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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의 부자열전] 하루에 날린 재산―서진(西晉)의 치공
[이수광의 부자열전] 하루에 날린 재산―서진(西晉)의 치공
  • 소설가
  • 승인 2004.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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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려고 할 때는 일단 종잣돈을 모아야 한다.
또 종잣돈을 모을 때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근검절약이다.
개성 상인들이 유명한 이유는 그 독특한 상술 탓도 있지만 개성인 특유의 근검절약 정신도 무시할 수 없다.
강화도엔 개성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6·25 전쟁이 끝나자 개성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개성과 가까운 강화로 내려왔다.
인삼을 잘 키우는 것으로 유명한 개성 사람들은, 강화에 내려와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특히 강화의 6년근은 토질 문제로 다른 지방에서는 재배되지 않는 특산품이다.
강화에서 인삼 상인으로 유명한 정 아무개씨도 개성 출신으로 6·25 전쟁 때 강화로 내려온 사람이었다.
직접 인삼을 재배해 팔던 그는 지독할 정도로 구두쇠였다.
원래 인삼밭에는 소변으로 거름을 주는데, 드넓은 인삼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서는 소변을 사서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소변을 파는 사람들이 근처 냇가에서 냇물을 퍼다가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므로 그는 소변인지 냇물인지 가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손으로 찍어서 맛을 본 뒤에야 진짜 소변임을 믿고 인삼밭에 뿌릴 정도였다.
인삼밭에는 손이 가는 일이 많아 품삯을 주고 동네 아주머니들을 동원해야 했다.
그런데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새참으로 건빵 한 봉지를 지급하는 것이 관례였다.
아주머니들은 보통 20명 정도가 되는데 그는 같이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새참용 건빵은 사지 않았다.
“이 건빵이 어디 먹을 만한가? 한 개 집어 먹어봐야겠군.” 정아무개씨는 아주머니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빵 하나씩을 얻어서 배를 채우곤 했다.
얄밉고 궁상맞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구두쇠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아무개씨는 그렇게 돈을 벌어 아들 딸 4남매를 대학에 보내고도 알부자가 되었다.
이처럼 정아무개씨는 강화도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으나 단돈 1원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방세를 낼 때면 세금을 내는 마지막 날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지방세를 담당하는 면사무소 직원이 마지막 날 오후 4시에 고지서를 가지고 찾아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 그때서야 1원짜리까지 일일이 세어 세금을 낼 정도였다.
돈이란 벌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쓰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아무개씨는 그렇게 돈을 벌었지만 때때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쌀을 보내고 길을 닦는다거나 면 지역에 숙원 사업이 있으면 기꺼이 자금을 내놓는다.
정아무개씨는 지금도 살아 있는데, 그 자손들도 검소하여 돈을 낭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먼저 술값을 내겠다고 말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은 뒤에는 가장 늦게 일어난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음식값을 지불하면 그는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일부러 돈을 내지 않기 위해 자리에서 늦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기 위해 서둘러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것이다.
중국 서진(西晉)에 재상을 지낸 치공(@@@公)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인색하게 절약하여 수천만 전의 재물을 모았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웃을 돌볼 줄 몰랐고 자신을 위해 쓸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의 손자 치가빈(@@@嘉賓)은 치공과는 전혀 다른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유분방하면서 당대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도량이 큰 인물이었다.
치가빈은 아침마다 할아버지에게 정중하게 문안인사를 했다.
치가의 가풍은 자손들이 어른들과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치가빈은 문안인사를 올리고 오랫동안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가빈은 치공의 인색함에 대해서 비판했다.
“너는 대체 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치가빈의 말을 듣던 치공이 딱하다는 듯이 손자를 보고 물었다.
“돈이란 귀한 것도 되고 천한 것도 됩니다.
천한 것은 쌓이면 귀하게 되지만 귀한 것을 오래 쌓아두면 천하게 됩니다.
” “네 말대로 재물이 천하다고 하자. 너는 이 천한 것 때문에 호의호식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는 천한 돈으로 인해 귀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했으니 집안에 가두어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 재물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인색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또 어려운 이웃과 친척들은 당연히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 “나는 평생 동안 고생을 하여 재물을 모았는데 그것을 나누어주라는 말이냐?” “제가 할아버님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 “네가 하루에 얼마나 쓸 수 있겠느냐?” “그것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좋다.
네가 내 돈을 쓰고 싶은 모양인데 오늘 하루 동안 마음대로 써봐라. 돈을 쓰는 것도 귀중한 경험이다.
” 치공은 창고를 활짝 열고 치가빈에게 하루 동안 마음대로 쓰라고 말했다.
치공은 치가빈이 아무리 돈을 많이 쓴다고 해도 기껏해야 수백만 전밖에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치가빈은 치공의 허락이 떨어지자 하루 동안 그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모조리 나누어주었다.
치공은 수천만 전에 이르는 재물이 하루 만에 다 없어지자 놀라 기절하고 말았다.
치가빈은 가난하게 살았으나 훗날 학문으로 명성을 높였고 벼슬도 높아져 역사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다음호 제16화 가장 중요한 재산은 지식이다-탈무드의 유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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