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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MBA리포트] 임금에 대한 신화 vs 현실
[이원재의 MBA리포트] 임금에 대한 신화 vs 현실
  • 보스턴=MIT 슬론 스쿨 M
  • 승인 2004.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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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첨단 소프트웨어기업이 있다.
이 기업이 속한 업종에서는 프로그래머 스카우트 전쟁이 극심해서 채용 때 거액의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 기업에는 그 흔한 임직원 스톡옵션도 성과에 따른 주식 지급도 없다.
심지어 개인별 보너스도 지급하지 않는다.
영업부서 직원들조차도 성과급 없이 정해진 기본급만을 받아간다.
그런데 이 기업은 최근 창립 이후 21년 동안 연평균 25% 이상 성장했다.
믿을 수 있겠는가? 통계처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SAS가 바로 그 기업이다.
“자신이 직장에서 일할 때 무엇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지 중요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주세요.” ‘전략적 인적자원 관리’를 가르치는 다이언 버튼 교수는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하나씩 나눠줬다.
설문지에는 배움, 기술 습득, 좋은 느낌, 급여 수준, 일의 가치, 주변의 칭찬, 사원복지 혜택, 고용 안정이 쓰여져 있었다.
설문지를 거둬간 교수는 같은 설문지를 다시 한 장 나눠줬다.
“이번에는 여러분의 직장 동료들이 무엇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지 중요한 순서대로 써주세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학생들은 자신 스스로에게는 ‘배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에게는 ‘급여 수준’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을 내놓았다.
놀랍게도 이 결과는 씨티뱅크와 시카고 대학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와 같았다.
다른 조사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은 배움, 기술 습득, 좋은 느낌 등을 상위에 올려놓으면서도 남들에게는 예외 없이 모두 ‘급여 수준’을 1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왜 다들 스스로는 일터에서도 고상한 가치들을 생각하면서 남들은 돈만을 생각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미국 자본주의를 이끌어간다는 MBA와 투자은행가들의 의식이 이렇다 보니 수많은 대기업들이 성과보수체계를 설계하고 바꾸는 데 끊임없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쏟아붓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남들은 급여에 따라 행동을 달리 할 것’이라는 생각이 수십 년 동안 경영 현장을 지배했다.
개인별 성과급 체계나 아웃소싱 등 이 과정을 거쳐 나온 인사관리 원칙은 이제 상식이 됐다.
그런데 SAS는 이 모든 노력과 투자를 비웃었다.
‘개인별 성과급을 줘야 인재를 모을 수 있다’는 상식을 이 회사는 철저히 무시했다.
SAS는 비상장 업체로는 미국 최대 소프트웨어기업이다.
짐 굿나이트 SAS 창립자 겸 회장은 1976년 창사 때부터 ‘공정성’과 ‘형평성’을 회사 이념으로 내걸었다.
SAS는 직원들에게 개인 성과에 따른 보너스도 스톡옵션도 주지 않는다.
‘돈으로 일을 더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게 기본 원칙이었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거액의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내걸어 실리콘밸리에 엔지니어의 대이동이 벌어지던 99∼2000년의 IT업계 대호황기에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그러면서도 최고의 인재를 뽑아 키우면서 창사 이래 20년 이상 평균 25% 성장이라는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노동비용 최소화보다는 이직률 낮추기가 우선 SAS는 대신 가족 친화적인 환경과 각종 교육 기회 및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노동 시간은 일주일 35시간으로 엄격하게 지켜졌다.
회사 정원에는 아름다운 호수를 낀 조각공원과 바비큐 파티를 벌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사원들은 주말에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무료로 피크닉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간호사 5명, 의사 2명, 물리치료사, 상담사 등을 고용해 무료진료도 해주었고, 교사 1인당 3명의 아이만을 맡는 몬테소리 유아원과 유치원도 갖춰져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상당금액의 장학금 혜택을 갖춘 중고등학교도 문을 열었다.
세탁 서비스가 갖춰진 체육관과 운동기구들 역시 종업원과 가족들에게 모두 무료로 제공됐다.
해외 지사들도 마찬가지 수준의 혜택을 제공했다.
프랑스 지사는 파리 근교의 아름다운 성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영국 지사는 템즈 강변 대형 저택의 자태를 자랑했고, 독일 지사는 맥주홀과 호텔을 끼고 있었다.
SAS는 입양에 대해 자금지원 및 유급휴가를 지급한 최초의 회사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근무시간은 유연해서 종업원 스스로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었고, 자녀들에게는 대학 입학 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러니 98년 경제잡지 <포춘>이 선정한 ‘일하고 싶은 기업’ 3위에 오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SAS가 얻은 것은 낮은 이직률이었다.
동종업계 연 이직률 평균이 20%일 때, SAS는 4%도 되지 않는 이직률을 자랑했다.
경영진의 인사관리 목표 자체가 ‘노동비용 최소화’가 아니라 ‘이직률 줄이기’였다.
이유는 SAS의 사업모델에 있었다.
SAS는 통계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기업에 판 뒤, 끊임없이 유료 업데이트를 통해 돈을 버는 수익모델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소프트웨어 개발보다는 사후 서비스와 고객 기업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낮은 이직률로 인해 SAS에는 소프트웨어를 더 잘 이해하는, 경험 많은 엔지니어들이 늘어났다.
이는 질 좋은 사후 서비스와 고객들의 신뢰를 이끌었고, 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구호를 내걸고 미국 티셔츠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아메리칸 어패럴도 임금에 대한 또 다른 신화를 공격하고 있다.
‘노동비용을 줄이면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상식을 뒤집은 것이다.
미국 로스엔젤스에 있는 이 기업은 97년 창립 때부터 ‘노동착취 없는 옷’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모든 공정을 미국에서 진행했다.
나이키 등 다국적 의류업체들이 이미 임금 절감을 위해 아시아로 생산을 완전히 옮긴 뒤였다.
노동비용을 줄여 생산비용을 낮춘다는 신화 아메리칸 어패럴은 시간당 평균임금 12.5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다국적 의류업체들이 아시아 저개발국가 공장에서 지급하는 임금보다 5∼10배 가량 높은 액수다.
그러나 CEO 도브 챠니는 그렇다고 해서 생산비용까지 그만큼 차이가 나는 건 아니라고 외쳤다.
“생산비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시간당 12.5달러를 받으며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시간당 1달러를 받으며 더러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생산성이 월등히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저개발국가에서 미국까지 도로 실어오는 물류비용까지 합치면 셔츠 1벌당 생산비용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 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 기업이 창립 7년째인 2003년 8200만달러(약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드러내놓고 높은 임금을 지불하면서도 시장의 승부에서 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탠포드 MBA의 제프리 페퍼 교수는 ‘임금에 대한 6가지 위험한 신화’라는 글에서 ‘임금을 통한 관리’에 대한 맹신에 따라 나타나는 6가지 잘못된 상식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첫째, 임금과 노동비용은 같다는 신화다.
임금은 시간당 지불하는 금액으로 계산되지만, 노동비용은 생산 단위당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 신화에는 생산성이 노동비용 결정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둘째, 임금을 깎아서 노동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신화다.
임금이 낮아지더라도 생산성이 따라서 떨어진다면 노동비용은 줄지 않는다.
셋째, 노동비용은 총 생산비용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는 신화다.
아메리칸 어패럴이 증명했듯이, 컨설팅이나 투자은행 같은 전문 서비스기업이 아닌 이상 이는 진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청바지의 경우 노동비용은 전체 비용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노동비용 감축은 아주 유효한 경쟁전략이라는 신화다.
노동비용 감축은 누구나 복제할 수 있는 전략이다.
그러니 전략 가운데서도 가치가 매우 낮다.
고객 관계 개선이나 제품 질 향상과 같은 경쟁전략보다 훨씬 낮다.
다섯째, 개인별 성과급 체계는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신화다.
이는 협동이 필요 없는 업종에서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돈을 위해 일한다는 큰 신화다.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이건 사실이 아니다.
노동자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에 대해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사대상: 시카고 대학 MBA 학생들, 씨티뱅크 직원들, 1번이 가장 중요한 요소) 자기 자신 1. Learning 2. Skills 3. Feel Good 4. Pay 5. Worthwhile 6. Praise 7. Benefits 8. Security 다른 사람들 1. Pay 2. Skills 3. Security 4. Benefits 5. Feel Good 6. Learning 7. Worthwhile 8. Praise
임금에 대한 6가지 위험한 신화 (출처: 제프리 페퍼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 1. 임금과 노동비용은 같다.
2. 임금을 줄이면 노동비용은 자동으로 줄어든다.
3. 노동비용은 총 생산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4. 노동비용 감축은 중요한 경쟁전략이다.
5. 개인별 성과급 체계는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6. 사람들은 돈을 위해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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