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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제2의 이헌재 펀드, 무성한 소문의 진상은?
[이슈추적] 제2의 이헌재 펀드, 무성한 소문의 진상은?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4.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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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설이에요.”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딱 잘라 말한다.
“결정된 바 없습니다.
”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입을 다문다.
그러나 한 언론의 보도에서 흘러나온 산업은행의 사모펀드 조성설은 소설이라고만 보기엔 너무 구체적이다.
“이헌재 펀드, 다시 고개”라는 제목이 붙은 언론보도는 과연 거짓일까? “2조5천억원 사모펀드 조성-산은, 연기금·민자 유치 SOC·기업 구조조정 겨냥” 4월21일, <매일경제>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산업은행이 연기금·보험·민간자본을 대상으로 2조~2조5천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조성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한 금융계 인사의 말을 인용해 “이 사모펀드가 우리금융 지분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이날 이 신문에 실린 또 다른 기사의 제목은 “이헌재 펀드, 다시 고개”였다.
산업은행은 곧바로 이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가판에 4월21일자 신문이 배포된 4월20일 저녁, 산업은행은 해명자료를 내 “투자업무 활성화 차원에서 현재 선진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사모펀드 업무에 대해 향후 취급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나 기사내용처럼 우리금융 지분 인수와 관련한 사모펀드에 대해 검토한 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사모펀드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행 내에서도 사모펀드를 한국 시장에 어떻게 적용할지, 어떤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지를 논의하고는 있지만 아주 초기적인 검토 단계”라며 “태스크포스팀조차 구성된 바 없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기사는 한 산업은행 관계자의 말을 빌어 “이달 초부터 총재 직속으로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사모펀드 조성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SOC 사업 투자를 위한 펀드로 알고 있다”고 전했더랬다.
재경부, “PEF에 자본금 두배 차입 허용” 보도 부인 다시 <매일경제>의 보도를 보자. 이 기사에는 산업은행의 사모펀드 조성설을 뒷받침할 문건 등 어떠한 물증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금융계 관계자’, ‘산업은행 관계자’로만 표기된 인물이 나올 뿐이다.
산업은행측은 심지어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러나 완전한 ‘소설’로 치부하기엔 인용된 관계자들의 말이 꽤 구체적이다.
기사가 인용한 한 금융계 관계자는 ‘2조~2조5천억원’이라며 펀드 조성 목표액을 언급했고, 또 다른 한 금융계 관계자는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증권을 주축으로 출자자 모집이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어떤 인물이기에 취재기자는 증거 문건조차 입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말로만 구성한 머릿기사를 덥석 1면에 올린 것일까? 해당 취재기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사모펀드를 둘러싼 오보 시비는 그 전 주에도 있었다.
<한국경제>는 4월14일자로 “사모주식투자펀드(PEF)도 하반기부터 자본금 2배 이내로 차입이 허용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 기사는 “재정경제부가 13일 국내 자본의 민영화 및 구조조정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은 현행 ‘간접투자 자산운용업법’상 사모기업인수(M&A) 펀드에 대한 규제를 풀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재정경제부의 담당자는 이 보도가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아직 사모주식투자펀드의 차입 허용 규모를 자본금의 1.5배로 할지, 2배로 할지는 결정된 바가 없다”며 “새로 구성되는 국회에 상반기 중 제출할 수 있도록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는 이에 대한 별도의 해명자료는 발표하지 않았다.
M&A 자극제 ‘레버리지 바이아웃’ 허용될까 진실이 사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기관이 오보라고 주장하는 보도의 이면을 뒤집어보면 되살아나는 ‘이헌재 펀드’의 꿈이 엿보인다.
일단 이헌재씨가 부총리에 취임하면서 무산된 ‘이헌재 펀드’의 청사진을 되짚어보자.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1월9일,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주최한 우수고객 초청 오찬 세미나에서 “우리금융 경영권 인수를 위해 3조원 규모의 연합 컨소시엄을 구성할 계획이며 한두 달 내에 가능한 형태로 결론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정부가 추진 중인 철도청 등 공기업 민영화, 정리기업 인수에 적극 참여하겠다”며 “첫 과제로 우리금융 민영화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12월,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대형 국내 자본을 육성하겠다”며 사모주식투자펀드 육성방침을 밝힌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헌재 부총리가 이헌재 펀드를 직접 운영하겠다는 계획은 접었지만 펀드를 만들려던 취지는 사모주식투자펀드 관련법 제정을 통해 이루려고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사 임원은 “사모주식투자펀드 관련 태스크포스팀이 부총리의 직접 지시로 재경부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고 전한다.
또 다른 금융사 임원은 “태스크포스팀이 비밀리에 구성돼 어떤 인사가 참여하고 있는지조차 시장에 알려지지 않았다”며 “17대 국회가 가동되기 전에 청사진을 내놓지 않겠냐”고 말했다.
내년 3월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우리금융 민영화 일정을 고려해 보면 올여름 중엔 관련법을 마련해 놔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정부는 사모주식투자펀드에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leverage buy-out)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LBO란 투자 대상업체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투자하는 방식이다.
뉴브리지캐피탈, 칼라일펀드 등 사모펀드들은 기업을 인수, 합병할 때 흔히 LBO를 이용해 돈을 조달한다.
투자 대상 규모가 클 경우 자본금만으로 기업을 인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LBO는 1980년대 미국에 도입돼 M&A를 활성화시킨 주역이지만, 한국에선 워크아웃기업 인수 등 일부 경우에 한해 최대 자본금 규모로 차입하도록 허용되고 있다.
만일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산업은행은 2조여원에서 최대 4조원의 인수자금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우리금융의 시가총액은 4월20일 기준으로 6조7천억원대. 산업은행 사모펀드만으로도 우리금융을 인수할 여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언론 보도가 사실무근만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수 있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우리금융 말고도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등 덩치 큰 매각 자산을 다수 가지고 있다.
철도청 등 국영기업 민영화 일정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구제금융기에 국내 기업들을 헐값에 매각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이헌재 부총리는 과연 사모주식투자펀드를 통해 ‘이헌재 펀드’의 꿈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올여름을 기다려보자. ***표/정부가 보유한 매각 대상 자산(자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괄호 안은 지분율) **예금보험공사 보유자산 은행/우리금융(86.8%), 하나은행(21.66%), 신한지주(상환전환우선주 8088억원어치), 제주은행(31.96%), 제일은행(48.49%) 증권/한국투자증권(86.8%), 대한투자증권(86.32%) 보험/대한생명(49%), 서울보증보험(99.21%) **자산관리공사 보유자산 대우 계열/대우조선해양(22.52%), 대우종합기계(35.42%), 대우인터내셔널(37.12%), 대우건설(47%), 대우일렉트로닉스(57.42%), 대우상용차(35.56%), 대우정밀(34.09%), 대우전자(12.27%), 대우자동차(33.76%) 기타/쌍용자동차(0.88%), 벽산건설(19.24%), 신호제지(12.97%), 케이피케미칼(7.49%), 새한(6.01%), 기아자동차(0.8%), 우방(7.6%), 유레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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