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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쌀의 해’를 맞아 다시 보는 쌀의 모든 것
[테마기획] ‘쌀의 해’를 맞아 다시 보는 쌀의 모든 것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5.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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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여! 인류를 구원하소서


‘쌀’은 원래 ‘씨알’에서 유래한 말이다.
볍씨에서 겉껍질과 속껍질을 까고 난 흰 알맹이를 가리킨다.
바로 이 쌀을 국제연합(UN)이 2004년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UN은 올 초부터 ‘쌀이 생명이다’라는 표어를 걸고 쌀을 단순한 먹을거리 상품이 아니라, 인류의 삶과 문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지구적 연대의 상징으로 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쌀의 가치가 세계 속에서 재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사정은 딴판이다.
시장개방 논리에 떠밀려 쌀은 ‘찬밥’ 신세다.
비약적인 생산 증가로 쌀이 넘쳐나는 오늘, 국제사회가 쌀에 새롭게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우리나라에 있다.
지난 1997년과 2001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1만5천년 전 볍씨 58톨이 발견됐다.
한반도에 쌀이 들어온 것이 적어도 1만5천년은 됐다는 뜻이다.
쌀농사에 대한 역사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발견된다.
통일신라에 들어 쌀농사가 전국적으로 보급됐고, 고려왕조는 나라에서 볍씨를 직접 나누어주며 쌀농사를 권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쌀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곡식은 아니었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들은 명절과 제사 때나 쌀밥을 맛볼 수 있었다.
일제 시대에는 쌀의 절반 이상을 일본에 강제 송출하고 한국인은 만주에서 들여온 조와 콩으로 연명했다.
해방 이후 70년대까지도 쌀은 귀한 음식이었다.
쌀이 이처럼 오랫동안 일반 백성의 허기를 채워준 곡식이 아니었음에도, 민족 문화의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해 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쌀의 오랜 역사는 지금도 우리 삶 속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5월21일은 절기상 소만(小滿)이다.
24절기는 옛사람들이 참조하던 쌀농사의 일정표다.
소만은 가을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요즘도 쌀의 양을 말할 때 ‘석’이라는 단위를 흔히 쓴다.
쌀 한 석은 미터법 도량형으로 따지면 144kg에 해당한다.
옛날에는 성인 1명이 1년 동안 쌀 한 석을 먹었다고 한다.
4인 가족이 쌀 4석만 있으면 1년 동안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는 얘기다.
쌀 4석을 생산하려면 약 논 300평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논 한 마지기다.
흔히 ‘물꼬를 튼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논두렁으로 둘러막은 칸막이 땅에 물꼬를 통해 물을 채워 논을 만든 것에 유래한 표현이다.
음식 문화가 많이 바뀌긴 했어도 ‘밥’ 하면 지금도 쌀밥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밥벌이’를 위해 ‘밥심’으로 일한다.
또 쌀을 활용한 것 가운데 쌀점이 있는데, 쌀무더기에서 쌀을 한 움큼 쥐어 상 위에 던지고 그 숫자를 세어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쌀알이 짝수면 불길하고 홀수면 길하다.
홀수 가운데서도 7이 제일 좋고 다음은 9, 3, 5, 1의 순서다.



쌀의 고향은 중국 윈난지역

우리 쌀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71년 통일벼의 탄생이다.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의 출현으로 빈곤의 상징이던 ‘보릿고개’는 옛말이 됐다.
통일벼 덕분에 77년에는 쌀 생산량이 유사 이래 최고인 660만t을 기록했고, ha당 수확량이 4.94t으로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다.
누구나 세 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를 가능하게 한 ‘녹색혁명’이다.
통일벼에 얽힌 드라마를 이해하려면 쌀의 품종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쌀의 고향은 중국남부의 윈난(雲南)지역에서 태국, 미얀마, 베트남 북부에 걸친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원은 쌀과 관련된 말을 통해서도 더듬어 볼 수 있다.
중국 남부에서는 벼를 ‘네이’(nei), ‘니’(ni), ‘넵’(nep), ‘누안’(nuan)이라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넵’(nep)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는 벼를 ‘바디’(badi) 혹은 ‘빈히’(binhi)라고 한다.
일본말로는 ‘이네’다.
우리말로 쌀 속에 섞인 벼 알갱이를 ‘뉘’라고 한다.
중국어 ‘니’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말 ‘벼’는 ‘바디’나 ‘빈히’와 발음이 가깝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벼의 품종은 모두 20여종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일본형인 자포니카(Japonica)와 인도형인 인디카(Indica)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은 이 가운데 자포니카다.
인디카는 자포니카에 비해 쌀알이 길고 밥을 지어도 끈기가 없어 부슬부슬 흩어져버린다.
기름지고 찰진 밥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쌀이다.
반면 중국인이나, 태국인, 베트남인은 인디카를 선호한다.
이들은 쌀을 우리처럼 다른 반찬과 함께 먹고 입속에서 조미해 먹는 것이 아니라 야채볶음밥, 새우볶음밥같이 처음부터 조리한 것을 먹는다.
푸석푸석한 인디카 쌀은 조리하기도 쉽고, 맛도 골고루 스며드는 특징이 있다.
통일벼는 바로 자포니카와 인티카 두 품종을 삼원교잡해 탄생시킨 것이다.
때문에 수확량은 많지만 밥맛이 기존 쌀에 비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정부가 통일벼를 우선 수매하면서 ‘정부미’는 안 좋은 쌀, ‘일반미’는 맛있는 쌀이라는 등식이 이때 만들어졌다.
이후 밥맛을 좋게 하고 병충해와 저온 저항성을 높이는 등 품종개량을 거듭했지만 결국 통일벼는 92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밥 한 공기 쌀값은 220∼240원

90년대 들어서는 밥맛이 좋은 쌀과 기능성 쌀이 대거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일품벼는 일본에서도 밥맛이 좋은 쌀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쌀밥의 강점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에 있다.
인류의 3대 곡물인 쌀, 밀, 옥수수 가운데 가장 맛이 좋은 것은 옥수수다.
그러나 옥수수는 단맛이 나 매일 먹으면 싫증을 느끼게 된다.
밀은 맛이 없어 가루로 빻은 다음 빵으로 굽거나 국수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
쌀은 조리하기도 좋고 담백해서 먹기에도 좋다.
밥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반찬을 먹는 식사 문화가 고른 영양섭취를 보장해 영양학적 우수성이 한층 높다고 할 수 있다.
쌀이 주식인 한국과 일본은 섭취 영양 중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의 비율이 이상적인 상태에 가깝지만, 육류 중심의 미국은 지방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탄수화물은 적은 불균형 상태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쌀에는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고 혈압을 조정하는 등 성인병 예방에 좋은 성분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쌀의 영양학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쌀 소비는 매년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은 쌀밥을 하루 두 공기도 채 먹지 않았다.
일반미를 기준으로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값은 220~240원이다.
녹색혁명의 결과 쌀 생산은 매년 증가한 반면, 쌀 소비는 거꾸로 줄고 있는 셈이다.
쌀 농업이 시련기에 접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경제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설명한다.
쌀 소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1인당 소득 수준과 인구 증가율, 대체 작물과의 상대 가격이다.
소득이 낮은 때 쌀은 사치재로 여겨진다.
반면 소득이 올라가면 쌀은 열등재로 취급된다.
소득이 많아진 사람들은 쌀 대신 빵, 생선, 고기 같은 다른 식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중간 이상의 소득 수준을 누리는 나라에서 쌀 소비가 똑같이 줄었다.



자유무역으로 쌀의 지속가능성 위협

쌀의 역사에서 중요한 두 번째 사건은 94년에 터졌다.
우루과이라운드 쌀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생산과잉 상태이던 국내 쌀시장에 개방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밀어닥친 것이다.
쌀은 세계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보호받아 온 농산물로 꼽힌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가난한 소비자를 위해 쌀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동시에, 농민들이 쌀 생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하는 정책적 딜레마에 부딪힌다.
전통적인 해결수단은 정부의 강한 개입이다.
정부가 비싼 값에 쌀을 사 싼값에 방출하는 우리의 추곡수매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국제 쌀 교역의 규모는 미미하다.
전체 쌀 생산량의 6%만이 국제 시장에서 거래된다.


쌀의 자유무역은 결과적으로 쌀 생산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값싼 수입쌀의 유입으로 많은 농민들이 점점 쌀 경작에 매력을 잃고 있다.
시장개방은 낮은 가격에 쌀을 살 수 있게 된 도시 소비자에게 큰 혜택을 주지만, 생존의 안전망을 빼앗기고 선진국에서처럼 국가의 보조에 의지할 수도 없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영세농에겐 가혹한 고통을 준다.
외국의 쌀 생산자를 보통 대규모 경작을 하는 기업농으로 상상하고 있지만, 실제 세계 쌀 생산의 80%를 가난한 농부들이 담당하고 있다.
미국, 호주, 남유럽, 남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쌀 재배자들은 대부분 소규모 가족농이다.
중국, 인도네시아 자바, 베트남 레드리버 삼각주 지역의 평균 경지 면적은 0.5ha 이하고, 방글라데시, 동인도, 베트남 메콩 삼각주 지역은 1ha에 미치지 못한다.



쌀은 미래를 위한 싸움의 최전선

많은 나라가 외국에서 쌀을 수입하지만 대부분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이에 반해 쌀 수출 국가는 몇 나라 되지 않는다.
태국, 베트남, 인도, 중국, 파키스탄, 호주, 이탈리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이집트, 스페인이 주요 쌀 수출국이다.
특히 쌀시장은 집중도가 높아 상위 5개국의 수출량이 75%를 넘는다.
태국 한 나라의 수출물량이 국제 시장의 30%를 차지하는데, 이는 국제 쌀시장의 불안정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쌀이 5% 과잉생산되면 값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5%가 모자라면 값이 두 배로 뛴다는 분석도 있다.
일반 공산품처럼 즉각적인 생산량 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병충해나 기상이변으로 수확량이 줄어도 한동안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다.


FAO는 2030년 쌀의 수요가 5억33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상태로 이 수요를 감당하려면 엄청난 생산 증가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80년대 2.5%던 쌀 생산 증가율은 90년대 들어 1.1%로 하락했다.
녹색혁명의 효과가 한계를 드러내며 단위생산량이 정체를 보인데다, 쌀 재배면적이 좀처럼 확대되지 않은 탓이다.
FAO는 향후 쌀의 절대물량이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지역 또는 국가별로 쌀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측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쌀 재배면적의 확대는 도시화와 산업개발에 따른 농지 감소와 수자원 부족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쌀 수입개방에 따른 생산 기반 붕괴로 농지면적이 오히려 감소하는 나라도 늘어난다.
국제무역에 수반되는 쌀 생산의 집약화는 환경과 자연자원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다수확 품종의 보급으로 쌀의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위험요인이다.


‘쌀이 곧 생명’이라는 외침은 쌀 자체보다는 쌀 생산을 둘러쌓고 있는 시스템 전체의 가치와 이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쌀 생산 시스템은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생물 다양성의 허브이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수십억 가계가 생존을 위해 영양과 고용, 수익을 얻는 원천이다.
오늘날 쌀은 식량안보, 빈곤퇴치, 지속가능한 발전 등 첨예한 이슈들이 가장 명료하게 상호 연관돼 있는 미래를 위한 싸움의 최전선이다.
2004 쌀의 해 관련 국내행사 <5월> 쌀의 해 기념식(5월27일, 농림부/농협) 쌀산업 발전방향 국제심포지엄(5월27~28일, 농림부/농경연) 모내기 행사(농협/지자체) 전국동시 쌀 소비촉진 캠페인(농협/지자체) 쌀 음식과 함께하는 봄 소풍(농협) 쌀 소비촉진행사(경기) 함평나비쌀 전시판매행사(전남) <6월> 전국 어린이 쌀 사랑 그림 잔치(농협) 도시민 초청 친환경농업 현장 체험(경기) 우리 쌀사랑 오리방사 대회(강원) 농촌체험(땀방울)학교 운영(강원) 친환경쌀 생산마을 소비자 체험행사(강원) 친환경 생산단지 견학(강원) 상북오리쌀 오리방사 행사(울산) 언양 우렁새악시쌀 우렁이방사 행사(울산) <7월> 철원오대쌀 다짐대회(강원) <8월> 익산순수미 홍보 및 판매행사 (전북) 전국 친환경 농산물 품평 및 시식회(전북) <9월> 쌀 생산기술 국제 심포지엄(9월13~15일, 농진청) 국제미작연구소 이사회 및 아시아 벼연구협력위원회 회의(농진청) 브랜드쌀 및 가공품 전시회(호남농연) 쌀 연구자ㆍ생산자ㆍ소비자 만남 행사(영남농연) 제2회 대학생 쌀포장디자인 공모전(농협)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만남(강원) 다원적 기능의 쌀문화 전시회 (강원) 당진쌀 축제 행사(충남) 전주 세계 소리 축제(전북) 고창쌀 대도시판촉행사(전북) 순천 허수아비 메뚜기 들녘 축제(전남) 산청 메뚜기 잡기 대회 (경남) 봉계 황우쌀 축제(울산) <10월> 원주쌀 산업발전 협의회 운영(강원) 이천 햅쌀 축제(경기) 베스트 경기미 선발대회(경기) 쌀문화 특별 전시관 운영(경기) 여주 진상 명품전(경기) 전통음식 테마식당운영(강원) 생거진천쌀 축제(충북) 충남쌀 축제한마당 큰잔치(충남) 전북쌀 소비촉진 홍보행사(전북) 농경문화 체험 및 축제(전북) 친환경 부안쌀 소비촉진 행사 (전북) 남도 음식문화 큰찬치(전남) 심청 공양미 삼백석 모으기 행사 (전남) 화순쌀 시식회 및 품평회(전남) 남도 농업 박람회(전남) 우리쌀 사랑 한마음 큰잔치(경북) 쌀 소비확대 캠페인 행사(경북) 우리쌀 소비촉진백일장(경북) 메뚜기 잡기 및 쌀 시식회 행사 (경북) 학교영양사교육 워크숍(경북) <11월> 농업인과 함께 하는 소비촉진 대행진(농협) Love 米 마라톤 대회(농협) 평택농업ㆍ농악축제(경기) 청원생명쌀 축제(충북) 고령옥미 소비촉진행사(경북) 고품질 함양쌀 시식회(경남) 자운영 하동꽃쌀 판촉전(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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