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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인사이드] 너무 큰 한계, 인권주의
[뉴욕인사이드] 너무 큰 한계, 인권주의
  • 뉴욕=이흥모 한국은행
  • 승인 2004.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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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주둔 미군의 포로 학대 사건이 일파 만파로 번지고 있다.
CBS가 처음 이 사건을 보도했을 때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런 행동은 전혀 미국인다운 것이 아니다”(This is absolutely un-American)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에는, 미국인들은 대상이 누구든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국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인권문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몇십 년밖에 되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포로 고문 사건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바람에 집중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인권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2가지 사건이 최근 보도되었다.
하나는 1955년 발생한 살인 사건을 재수사하겠다는 미시시피 주 검찰의 결정이다.
당시 시카고에 살고 있던 14살 흑인 소년 에멧 틸은 미시시피 주의 친척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백인 남자들에 의해 납치당한 후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단은 틸이 백인 가게에서 여자 주인인 캐롤린 브라이언트를 향해 휘파람을 분 데서 비롯되었다.
격분한 캐롤린의 남편과 그의 이복동생은 틸을 납치해 무자비하게 폭행한 후 권총으로 살해했다.
틸과 한 침대에서 자던 친척 소년의 증언으로 두 사람은 기소되었지만 백인만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최근 들어 살해 현장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드러났고 이들 중 몇몇은 아직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검찰의 재수사 결정은 이들을 법정에 세워 50년간 왜곡되었던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두 번째는 백인과 흑인을 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한 분리주의를 금지하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올해로 50주년을 맞게 된 일이다.
흔히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s. Board of Education)라 명명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캔자스 주의 토피카에 사는 흑인 초등학생 린다는 자기 집에서 불과 5블록이면 갈 수 있는 백인 학교 대신 20블록이나 떨어진 흑인 학교에 다녀야 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를 가슴아파하던 그녀의 아버지 브라운 목사는 50년 어느 날 그녀의 손을 잡고 백인 학교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브라운 가족과 토피카 교육위원회 간의 법정공방이 시작되었다.
연방고등법원에서까지 패소했던 브라운 목사는 54년 대법원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판결은 학교에서 흑백 분리를 제도적으로 철폐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인권 신장의 큰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예제도를 운영해 보았던 미국인, 특히 백인들의 경우 다른 종족의 인권을 존중하는 데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나름대로의 자정능력을 가지고 이런 한계를 꾸준히 극복해 왔다.
틸 살해 사건의 재심결정이나 브라운의 법정 승리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 사건은 미국이 또다시 자정능력을 보여줄 것인지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고문과 학대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데도 온갖 핑계와 술수로 위기를 넘기려는 미국의 지도부가 국민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가 바로 미국 사회의 자정능력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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