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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2회-한국, 2013년을 대비하라!
[기획연재] 2회-한국, 2013년을 대비하라!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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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디에 배째라 정신 안 통한다
2차 공약기간에 개도국 포함 가능성 커져…시범사업 정부 부처 이견, 기업서도 시큰둥


김형섭 환경부 지구환경담당관은 “현재까지 정부는 3차 공약기간이 시작되는 2018년부터 자발적인 의무부담을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한다.
이는 정부가 지난 1999년 독일 본에서 열린 제5차 당사국 총회에서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가 교토의정서를 비준할 뜻을 내비치면서, 한국도 2013년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불확실하기만 했던 교토의정서가 발효되고 1차 의무이행 기간이 지나고 나면, 한국의 처지도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2차 공약기간(2013~2017년)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의무부담 협상이 시작되면 한국도 부속서Ⅰ 국가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러시아 비준시사로 2차 의무부담 협상 급물살

우선 2차 의무부담 협상에서 개도국이 포함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개도국들을 참여하도록 하는 압력은 있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탈퇴하면서 내세운 이유 중의 하나도 개도국의 불참이었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다소비국가라는 점에서 의무부담을 피해 가기 어려운 처지다.
지난 2001년 한국의 CO2 배출량은 90년에 비해 92.7%나 늘었다.
세계적으로도 9위 수준이다.
지난 2000년을 기준으로 제조업에서 에너지 다소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3.2%다.
일본이 23.3%, 프랑스가 28.2% 등인 것을 감안하면 차이가 크다.


게다가 만일 교토의정서가 계속 이행되지 않고 미국을 포함한 새로운 틀이 짜지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의무 자체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쯤 되면 적어도 배출권 거래를 미리미리 학습해 둬야 할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정부도 준비 속도는 꽤 더딘 편이지만, 시장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배출권 거래에 대한 선행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부터 5개 발전회사와 삼성전자, POSCO 등 민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2차례 모의거래를 실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 국무조정실 산하 기후변화협약 대책위원회는 오는 2006년께 배출권 거래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대책위의 김규형 사무관은 “지난 2월 산자부와 환경부에서 각각 제출한 계획안을 토대로 연말까지 시범사업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시범사업안을 짜는 과정에서 드러난 부처간 이견은 배출권 거래를 바라보는 인식차이를 그대로 담고 있어 흥미롭다.
산자부와 환경부 모두 배출권 거래의 기본 설계는 영국 사례를 참고했다.
정부가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해서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한다거나, 1단계에서는 CO2로 시작하고 2단계부터 교토의정서상에 규정된 6개 온실가스로 확대하는 등이 그렇다.


하지만 양 부처의 안은 참가자와 기준배출량 설정 등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참가자 선정에 있어 환경부는 연 평균 CO2 배출량 3만톤 이상 배출 사업장을 중심으로 시작하자는 입장인데 비해, 산자부쪽은 배출량이 가장 많은 발전 5개사가 먼저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차이는 대체로 환경부가 환경규제에 좀 더 비중을 두는 반면, 산자부는 탄력적 운영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당초 산자부쪽에선 초기 배출권 할당방식에서 절대 감축량을 부여하지 말고 원단위 방식으로 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여기서 원단위 방식이란 일정량의 제품을 생산할 때 나오는 CO2 배출량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목표치를 먼저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 효율은 올라갈 수 있어도 경기에 따라 배출 총량 자체는 늘어날 수도 있다.


결국 성장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셈이다.
노종환 에너지관리공단 기후변화협약대책단장은 “온실가스의 경우 다른 대기오염물질과 달리 배출량을 줄이는 게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배출권을 발생시키려면 초기에 할당량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가 만만찮은 문제라는 것이다.



에너지다소비국 한국, 감축비용 어마어마

이런 분위기는 아직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기후 변화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대체로 미흡한 편이라는 점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한국에 부여할 의무가 불확실한데다, 자칫 이런 환경규제가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을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다소비형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2010년에 95년 수준으로 CO2 배출량을 줄이면 톤당 439달러의 감축비용을 치러야 하며, GDP는 2.4%가 줄게 된다.


하지만 설혹 교토의정서를 피해가더라도 환경과 관련한 각종 무역규제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김용건 박사는 “온실가스 관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는 물론이고 수출 관련 무역규제에 대한 동향을 정확히 파악한 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유럽연합(EU) 자동차업계는 신규 등록되는 승용차의 CO2 배출량을 오는 2008년까지 95년 대비 25% 줄이는 자율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한국도 2009년부터는 EU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 것이다.
반도체업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반도체협회는 PFC(과불화탄소)의 배출량에 대한 자발적 감축목표를 정하고 2010년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도 2010년까지 97년대비 10% 이상을 줄여야 한다.


이와 관련 POSCO RCC(Respons to Climate Change) 벤처팀의 문승재 소사장은 “철강쪽도 워낙 에너지 소비가 많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자체적인 저감정책 외에 시장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POSCO의 경우 자체적으로 CO2를 얼마나 줄여갈 수 있는지, 그에 따른 비용은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을 파악해 가면서 배출권 거래 시장을 대비해 가고 있다.



기업, 규제 아닌 리스크 관리 차원서 바라봐야

유상희 동의대 경제학과 교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을 더 이상 규제나 투자비용의 증가로 바라봐선 안 되며 기업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 기후 변화라는 위험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가는 갈수록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월스트리트의 기관 투자가들은 CO2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업체의 경우 기업가치가 40%까지 감소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 기업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잦은 천재지변이나 각종 기후 변화 관련 정책으로부터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 대신, 배출권을 자유롭게 사고 파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잘만하면 감축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해외의 유수한 다국적 기업들이 인증된 감축실적을 사들이면서 미래의 규제를 대비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기업들이 CO2 거래에 귀를 쫑긋 세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취재지원-(주)에코프론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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