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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비틀대는 내수경기, 드디어 바닥 지났나?
[진단] 비틀대는 내수경기, 드디어 바닥 지났나?
  • 이코노미21
  • 승인 2004.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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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호조 힘입어 설비투자 늘 것”…투자 경쟁력 확보가 관건 지적도 수출이 잘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수출 활성화가 설비투자로 얼마나 활발하게 이어질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 그렇다면 기업들은 투자를 안 할 셈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 전문가들의 이러한 진단은 앞으로 다소 경기가 회복될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회복세가 오기는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중에 유동자금이 500조원 가까이 된다고 해요. 수출도 얼마나 잘되고 있습니까?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안 돌아서 문제죠. 근데 매스컴에선 자꾸 경기가 안 좋다고 하니 돈을 쓰려다가도 아끼게 된다는 겁니다.
자꾸 안 좋다고 부추길 게 아니라 돈 좀 쓰자고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국내 한 컨설팅회사 사장의 성토가 뜨겁다.
얼마 전 국내 대기업 중 한 업체가 조직 운영과 관련한 컨설팅을 의뢰했다가 “경기도 안 좋은 마당에 꼭 지금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로 철회했다는 것이다.
그 기업은 수출로 돈도 많이 벌었고, 현금도 풍부했으며, 무엇보다 컨설팅이 필요한 상태였다고 사장은 말한다.
그 대기업이 컨설팅을 받고 돈을 풀었다면, 컨설팅회사의 직원들은 지금보다는 훨씬 소비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시중에 있는 유동자금 중에 약 60~70%는 가계에 묻혀 있고, 20~30% 정도는 기업의 창고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 가계쪽을 보자면 돈을 가진 고소득층은 이미 웬만한 소비지출을 다 끝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특히 유동자금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소수 부유층의 경우는 소비 패턴이 경기와는 상관없기 때문에 해외여행 이외에는 지출을 안 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 바잉파워가 되는 중간 계층의 경우는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 가계 부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소비에 제동이 걸려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희갑 수석연구위원은 내수부진의 큰 요인 중 하나로 이미 2002년을 전후해 부추겨진 내구재 붐을 지적했다.
당시 필요 이상으로 소비 여력을 써버려 내수 사이클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최 연구위원은 “특정 시점의 경기를 지나치게 띄우기 위해 신용카드 정책 등 정부가 밀어붙인 정책의 후폭풍”이라면서 “명백한 소비정책의 실패”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착시현상 무시못해” 그렇다면 기업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20일 발표한 1분기 수정 경기전망에서 수출 급증세가 지속되면서 경기회복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KDI는 올해 경상수지흑자 예상치를 당초 제시했던 73억달러에서 166억달러로 크게 늘리고, 성장 전망도 종전의 5.3%에서 5.5%로 높여 잡았다.
성명기 KDI 전문연구원은 “IMF 이후 그동안 기업들이 설비투자보다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쪽으로 해왔고, 꼭 필요한 투자 위주로 해왔다”며 “하지만 이제는 설비투자 압력이 높아지면서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제조업의 연간 평균 가동률은 2002년은 78.4%, 2003년은 78.3%였지만, 지난해 4분기에 80.4%로 올라선 후 올해 2월에는 83.5%로 상승하고 있다.
또 1~2월 중 생산자 제품 출하는 전년 동기 대비 9.0% 증가했다.
1분기 취업자수는 지난해의 정체 수준에서 벗어나 2.2% 증가해 고용 면에서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성 연구원은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수출이 계속 잘되는 것은 국내 생산이 활발해지는 것”이라며 “회복세가 본격화되었다고 하기엔 어렵지만 바닥은 지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국내설비투자가 감가상각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수출이 계속 늘어나면 내수도 살아나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수출은 계속 청신호일까? 이에 대해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기업경제조사팀장은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지표는 많이 좋아졌죠. 수출도 증가, 생산도 증가, 가동률도 증가…. 그런데 지난해 수출을 보면 수출기업들이 사실상 적자가 많아요.” 그는 내수가 안 되니까 탈출구로 수출을 한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사실 지난해 수출기업의 수익을 보면 순수익이 24%나 감소했다.
“전체 수출기업 순이익이 4조8천억원인데, 사실 그 중에 삼성전자를 빼면 오히려 적자라는 얘기죠. 거기에 환율이나 원자재난이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 이경상 팀장은 “삼성전자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나 된다”며 “삼성전자에 의한 착시현상도 무시 못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채산성 측면에서 본다면 아직 수출 호조에 박수를 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올해 들어서 기업 경영 여건은 더 악화되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환율이 지난해 말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현재 1150원으로 원화가치가 5% 높아졌죠. 중소기업 수출 적정이 환율 1190원대인데, 출혈 수출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거기에 유가나 원자재 압박도 여전히 복병으로 있는 상태고요.” “경제의 글로벌화가 가져오는 당연한 징후” 수출이 잘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수출 활성화가 설비투자로 얼마나 활발하게 이어질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 “대기업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입니다.
외환위기 때 과감한 투자가 낳은 상처가 아직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그 당시 망했던 기업이 한둘이 아니죠. 그 때문에 은행도 보수적인 경영에 치중하고 있어요.” 삼성경제연구소의 박희갑 수석연구위원은 “돈 있는 기업들의 현금보유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고 지적하면서 “은행 돈 빌려서 투자하는 일은 회피하고, 자기 돈으로 투자를 하며, 그러다 보니 공격적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당연히 신규사업 투자비중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동안 중소기업이 6조3천억원을 빌려간 반면, 대기업들은 1조7천억원을 빌렸다.
지난해 4분기에는 3조8천억원을 오히려 갚았다.
돈이 있어도 투자를 하기보다 빚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을 셈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 LG경제연구소의 조용수 연구위원은 “과거처럼 은행돈을 빌려서 공장 짓고, 물건 팔면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웬만한 상품들은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고, 같은 물건이라도 중국에 진출하는 것이 채산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에 투자를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중국의 위험을 상당히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몇 개 품목을 제외하면 어떤 품목으로 세계 경쟁력을 가지고 갈지 답답합니다.
” 전문가들의 이러한 진단은 앞으로 다소 경기가 회복될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회복세가 오기는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딜레마에 대해 한 경제 전문가는 “경제의 글로벌화가 가져오는 당연한 징후”라며 “국내의 현 경기는 일시적이거나 이상 징후가 아니라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이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희갑 위원은 “누가 뭐래도 국내 기업들 성장비결은 대외경제에 노출되면서 커나간 것”이라며, “특정 산업을 육성하려면 그 산업에 대한 과감한 개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져 서비스산업으로 가려고 한다면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류재원 중소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준비 없는 개방은 산업을 초토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개방에 앞서 한국의 중소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영원무역의 경우 국내 공장 문을 닫고 중국에 진출했지만 오히려 기업 관리를 위한 고용이 훨씬 많이 늘었다”며, “해외진출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키워 더 많은 부가가치를 이끌어내고, 이로써 고용을 끌어올리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한정희 기자 bambaya@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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