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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금감원이 카드사를 감싼 이유
[커버] 금감원이 카드사를 감싼 이유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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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의 영어 이름은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 그러나 최근 드러난 감독행태를 보면 금융감독원은 금융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금융사(Finance Company)를 위한 서비스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6월11일 금융감독원이 1400여억원의 불법 대환대출을 일으킨 우리카드에 대해 과징금 5천만원이라는 가벼운 징계조치만 내린 것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며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노동당은 고발장에서 우리카드가 채무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불법 대환대출을 일으킨 것은 금융기관의 비리 문제를 떠나 사회의 중대한 공익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금융감독원이 우리카드에 대해 적절한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카드사들, 불법 대환대출로 처벌받고도 모르쇠

민노당이 금감원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 배경은 이렇다.
우리카드(현 우리은행)가 2003년 6월 한 달 동안만 사망자와 구속 수감자, 해외 이주자 등을 포함해 무려 4만여명의 고객에게 본인의 동의 없이 1400여억원 규모의 불법 대환대출을 ‘조직적’으로 실시한 것이 최근 <한겨레> 보도로 밝혀졌다.
카드회사가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불법 대환대출을 해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이렇게 대형 범죄 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대환대출은 한마디로 현금 서비스 등의 단기대출을 장기대출로 돌려놓는 것이다.


원우종 금감원 비은행검사2국 국장은 9일 “금감원은 지난해 9월24일부터 10월10일까지 우리카드에 대한 검사에서 자동응답전화(ARS)를 통해 4만225명으로부터 1417억원어치를 고객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대환대출 처리한 사실을 적발해 냈다”고 밝혔다.
이 금액을 연체로 잡을 경우 지난해 6월 말 기준 우리카드의 실질 연체율은 무려 14.21%나 돼, 적기시정조치 기준인 10%를 한참 상회하게 된다.


이에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8월 말 우리카드가 4만여건(1439억원)을 대체 현금서비스(CA) 대출로 불법 전환해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실질 연체율(11.67%)을 10% 이하(9.1%)로 속여 발표한 것을 적발한 바 있다.
대체 현금서비스란, 연체 회원들에게 카드사들이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만큼 현금서비스를 다시 이용하도록 장부상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불법 대환대출이 이뤄진 4만여건을 포함해 6월 한 달 동안 우리카드에서만 무려 13만8766건의 불법 대환대출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동응답전화로 한 번 접속하면 두세 건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불법 대환대출 시도 횟수는 최소한 20만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숫자면 회사쪽이 적기시정조치를 받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불법을 조장하거나 최소한 방조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우리카드는 실제 이 과정에서 대환대출을 독려하는 대표이사 명의의 공문을 채권추심 담당자에게 내려보내는가 하면,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인 자동응답전화를 이용한 대환대출 전용 회선의 가동시간을 연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정은 다른 카드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적기시정조치 내용 가운데 연체율 10% 부분은 삭제됐지만 당시 다수 카드사들의 실질 연체율이 10%을 넘어서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거래자 보호 및 금융질서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금융감독위원회는 카드사에 경영개선 권고나 요구, 명령을 내리게 된다.
만약 카드사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퇴출될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이에 카드사들은 고객의 동의 없이 신용카드 사용 연체금을 대환대출로 전환하는 등 갖가지 편법을 자행했다.
지난해 금감원은 이러한 사실을 적발하고 12월26일 우리은행에 5천만원, LG카드와 삼성카드에 각각 7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모든 카드사에 주의조처를 내렸다.


그러나 카드사들과 금감원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카드사 사업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카드사 중 단 한 곳도 사업보고서 주의조처란에 금감원으로부터 주의조처를 받았다고 적시한 곳이 없었다.
사업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다.
공시도 하지 않았다.
공시 의무가 있는 상장기업인 외환카드, 국민카드, LG카드도 금감원의 주의조처에 대해 공시를 내지 않았다.
증권거래법 상장법인 공시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상장법인 공시규정 제4조 제2항 제3호를 보면, ‘조세범처벌절차법에 의한 범칙사건을 조사하기로 통보받거나 행정기관으로부터 법령위반에 대하여 조사하기로 통보받은 때 및 그 조사의 결과를 통보받은 때’ 공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동 규정 제4조 제2항 제23호를 보면, ‘금융기관이 관계법규 또는 감독기관의 요구에 따라 경영상태 등에 관한 자료를 공시, 공표한 때 및 경영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받은 때’ 공시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들 3개사는 이 사항에 모두 해당된다.
따라서 이들 3개사는 공시의무위반으로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되고 과징금도 물어야 옳다.



금감원, 카드사들 ‘시치미’를 사실상 묵인

더욱 놀라운 것은 기업의 사업보고와 공시의무를 감독해야 할 당국인 금감원이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금감원은 카드사들을 비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김긍렬 금감원 비은행검사2국 검사1팀장은 “만일 카드사들이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질러 연체율을 조작했다면 퇴출 사유가 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카드가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고 대환대출 등 주의조처를 받은 사항도 ‘불법’이라기보다 ‘편법’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또 과징금을 부과받고 주의조처를 받은 것도 공시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카드사 검사 결과를 비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공개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답한다.
원우종 금감원 비은행검사2국장은 “우리나라를 빼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검사 결과를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며 “검사 결과 공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만약 카드사 불법 대환대출 조사가 제때 진행되고 그 즉시 공개됐다면? 그래서 연체율 끌어내리기에 급급한 카드사들의 상황이 드러났더라면? 적어도 눈치 빠른 몇몇 투자자들은 떨어지는 카드주식을 추가 매입해 손실을 불리는 불행을 피할 순 있었을 것이다.


시장의 일부 채권 평가 전문가들은 지난해 초부터 가파르게 증가한 대환대출 잔액 그래프를 의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2002년 연체율을 비교해 보면 카드사 전체 연체율이 5.9%대였던 데에 비해 대환대출 연체율은 26%대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들어 한 달에 1조원 넘는 연체채권이 대환대출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카드사들의 대환대출 잔액은 2002년 12월 7조1878억원이던 것이 2003년 1월엔 7조7598억원으로 5720억원이 순증했다가 2월부터는 1조3억원, 1조5천억원씩 급증해 2003년 말엔 16조840억원으로 늘어났다.


한 신용평가 회사 간부는 “지난해 카드사들의 대환대출 잔액을 보고 있자면 연체자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증가세가 높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당시 채권 평가 담당자 사이에선 “카드사들이 연체율을 낮추려고 조직적으로 대환대출로 바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은밀히 나돌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연체자 당사자의 권리 침해에 해당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당사자 동의 없는 대환대출은 본인의 상환능력과 의지가 떨어져 다시 연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다른 대출에 비해 높다.
따라서 대환대출을 불법으로 어느 정도 저질렀는가 하는 정보는 투자자들에게 해당 카드사의 채권 부실화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카드사 소액주주들, 주가하락 피해봐

당시 불법 행위로 금감원으로부터 7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던 LG카드 주가를 보자. 대주주들의 증자가 진행됐던 11월 초순까지만 해도 주가는 1만3천원대였다.
11월21일 현금서비스 중단 사태가 벌어진 뒤 주가는 급락했다.
12월3일 종가는 7450원, 12월24일은 4280원이었다.
이나마도 올해 주가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올해 1월 LG그룹이 LG카드를 포함한 금융부문을 계열분리한 뒤 주가는 1월16일 705원, 1월20일 510원으로 급전직하 하락했다.


상장기업의 법적인 공시의무 기간은 2003년 12월30일까지였다.
29일에 금감위로부터 조치내용이 담긴 문서를 받았으니 LG카드가 공시 의무만 제대로 지켰어도 투자자들이 상당한 경고 메시지를 얻었을 수 있었다.
12월 말까지만 해도 2.5대 1로 알려졌던 LG카드 주식 감자비율은 1월 들어 44대 1로 높아졌다.
LG카드 부실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안 채권은행들이 아무도 인수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사실상 완전 감자되어 버린 것이다.


한편 외환·우리카드사는 경영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올해 들어 결국 은행에 합병되고 말았다.
국민카드도 지난해 국민은행에 합병됐다.
삼성카드사는 관계사로부터 1조5천억원을 유상증자받고 삼성생명으로부터 5조원 이내 신용대출 한도를 승인받으면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모든 위험을 금융당국은 과연 몰랐을까? 왜 금융당국은 지난해 카드사들에 대해 비호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금감원 실무자는 “소프트랜딩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는 금감원이 2002년 하반기부터 카드사에 대환대출을 권장했다고 귀띔한다.
연체율 급증으로 카드사의 경영상태가 되돌릴 수 없이 긴급하게 악화되자 카드사도, 금감원도 서로 고육지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사실 2001년 2월께 이미 카드산업의 이상 조짐을 잡았다.
2001년 2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실무자들한테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고, 대책은 예정대로 5월에 발표됐다.
이 대책에 따르면 금감원은 5~6월 중 여전업법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개정해 △신규 진입을 제한하고 △현금대출 위주의 영업행태를 개선하고 △길거리 회원 모집 등 무질서한 영업행위를 시정하고 △경영지도기준 및 사외이사제 등 건전성 감독을 강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대책은 재정경제부와 규제개혁위원회에 의해 거부됐다.
여전업법 시행령을 개정하려면 법 개정권을 가진 재경부의 동의가 필요했고, 규제 강화와 관련한 감독 규정을 개정하려면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재경부는 “규제 자율화 흐름에서 벗어난다, 부대업무 취급 비율을 제한하면 서민들의 소액 자금 수요가 고금리의 사채시장으로 흘러간다”며 거부했고, 규개위는 “상위법인 재경부 시행령에 근거가 없다, 기업 영업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철폐된 규제를 다시 부활시킬 만한 중대사안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본회의 안건에도 올리지 않았다.


카드시장 과열은 보이는데 규제책이 없으니 금융당국으로선 눈 뻔히 뜨고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한 금감원 실무자는 “규제는 해야 하는데 법적 근거가 없어 2001년 7월부턴 하는 수 없이 경찰과 함께 다니며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신용카드 회원 길거리 모집 행위를 단속해야 했다”고 전했다.


2002년 들어 신용불량자 문제가 불거지자 2002년 5월, 정부는 당·정 협의를 거쳐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내놨다.
대책의 내용은 1년 전 금융당국이 내놓은 것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고 있었다.
카드 관련 신용불량자수는 2002년 말 263만명이던 것이 2003년 말 372만명으로 급등했고 올해 들어선 382만명에 다다랐다.


신용카드사들은 나름대로 불법도 마다하지 않으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금감원 민원 중 신용카드사 불법 채권 추심 신고건은 2002년 922건에서 2003년 8617건으로 크게 늘었다.
금감원이 직접 처리하지 않고 피민원기관에 이첩하는 민원의 비중은 증가했다.
2002년엔 477건으로 민원의 51%였지만 2003년엔 5887건으로 68%의 민원이 금감원 조사 없이 카드사로 바로 이첩 처리됐다.
민원 담당 직원 100여명으로는 민원 증가세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도 했다.


게다가 2003년 3월엔 SK글로벌 분식 회계의 여파로 난데 없이 카드채시장이 직격탄을 맞는다.
SK채권이 편입된 펀드들이 환매 사태를 겪으면서 그와 함께 편입된 대량의 카드채들이 팔리지 않아 일부 투신사들이 머니마켓펀드(MMF) 환매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환매를 제한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MMF는 카드채 편입 비중만 30%가 넘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운용사의 방만한 운용원칙에 있었지만, 신용카드사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높은 금리로 카드채를 많이 발행한 탓도 컸다.
3월10일 62조원이던 MMF 수탁고는 일주일 만에 40조원대로 줄었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지난해 말엔 LG카드 사태 수습에 나선 정부가 LG카드채를 보유한 연기금, 은행 등 기관 투자자들한테 만기 연장을 종용하는 바람에 카드채가 편입된 자산유동화증권(ABS)시장까지 마비를 일으키게 됐다.
유통시장 마비로 ABS 공모가 이뤄지지 않자 일부 할부금융사는 사모를 통해 ABS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사모는 공모보다 투명성이나 발행조건이 좋지 않다.
2001년 5월에 했어야 할 산업 규제를 1년 늦추는 바람에 자산시장은 물론 기업의 자금 조달에까지 충격이 커진 것이다.


시장을 보호하려던 금감원의 움직임은 소비자와 시장에 해당 금융사에 대한 비호로까지 비춰쳤다.
한 네티즌은 금융감독원을 감독하는 감독기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한다.
카드 고객이나 투자자보다 카드사를 비호하는 듯한 금감원에 대한 일반인의 정서가 어떠한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금감원-카드사 커넥션은 재경부·규개위 작품?

그러나 금감원의 카드사에 대한 비호적 태도의 본질을 파고들다 보면 뿌리는 금융정책·감독기구의 지배구조 문제로 가닿는다.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6월1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금융감독기구 개편,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감독정책을 수립하는 금감위는 관료조직으로서 감독정책 수립 과정에서 언제나 재정경제부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신용카드사에 대해 감독당국이 2001년 5월에 제시했던 미시건전성 감독조치가 1년여 동안이나 미뤄져오다가 당정협의를 거쳐서야 비로소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도 지나쳐버릴 수 없다.
이런 점들은 독립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금융감독당국의 장이, 정치적 영향력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작 자신도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시사한다.


그래서 김 교수는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해 민간기구화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금감원과 직원들이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반면 재경부와 감사원은 정부조직화를, 금감위는 금융부 신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관계기관들이 서로 어떤 주장을 하건 상관 없이 금융 서비스의 소비자가, 투자자가, 시장전문가가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금융감독당국이 금융사, 정부뿐 아니라 금융산업, 금융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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