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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식탁 위에서도 ‘귀하신 몸’
2. 식탁 위에서도 ‘귀하신 몸’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4.08.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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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가게 고구마 열풍…패스트푸드, 패밀리 레스토랑서도 매출 효자 역할 톡톡<> 고구마를 소재로 한 제품개발은 외식업계에서도 한창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구마 피자. 지난해 5월 한국피자헛은 달콤한 고구마 띠를 두른 ‘리치골드’를 출시, 1년 만에 무려 700만판을 팔았다.
피자업계에선 단기간 내 이렇게 많이 팔린 것은 처음이라며, 너도나도 피자에 고구마를 얹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피자헛,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 등 피자 3강업체뿐 아니라, 동네 피자가게에서도 고구마 피자를 간판 메뉴로 걸고 있다.
이처럼 피자가게에 고구마 열풍이 분 배경은 뭘까. 외식업은 불황의 여파가 큰 업종 중의 하나다.
지난 2002년부터 6개월이나 리치골드의 연구개발에 골몰한 선대호 한국피자헛 기술연구팀 차장도 이런 점이 고민스러웠다.
불고기, 불갈비, 치즈 크러스트 피자 등 히트제품 제조기였던 그에게 블록버스터급의 새로운 피자를 만들라는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선 차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바로 피자의 맛이다.
그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급속도로 변하는 데다, 맛에 대한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고객의 입맛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치골드의 탄생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치즈 크러스트 피자의 가장자리에 들어 있는 모짜렐라 치즈를 겉으로 드러내자는 게 목적이었다.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두꺼운 크러스트의 지붕을 열기로 한 것. 그런데 막상 지붕을 열자니, 가운데 부분의 피자 토핑과 모짜렐라 치즈를 구분할 경계선이 필요했다.
치즈가 녹아 흘러내리는 걸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떠올린 것이 바로 고구마 띠다.
부드럽게 으깬 무스형태의 고구마 띠를 피자 가장자리에 두르면, 훌륭한 경계선이 되는 동시에 피자 끝부분의 밋밋한 맛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각종 테스트 결과 고구마와 치즈가 어우러지면 의외로 좋은 맛이 난다는 사실을 검증해 낸 것이다.
여기에다 고구마는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할 뿐더러, 식이섬유가 풍부한 다이어트 식품이라 비만식품인 피자의 부정적 측면을 덜어주는 데도 도움이 되는 최적의 소재로 떠올랐다.
동·서양의 맛 조화된 제품 인기 피자헛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치즈와 고구마가 ‘운명적 만남’을 가졌다며 대대적인 광고를 내보냈고, 결국 소비자들도 고구마 피자의 맛에 승복했다.
리치골드가 출시한 지 3개월 만에 100만판이 팔리자, 피자헛은 곧바로 고구마띠를 한 줄 더 넣은 ‘리치골드Ⅱ’를 출시했고 얼마 전에는 ‘핫 앤 스위트’도 나왔다.
고구마 피자의 성공은 피자헛의 회사 전체 매출상승에도 큰 기여를 했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 피자헛은 총 3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에 비해 18%가 오른 셈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해 피자헛 매출의 절반 가량이 리치골드 시리즈라는 점이다.
고구마 피자가 회사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는 경쟁 업체들도 비슷하다.
미스터피자의 경우 고구마를 집어넣은 ‘포테이토 골드’가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한다.
오는 9월께는 50%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패스트푸드업체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고구마는 주가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KFC는 지난해 11월 ‘고구마샐러드’를 출시해 2개월 동안 100만개를 판매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정수연 KFC 마케팅팀 부장은 “회사의 리얼푸드(Real Food) 캠페인의 컨셉트에 맞게 기획된 것”이라며 “통 고구마를 아낌없이 사용해 맛과 건강을 동시에 잡으려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했다”고 말한다.
스카이락과 빕스를 운영하는 CJ푸드빌도 고구마로 재미를 본 기업 중의 하나다.
오븐에 구운 뒤 버터, 베이컨, 실파를 섞어 토핑을 올린 ‘통고구마’는 기존 제품인 ‘통감자’를 밀어내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고구마 그라탕’, ‘고구마 크런치’, ‘고구마 빠스’ 등 다양한 메뉴가 출시된 상태. 고대식 CJ푸드빌 상품개발팀 과장은 고구마 인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 들어선 제공되는 형태는 서양적이지만, 맛은 익숙한 전통의 맛을 담고 있는 메뉴가 인기를 얻습니다.
2가지가 적절하게 담겨야 하는 것이죠. 발암물질이 들었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로 꾸준히 소비가 줄고 있는 감자와 비교하면, 고구마는 승승장구를 타고 있는 셈입니다.
고구마표, 흥행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이런 고구마의 주가를 일찌감치 올려놓은 장본인은 고구마 케이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파리크라상은 지난 2001년부터 인도네시아산 군고구마페이스트를 함유한 생크림으로 고구마 케이크를 만들어 판매했다.
고구마 케이크는 70여종이 넘는 파리크라상의 케이크 품목 중에 가장 높은 매출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구마 케이크가 처음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께부터다.
사설 베이커리들이 일본에서 먼저 판매되기 시작한 고구마 케이크를 한국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던 고구마 케이크는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형 제과업체들의 제품개발까지 이끌어낸 것. 파리크라상 식품기술연구소 관계자는 “구황작물인 데다 토속적인 느낌의 고구마가 케이크와 접목이 되면서 맛이 더 살아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지가 한층 올라간 것”이라고 말한다.
고구마 케이크가 판매 초기에 지방보다 서울에서 많이 팔렸던 것도 처음에는 구황작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고구마가 흥행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일찌감치 고구마를 소재로 제품개발에 나섰지만 히트를 치진 못했다거나, 반짝 인기를 끌다가 다소 시들해진 고구마표 제품들도 있다.
지난 2002년 미스터피자는 피자헛의 리치골드보다 한발 앞서 고구마를 피자 전면에 토핑으로 얹은 ‘스위티피자’를 출시했다.
하지만 고구마의 함량이 많다 보니, 단맛이 너무 강해 타깃이 초등학생 위주로 좁혀지게 된 것. 또한 맛탕으로 불리워온 고구마 빠스는 독특한 맛으로 판매점포가 급격히 늘어난 바 있으나,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반짝 인기에 그쳐 극소수 업체만 살아남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고구마를 소재로 한 연구, 개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분위기다.
외식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황기일수록 단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경향이 강해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음의 안정을 시키려는 심리 때문에 달콤한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도 지난 90~92년 경기침체시에 소비가 크게 늘었던 캔디류가 97~99년 호황기에는 매출이 줄었다는 것. 따라서 업계에선 맛과 영양, 친근감 등에서 우위를 누리는 고구마가 경기적 요인으로 볼 때도 당분간 높은 선호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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