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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지상강좌 11]유리사업 살얼음판 걷듯
[남북경협 지상강좌 11]유리사업 살얼음판 걷듯
  • 김보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 승인 2004.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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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한신, 제안받은 지 7년 만에 공장 건설 첫 삽…북한 유일 생산공장, 기대 한몸에 평양에서 북한 술을 산 뒤 베이징을 거쳐 서울까지 가져와 짐을 풀면, 가끔 허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조잡한 술병 탓에 술이 반이나 새어나와 짐을 온통 알코올 범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의 병 만드는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며 한마디 투덜거리게 된다.
하지만 이 술병은 북한에서 만든 것이 아니다.
모두 중국산이다.
애석하게도 현재 북한에는 유리병 만드는 공장이 하나도 없다.
북한은 건국 초기 큰 규모의 유리공장을 남포에 만들었는데, 1995년 ‘고난의 행군’ 때 가동을 멈춘 뒤 아직까지 재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남포유리공장은 판유리와 유리병을 함께 생산하는 종합유리공장이었다.
따라서 판유리도 유리병도 생산할 수 없게 된 북한이 유리공장을 탐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평양 한신유리공장’ 건립을 추진 중인 G-한신 g-hanshin.com의 김한신(42) 사장은 97년부터 북한으로부터 이 사업 제안을 받았다.
김 사장이 이렇게 일찍 북한과 접촉하게 된 것은 당시 김 사장이 베이징에서 유리병 합작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83년부터 남한 내에서 유리병 제조업을 하다 국내 채산성이 나빠지자 95년부터 공장을 베이징으로 옮겼다.
그런데 당시 생산한 유리병을 북한에 수출하면서 북한 무역회사들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해주 모래, 유리 주원료로 상급 하지만 김 사장은 오는 9월 말 혹은 10월말 쯤에야 평양 낙랑구역 승리3동에 위치한 유리공장 터에서 공장 건설의 ‘첫 삽’을 뜬다.
북한으로부터 첫 제안을 받은 지 거의 7년 만의 일이며, 통일부로부터 협력사업 승인을 받은 때로부터도 3년 만의 일이다.
김 사장의 이런 ‘거북이 걸음’은 대북사업이 그만큼 여러 가지 변수와 난관을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기도 하다.
김 사장이 중국에 있는 유리병 공장을 북한으로 옮기기로 결심한 것은 2000년 정상회담 직후였다.
그 이전에는 남북관계도 얼어 있었지만, 남한의 IMF 구제금융 사태로 대북 투자를 할 여력도 사실 없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처음부터 북한이 ‘탐나는 투자처’라고 믿고 있었다.
“유리의 주원료는 모래인데, 중국 모래보다 해주 앞바다에서 나는 북한 모래의 질이 좋습니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좀 더 고품질의 유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김 사장은 모래의 질 외에도 북한 공장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모래를 운반하는 데 드는 물류비가 절약되고, 노동자들도 북한 대학 요업과를 나온 고급 인력을 쓸 수 있다.
더욱이 중국과 달리 북한에서 채용한 인력은 이직률이 제로에 가까워서 인력운용에서도 안정성이 높다.
여기에 남한으로 반입할 때 관세까지 없다.
이에 따라 김 사장은 2000년 11월 첫 방북 이후 현재 7차례 북한을 다녀오면서 유리병 공장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현재 북한과 합의한 생산물량은 하루 5톤 규모다.
연간 생산량으로 하면 약 1천만병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초기에는 이 물량을 전량 남한으로 가져올 계획이다.
김 사장은 “그러나 북한이 북한 내에서 쓸 수 있도록 연 1천만병을 더 생산해 총 2천만병 생산체제로 가자고 계속 제안을 해오고 있다”고 밝힌다.
사실 이런 제안도 흥미가 당기는 것이다.
그는 “북한 내수품의 경우에도 생수 수출 등 유리병 용도가 계속 늘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 사장은 “초기 생산량이 제대로 나오면 곧 추가로 자금을 모집해 하루 1천톤 규모로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다.
북한에서 유리병이 생산되기 시작하면 ‘경쟁력’이 입증될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이 공장의 출발점이 될 연 1천만병을 이른 시일 안에 실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생산조건이 아직 미결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용광로 연료로 쓸 LPG 가스의 북한 반출이 문제다.
LPG 반출 문제 해결되면 연 1천만병 생산 유리는 모래와 다른 원료를 용광로에 넣고 가열해서 만든다.
이때 연료 공급의 안정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용광로 불이 한번 꺼지면 다시 복구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유리 제조용 용광로는 대부분 LPG 가스를 사용하는데, 평양까지 수송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아직 반출 문제를 매듭 짓지 못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개성공단 운영이 본격화하면 이 문제도 잘 풀릴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이제 개성공단까지 차가 들어가는 만큼 남한 운전사가 LPG 차를 개성까지 몰고간 뒤 운전기사를 북한 사람으로 바꿔 평양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김 사장은 평양 유리공장이 빠른 시일 안에 가동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인들의 각성이 중요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김 사장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자신을 대중에게 알리는 이벤트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이벤트성 행사는 지양하고 경협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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