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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협상 ‘악으로, 깡으로’ 되나
쌀 협상 ‘악으로, 깡으로’ 되나
  • 이정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 승인 2004.09.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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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화 유예하든 수용하든 후회할 건 뻔해…절대 불가론 버리고 대책 세워야 UR협정에 따라 우리나라는 쌀 수입을 자유화하는 관세화 조치를 올해까지 유예하는 대신 총소비량의 4%에 해당하는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였다.
이와 같은 예외 조치를 앞으로도 지속하기 위한 협상이 현재 진행되고 있고 이 협상은 올해 안에 끝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이 쌀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쌀의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을 대폭 확대할 뿐만 아니라 다른 농수산물에 관련된 현안의 양보까지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의 요구는 충격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협상을 위한 1차 제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요구는 지나치다.
중국은 왜 이렇게 과도한 요구를 했을까? 그것은 중국이 상황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고, 그 같은 오해는 상당 부분 우리가 자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세화 유예조치, 중국 오해 자초한 꼴 먼저 우리는 이제까지 협상장 안팎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쌀을 관세화하면 수입이 크게 늘어나 농가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관세화를 다시 유예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쌀을 관세화할 경우 중국이 우리나라에 쌀을 대량 수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부풀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관세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이 줄기차게 정부를 압박하였다.
물론 이것은 쌀시장 개방 확대를 막으려는 것이었지만 한국 정부가 어떠한 경우에도 관세화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즉 중국은 한국 정부가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세화 유예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요구 수준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관세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인식하고, 관세화 절대 불가라는 주장보다 효과적 협상전략과 대비책을 세우는 일에 지혜를 합쳐야 한다.
먼저 중국의 수출 기대감이 근거 없이 부풀려진 것임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현재 사상 최고 수준에 있는 국제 쌀 가격이 앞으로 떨어지겠지만 수년간은 높은 수준을 지속하리라는 점, 관세화하더라도 DDA 협정이 발효되는 2007년경까지는 관세감축과 저율관세수입량(TRQ)이 동결되어 2008년 이후에나 관세화의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점, 특별수입제한제도(SSG)가 유지되는 한 수입량이 크게 늘어날 수 없다는 점, 일본과 대만의 경우 고율관세와 소비자 외면으로 관세화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중국의 요구는 검토의 여지가 없을 만큼 과도한 것임을 협상장 안팎에서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관세화 유예를 선호하는 것은 수입량 축소보다 국제 가격이 일시적으로 폭락하여 쌀 생산 농가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되는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려는 것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에 전달하여 중국 협상팀을 압박하여야 한다.
한편, 이제 관세화 전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지혜로운 선택의 기준을 설정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가령,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하였지만 수출국들이 관세화 유예의 조건으로 의무수입량(MMA)을 현재의 4%에서 8%로 늘릴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연말을 맞이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이 조건을 수락하고 관세화를 유예할 것인가? 아니면 관세화를 선언할 것인가? 의무수입물량이 지나치게 많다고 판단하여 관세화를 선택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지금까지 톤당 500달러였던 국제 쌀값이 갑자기 300달러 이하로 하락한다면 쌀 수입은 크게 늘어나고 많은 사람이 관세화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고 정부를 비난하게 될 것이다.
국제 가격이 하락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있을 DDA협상 최종 결과 쌀에 대한 관세율이 매년 큰 폭으로 떨어진다면 역시 수입은 늘어나고 많은 사람이 관세화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염려하여 관세화 유예를 선택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국제 쌀값이 500달러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면 많은 사람이 관세화했으면 수입량이 늘어나지 않았을 텐데 공연히 의무수입량만 늘려주었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또 DDA협상 결과 우리나라가 개도국으로 인정받게 되거나 쌀이 민감 품목으로 지정된다면 역시 많은 사람이 관세화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정부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 관세화로 전환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늘어난 의무수입량이 매년 수입되는 것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유예의 대가로 대만과 같이 의무수입량을 시장에 팔기로 하였다면 후회와 비난은 더 높아질 것이다.
불확실성은 그뿐만이 아니다.
가령 DDA협상 결과 관세화 품목도 이른바 저율관세수입량(TRQ)을 8%로 늘려야 한다면 관세화 유예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특별세이프가드(SSG 혹은 SSM) 규정을 활용하여 수입량의 증가를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게 된다면 관세화 유예를 선택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닐 수도 있다.
또 만약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일본에서와 같이 수입쌀을 외면해 버린다면 관세화를 두려워하여 의무수입량을 늘려준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유예의 조건으로 8%가 아니라 10%까지의 증량을 요구한다면 어찌해야 하고, 6%만 요구한다면 또 어찌해야 될까? 이 경우에도 불확실성은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요컨대 어떤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해 말 협상의 최종 단계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확률적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떻게 후회할 확률을 최소화하느냐의 문제이지 후회할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 누구도 어느 것이 유리하다고 단언할 수 없고, 앞으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해야 할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선택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합의를 도출할 것인가? 이제 농업인, 정부, 학자 다같이 이 문제에 대하여 지혜를 모아보자. 협상이 중요하지만 불확실성이 클수록 선택의 지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준가격과 보전수준 논란 매듭 지어야 국내적으로는 관세화를 수용할 각오를 다지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수입 쌀 감시체제와 쌀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기준연도 가격과의 차액을 직접지불 방식으로 보전하는 제도를 확정하여 협상에 대한 농가의 두려움을 잠재우고 정부의 협상 노력을 신뢰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 정비와 농가의 신뢰는 ‘관세화 불사’라는 우리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상대방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준 가격과 보전 수준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으나 이 논란은 이제 매듭 짓자. 기준 가격은 농가에게 가장 유리한 수준으로 하고, 보전 수준은 기준 가격과의 명목 가격 차이로 하자. 보전 대상은 기준연도 면적으로 하되 경영비와 물가상승분까지를 보전하라는 요구는 접자. 이렇게 되면 2003년 대비 명목 가격 하락부분은 정부가 보전하고 실질 가격 하락부분은 농가의 자구적 노력으로 보충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협상할 시간도 길지 않고 국내 대책을 정비할 시간은 더욱 부족하다.
누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서로 재고 흥정할 여유가 없다.
누가 누구를 압박하고, 서로 입지를 계산할 틈도 없다.
관세화 대책을 마련하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일에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쌀 시장개방은 최소화되고 쌀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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