청공장 실사를 하는 데 이용된다.
여기에 PWC 등 컨설팅회사가 들어와 노동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밀실사를 벌인다.
내용은 다르지만 과정은 본사 부서에 대한 회계 감사만큼이나 엄격하게 만든 것이다.
현재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하청업체뿐 아니라 직원과 경영진을 평가하는 데도 비슷한 기준을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에이텔은 또한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들과의 관계 개선을 시작했다.
현재 나이키는 노동, 환경, 인권 등의 측면에서 다국적 기업의 사회책임을 향상시키려는 UN 글로벌 콤팩트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개발도상국의 노동환경 및 청년 노동자 교육훈련환경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자와 공동체를 위한 국제연대를 공동 창립하기도 했다.
노동이나 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을 측면 지원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세계화의 쓴맛도 책임져야 나이키는 결국 근본적 변화를 추진한 뒤에야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세계 51개 주요 신문이 나이키를 아동 노동, 착취, 착취공장이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한 기사 건수는 97년에 300건에 육박하던 것이 2002년 50건 아래로 떨어졌다.
매출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증시 거품이 꺼져 하락세이던 2001년 이후에도 나이키 주가는 상승세를 탔다.
나이키는 정말 중요한 교훈을 다른 기업들에게 남겨주었다.
세계화의 수혜를 입으려면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고 의무를 지키는 국제사회의 시민권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권을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곧 범죄자로 낙인 찍혀 시장에서 퇴출되고 만다.
유치원에서 배울 법한 단순한 진리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경영자들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던 교훈이다.
국경이 개방되면서 기업의 가치 사슬은 점점 다양화하고 있다.
제품 생산지와 제품을 사는 소비시장과 자금을 대는 금융시장은 때로 법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또 문화적으로나 전혀 다른 곳에 있기도 한다.
그리고 각각의 가치 사슬마다 점점 더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생산 효율성 증대라는 단맛 뒤에 숨겨져 있던 세계화의 쓴맛이다.
결국 토론의 결론은 ‘세계화의 단맛’을 가장 많이 보는 다국적 기업이 쓴맛 역시 책임지는 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올바르고도 유일한 길이라는 단순한 진리로 향했다.
나이키 케이스를 통해 MIT MBA는 ‘신뢰 위기 시대에 필요한 경영혁신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기업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꾸는 게 그 혁신의 출발점이라는 게 결론이다.
지금까지 MBA 과정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업은 주주만을 위해 경영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주주를 위해 최선이라며 무리하게 회계 장부를 조작하던 엔론 같은 기업들은 결국 주주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주고 말았다.
여기서 사회책임경영, 또는 이해 관계자 중심의 경영이라는 얘기가 나오게 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주뿐만 아니라 기업의 가치 사슬과 맞닿은 모든 사회를 위한 경영이 아니면 주주를 위해서조차 성공적일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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