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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사바로읽기] 번지 수가 잘못된 적대적 M&A 대응책
[경제기사바로읽기] 번지 수가 잘못된 적대적 M&A 대응책
  •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
  • 승인 2004.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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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해 기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장기적 고려 하에서 생산성 투자를 촉진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국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독약처방이나 시차이사회제도, 그리고 다중의결권 주식제도와 같은 경영권 보호수단들을 도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독약처방이나 다중의결권 주식제도와 같은 효과적이고도 적절한 제도적 수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경제력 집중 억제 대 다각화 투자 저해와 역차별이라는 논란의 와중에 있는 출자총액 제한 폐지와 금융계열사의결권 제한 폐지 등을 M&A의 대응책으로 요구하는 것일까? 증권거래소의 9월16일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9월14일 현재 단일 외국인이 2대 주주인 기업은 전체 상장기업의 22%인 138개사로 지난해 연말에 비해 19%나 증가하였으며 국내 최대주주와 외국인 2대 주주 간의 지분율 차이가 10% 이내로 좁혀진 기업도 쌍용자동차 등 14개사에 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외국인 2대 주주의 급속한 증가는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크게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많은 기업들이 경영의사 결정에서 외국인 주주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며, 또한 언제든 적대적 M&A를 당할 위협 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적대적 M&A제도는 경영자로 하여금 주주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하고 또 경영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력한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권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에서 적대적 M&A제도가 기업의 장기 투자를 어렵게 만들고, 경영효율성의 개선 없이 단순히 기존 주주나 고용인의 희생 위에 새로운 주주나 경영자의 이익만을 낳을 뿐이라는 부정적 효과도 많이 나타났다.
따라서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M&A를 권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M&A 대상이 되는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나 장치도 동시에 마련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적대적 M&A가 개시되면 M&A 대상 기업이 곧바로 신주를 기존 주주들에게만 싼값에 발행하여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독약처방(poison pill)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또 시차이사회(staggered boards)제도를 마련하여 일시에 이사를 교체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도 두고 있다.
유럽에서도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중의결권 주식(multiple voting shares)제도를 두고 있다.
다중의결권 주식은 배당 등에서 차별을 받는 대신 투표권이 일반 주식에 비해 적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천 배에 달해 경영권 보호장치로 많이 이용된다.
스웨덴, 이탈리아, 핀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러한 다중의결권 주식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촉진과 외자 유치의 활성화를 위해 적대적 M&A제도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마련하면서 기존의 경영권 보호 규정마저도 폐지됐다.
더욱이 현행 제도는 적대적 매수가 개시되면 해당 기업은 의결권에 영향을 미치는 신주발행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고, 또 차등의결권을 갖는 주식을 발행할 수도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해 기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장기적 고려 하에서 생산성 투자를 촉진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국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독약처방이나 시차이사회제도, 그리고 다중의결권 주식제도와 같은 경영권 보호수단들을 도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대한해운에 대한 골라LNG의 M&A 표명 이후 나타난 몇몇 언론의 M&A 대응책에 대한 주문은 위의 사정과는 크게 달랐다.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책을 주문하는 <한국경제>와 <서울경제>의 사설들은 개별 기업의 직접적인 경영권 보호장치 마련보다는 상호출자 제한이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과 같은 기업규제 조치의 폐지를 핵심과제로 요구하고 있다.
상호출자 제한이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폐지는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책으로 효과적이지도, 적절하지도 못하다.
우선 자산 규모가 작아 이러한 기업규제를 받고 있지 않거나 금융계열사를 갖지 않은 다수의 기업들에 대해서는 이 제도의 폐지가 적대적 M&A 방어에 아무런 효과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 제도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긍정적인 취지를 갖고 있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한 다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대적 M&A 대응수단으로 이들 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은 적절하지도 못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독약처방이나 다중의결권 주식제도와 같은 효과적이고도 적절한 제도적 수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경제력 집중 억제 대 다각화 투자 저해와 역차별이라는 논란의 와중에 있는 출자총액 제한 폐지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폐지 등을 M&A의 대응책으로 요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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