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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페터 가이/ 주한 FES 소장
[사람들] 페터 가이/ 주한 FES 소장
  • Hannes Mosler/
  • 승인 2004.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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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개혁 땜질식 시장경제 전면 도입을”

“중동부 유럽의 공산주의 정권이 왜 개혁노선을 추구하면서도 경제적 몰락을 막지 못했고, 또 왜 북한 역시도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 지난 6월10일 열린 ‘북한-독일 경제협력에 관한 학술회의’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페터 가이 주한 프리드리히-에버트 재단(FES) 소장의 첫마디에선 비관적인 냄새가 진하게 풍겨나왔다.


사회주의 경제 전문가로 정치학과 경제학 두 분야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가이 박사는 한반도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인연으로 인해 지난 2001년부터 주한 FES의 소장을 맡고 있다.
FES는 독일 집권여당인 사회민주당의 외곽 씽크탱크다.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변화의 모습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무엇보다 북한-독일 경제협력 관계 증진에 실질적인 보탬을 할 수 있는 것도 그에겐 한국에 머물며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지난 3월, 독일 의원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두 나라 사이의 경제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도 그의 공로다.
얼마 전엔 독일문화원의 평양도서관 개관 행사를 평양에서 치르기도 했다.
옛 동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북한과 독일의 협력관계는 독일 기업들의 발 빠른 북한 진출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의 이력과 관심이 남다르기에 그의 눈에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 북한 경제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냉정한 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와서 15년 전에 붕괴된 소련의 얼치기 개혁 과정을 답습하려 한다”는 게 그 이유. 자연스레 “북한의 경제개혁도 이대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이어졌다.
우선 그는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2년 7월1일부터 북한에서 시행된 이른바 ‘경제관리 개선조치’ 역시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진행된 얼치기 개혁 시도로 간주한다.
계획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벗어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는 “내가 지금 말하는 건 어떤 예언을 하자는 게 아니라, 중동부 유럽에서 이미 증명된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


이처럼 그가 북한 경제의 미래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가 보기에 북한 사회의 현실이 그만큼 심각한 탓이다.
“옛날 소련에서 땅을 사람들에게 배분했을 때를 보죠. 국가기업에 남아 있던 농약이랄까 하는 걸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선 그것조차 힘들어요.” 경제를 살리려면 근본적인 민영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민영화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그 옵션도 없다”는 얘기다.


결국 그는 강연을 쓴소리로 끝맺음했다.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해요. 지금 남아 있는 생산 인프라는 50년 된 겁니다.
그것을 몽땅 버려도 좋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20~30%씩 성장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겠죠.” 그나마 땜질식 개혁보다는 완전한 개방과 시장경제의 전면적인 도입만이 한가닥 실마리를 열어줄 것이란 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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