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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MBA리포트] 마이크로소프트 회계조작 사건의 진실
[이원재의 MBA리포트] 마이크로소프트 회계조작 사건의 진실
  • 보스톤=MIT 슬론 스쿨 M
  • 승인 200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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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조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수많은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조작해 투자자들을 속이려다가 덜미를 잡혔다.
엔론이나 월드콤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대우나 SK 같은 국내 굴지의 기업도 여기에 연루돼 기업의 운명이 바뀌었다.
이들은 모두 이익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기업의 얼굴에 짙은 화장을 입혀 투자자들을 기만하려 했다.
결국 적발된 기업들은 감독당국의 철퇴를 맞았고 세계 경제계에는 ‘기업 투명성’이라는 이슈가 떠올랐다.
그런데 회계를 조작해 이익을 억지로 줄이려는 기업이 있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세계적 기업이 그랬다면 말이다.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내부감사 책임자였던 찰스 팬서쥬스키는 이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소송을 제기한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발견됐다.
팬서쥬스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 마이크 브라운에게 회계조작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이후에 해고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법정에서는 최고경영자 빌 게이츠가 CFO에게 보낸 e메일이 증거물로 제출된다.
여기서 빌 게이츠는 “나는 이익이 안정된 수준에서 유지되며 매끄럽게 움직이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썼다.
뜻밖의 ‘건수’를 발견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90년부터 반독점과 관련된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었지만, 회계조작과 관련된 조사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다른 수많은 회계조작 사건과는 달리, SEC는 이 첫 조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익을 줄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알려졌다.
조사는 비공개리에 진행됐지만, 시장에는 소문이 돌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99년 6월에 SEC 조사를 받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놀라운 성장 기업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86년부터 회계조작 조사 사실이 밝혀진 99년까지 매출액은 연 평균 43%, 영업이익은 연 평균 49% 늘어났다.
사실 성장 속도보다 더 놀라운 건 성장의 지속성이다.
상장 뒤 99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순이익은 매 분기마다 전년 같은 분기에 비해 늘어났다.
분기 매출액 성장률은 전년 같은 분기에 견줘 한번도 15%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실적은 언제나 시장의 예측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의 분기 순이익은 단 한 분기를 제외하고는 매 분기 증권사 애널리스트 평균 이익 예측치와 같거나 높았다.
소프트웨어산업이 그 기간 동안 상당한 변동을 겪었고 산업에 대한 주식시장의 예측도 그에 따라 크게 출렁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투자자를 겁주는 보수적인 회계원칙 감독기관에서 이런 기업을 본다면 이익을 부풀렸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적에 관한 한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했다.
부풀리기는커녕 줄이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경영진은 투자자들에게 허풍을 떨기보다는 장래 실적에 대해 어둡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으면서 경고를 하곤 했다.
미국 증권사 골드먼 삭스의 애널리스트 릭 셜런드는 95년의 한 애널리스트 설명회를 이렇게 회상했다.
“빌 게이츠와 영업최고책임자 스티브 발머가 또다시 우울한 설명회를 마친 뒤, 그들을 복도에서 만났죠.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축하합니다.
투자자들을 겁주는 데 성공하셨군요.’ 그랬더니 그 둘은 손을 쳐들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하더군요.” 이 일화는 실적 발표에 대한 경영진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경영진의 태도만 보수적이었던 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체적으로 2가지 보수적인 회계원칙을 갖고 있었다.
먼저 소프트웨어 연구개발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당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회사들은 연구개발비를 돈이 나가는 즉시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자산으로 기록해 쌓아뒀다.
지금 쓰는 연구개발비는 당장 써서 없어지는 돈이 아니라 언젠가 회사에게 수익을 안겨줄 ‘지식’이라는 자산을 가져다준 것이므로, 지금은 자산으로 기록해 놓고 나중에 연구개발의 결과로 매출이 나타날 때 비용으로 처리하는 회계 방법이다.
매출은 같은데 비용이 적어지니 당연히 장부상 순이익은 늘어난다.
물론 감독기관에서도 인정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개발비를 발생하는 족족 비용으로 처리해 이익을 줄였다.
또 한 가지는 매출을 언제 기록하느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를 팔아 얻은 수입 가운데 일부를 매출로 기록하지 않는다.
업데이트나 패치 등 사후 관리에도 비용이 들어간다는 게 그 이유다.
이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매출과 비용은 같은 시점에 기록돼야 한다’는 회계의 기본 원칙과 관련이 있다.
지금 판매하는 소프트웨어에 들어가는 비용은 지금까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생길 것이므로, 소프트웨어 판매 대금을 둘로 나눠 이미 비용이 투입된 부분만 현재의 매출로 기록하고 아직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는 부분은 나중에 매출로 기록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출액 기록을 뒤로 미뤘다.
물론 대부분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이렇게 기록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판매 계약이 맺어지는 즉시 매출을 기록한다.
비용은 회계 장부에 앞당겨 기록했다.
매출 기록은 뒤로 미뤘다.
비슷한 업종의 다른 기업들에 견줘 같은 장사를 하고도 적은 이익을 발표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회계는 부기가 아니라 전략이다 빌 게이츠는 보수적 실적전망과 회계에 대해 이렇게 변명했다.
“내가 정말 겁을 내기 시작했던 때는 친구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을 때죠. 거래 업체가 부도나는 일이 생기면서 친구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는 사태가 생기면 어쩌나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극단적 보수주의를 채택한 겁니다.
항상 1년치 월급을 은행에 현금으로 쌓아둔 채 경영을 하기 시작했죠.” 소송을 제기한 펜서주스키쪽처럼, 다른 시각도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보수주의는 주가 관리를 위해 철저하게 계획된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우선 빌 게이츠가 일부러 보수적 전망을 제시하면서 시장의 기대치를 낮춘 뒤, 기대치보다 조금 더 높은 이익을 보여주는 교묘한 전략을 사용했다는 시각이 있다.
한 분기만 빼고 시장의 예측을 넘어서는 순이익과 이에 따른 주가의 끝없는 상승의 배경에는 이런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회계 장부를 ‘과자 단지’로 이용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초반의 엄청난 이익 증가세가 언젠가는 끝나고 주가폭락이 따라올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익이 많이 날 때 조금씩 장부 어딘가에 있는 과자 단지에 이익을 숨겨뒀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익이 갑자기 줄어들 때 꺼내어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매출액 기록을 뒤로 미룬 것이 전형적인 ‘과자 단지’ 전략이다.
SEC 조사는 결국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
부당해고 소송은 결론 없이 합의로 끝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회계 관리가 불법은 아니라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이 나지 않은 불법성이나 투명성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경영 전략의 시각으로만 봐도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크다.
회계는 부기가 아니다.
전략이다.
1999∼2000년 인터넷 거품은 CFO들의 역할을 극적으로 바꿨다.
그들은 회계 장부만 관리하는 과거 숨은 창고지기 역할에서 벗어나, 전면에 나서서 투자자들을 설득해 외부 자금을 끌어오는 황금의 손으로 변신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례는 세계적 기업에서라면 CFO의 역할이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의 얼굴을 어떻게 치장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전략가이자 의사소통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례는 또 거꾸로 회계의 창을 통해 한 기업이 자신의 미래와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마치 창문으로 남의 집 침실을 엿보듯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회계 장부에서 빌 게이츠 마음속에 있는 희미한 불안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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