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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크린 속으로 철학 여행 떠나요
[라이프] 스크린 속으로 철학 여행 떠나요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7.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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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의 영화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올여름 다시 한번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지난 2000년 “영화산업은 매춘산업”이라는 날카로운 비판을 남기고 은퇴한 이후, 최근에는 연극 작업에만 몰두해 있다.
오는 7월22일까지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특별전’에서는 그의 대표작 7편이 한자리에서 상영된다.


물론 그의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납량 특집’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20세기 최고의 영화작가이자 ‘영화 철학자’로 불리는 베르히만은 평생 동안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존재와 구원 같은 근원적인 물음을 집요하게 탐구해, 영화 매체에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57년 깐느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제7의 봉인>은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1918년 개신교 목사의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베르히만은 스톡홀름 대학에서 113편의 연극 작품을 만드는 등 먼저 연극을 통해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스벤스크 영화사의 각본 조수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44년에는 알프 시외베르그 감독의 작품 <고통>의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해 흥행에 성공한다.
첫 감독 작품은 46년작 <위기>. 초기에는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를 주로 만들었지만, 점차 인간의 실존, 의사소통의 부재와 같은 난해한 주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영화 자금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자 <사랑에 관한 한 레슨>, <여자들의 꿈>, <한여름밤의 미소> 등 가벼운 코미디물에 손을 댄 후, 여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제7의 봉인>을 찍었다.



영화 철학자, 베르히만의 대표작 7편 상영

‘제7의 봉인’은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곱 번째 봉인을 뗀다는 것은 신이 이 세상을 완전히 파괴시키기 직전의 마지막 일을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의 무대는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창궐하던 14세기의 스웨덴. 십자군운동에 참가했던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는 죽음의 땅이 돼버린 고국으로 돌아온다.
신은 인간에게 왜 이런 재앙을 내린 것일까. 블로크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베르히만은 신의 배반과 침묵, 그것에 고통받는 인간의 상황을 격조 높은 흑백화면에 담아낸다.


베르히만은 <제7의 봉인>을 자신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으로 들었다.
“(이 작품에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분명 완벽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온갖 종류의 광기와 싸워야 했으며, 또한 서둘러 만든 흔적이 영화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기복이 없고, 강렬하고, 활력이 넘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영화 속에서 나는 열정적으로 그리고 최대한도로 나의 주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 그는 35일 만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르히만은 어린 시절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보다는 엄격하고 규율과 형식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성장기의 베르히만은 타인과의 관계, 소통보다는 자신만의 내면세계에 집착하고 탐닉해 꿈과 환상, 무의식 같은 본능적인 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경험은 10대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연극과 함께 베르히만 영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베르히만이 어린 시절부터 ‘강요받아 온’ 신앙심의 잔해는 영화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또한 당시는 유럽의 실존주의 운동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이기도 하다.
40~50년대 만개한 사르트르, 카뮈, 하이데거, 야스퍼스의 저작들이 던진 물음은 신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안토니우스 블로크는 회백색 광대로 분장한 ‘죽음’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기사: 나는 어둠 속에서 그분을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도 거기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죽음: 어쩌면 거기 아무도 없는지도 모르지.
기사: 그렇다면 인생은 끔찍한 공포입니다.
모든 것이 허무라는 것을 알면서 죽음의 면전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죽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나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
기사: 하지만 언젠가 그들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여 어둠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죽음: 그날이 오면….

<제7의 봉인>이 제기한 물음들은 61년 제작된 <어두운 유리를 통해>에서 상당 부분 정리된다.
발틱해의 섬에 고립된 한 가족의 24시간을 조명한 이 작품에 대해 베르히만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두운 유리를 통하여>에서 내 어린 시절의 유산은 청산되는데, 나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신성한 신의 개념은 모두 괴물, 혹은 카린의 마임에 틀림없다고 단언 하였다.
그것도 두 얼굴을 가진 괴물, 혹은 카린의 말처럼 거미 모습의 신이라고.” 그것은 신의 부재와 삶의 허무에 대한 실존적 인식이다.


섬에 갇힌 가족의 모습은 상처투성이다.
정신분열증으로 치닫는 딸 카린과 그녀의 남편인 의사 마르틴, 카린의 동생 미누스와 소설가로 가족에게는 관심이 없는 아버지 데이비드. 이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한다.
섬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이들의 갈등은 극적으로 폭발한다.
카린과 미누스는 근친상간에 빠지고, 미누스는 연극을 통해 냉담한 아버지에게 복수한다.
<어두운 유리를 통하여>와 <겨울빛>, <침묵>은 베르히만의 ‘신의 침묵’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두운 유리를 통하여>는 믿음의 붕괴를, <겨울빛>은 믿음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그리고 <침묵>은 부정적으로 각인된 믿음을 다루고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베르히만은 이런 식의 분류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베르히만의 영화에는 근대연극의 사실주의와 북구의 신비주의 영화전통,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실존주의가 함께 녹아 있다.
모두 20여편이 넘는 많은 영화를 만든 그는, 영화를 통해 최초로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던진 선구자이자, 이후 등장한 누벨바그 작가들의 영화적 스승으로 추앙받았다.





표/ 잉그마르 베르히만 특별전 상영작품
한여름밤의 미소(Smile of Summer Night)
108분, 흑백, 1955년
깐느영화제 시적유머상, 보딜영화제 보딜상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
105분, 흑백, 1957년
깐느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이탈리아 영화평론가 네셔널신디케이트 실버리본상

산딸기(Wild Strawberries)
90분, 흑백, 1957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보딜영화제 최고유럽영화상, 미국 골근글러브 외국영화부문상

처녀의 샘(The Wirgin Spring)
89분, 흑백, 1960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깐느영화제 특별상, 미국 골근글러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어두운 유리를 통해(Through a Glass Darkly)
91분, 흑백, 1961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베를린 영화제 OCIC상

외침과 속삭임(Cries and Whispers)
91분, 칼라, 1972년
아카데미 촬영상, 미국 영화비평가 모임 NYFCC상, 이탈리아 내셔널신디케이트 최고감독상

가을 소나타(Autumn Sonata)
97분, 칼라, 1978년
보딜영화제 최고 유럽영화상, 골든글러브 최고 외국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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