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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임금은 짠밥순이 아니어야 한다!
[커버]임금은 짠밥순이 아니어야 한다!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4.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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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임금,비정규직양산등한계노출…‘무늬만연봉제’대신직무급제도대안으로꼽혀

설립초기부터JW메리어트호텔의전체직원800명중260명은비정규직으로일하고있다.
호텔쪽은업종의특성상대인서비스가많다보니인건비에대한고민이훨씬클수밖에없다고말한다.
고급호텔일수록이런고민은더깊다.
이동주JW메리어트호텔인사부차장은“방콕오리엔탈호텔의경우고객1인당직원이2.8명이나필요하다”고말한다.


이차장은더심각한문제가바로연공임금에서빚어진다고주장한다.
“호텔에는단순반복업무가많잖아요.프론트데스크쪽이젊은사람들위주로이직이잦은데비해,객실관리나기물관리쪽은이직률도현저히낮고40~50대가많죠.객실청소만계속하면서연봉4천만원씩받는분들이많으니까요.직무가치나성과보다는근속연수에따라무조건임금을올려주는관행이낳은결과죠.”

일본에서국내로유입된연공임금은저임금에기반한고도성장기에적합한임금체계로잘알려져있다.
기업이기술이나숙련을축적한직원들에대한장기고용을유인하기위해지속적으로임금을올려주는연공적보상제도를취한것이다.
고령화가진척되지않은경우에는비용차원에서도합리적이라는평가를받아왔다.


이런연공임금이한계에도달했다는지적이제기된것은사실1980년대후반부터다.
당시는사무관리직에서생산기능직으로까지연공급이보편화되기시작한무렵이기도하다.
김영두한국노동사회연구소연구위원은“87년이후단체교섭에의한임금결정,급격한임금상승등으로인한연공급의부담이증대되면서사용자들의임금정책도임금수준억제에서임금체계개편으로점차확대돼왔다”고말한다.
기본급의결정기준을근속연수에서직무수행능력등으로바꿔온것이다.


경제성장이정체되면서연공임금에대한한계는더적나라하게드러나기시작했다.
인사평가가제대로작동하지않는속에서의연공급에따른임금인상이생산성향상을앞지른다는평가가나오면서,동기유발과역량강화를꾀할수있는보완적임금체계의필요성이대두된것이다.
97년IMF외환위기를전후해연봉제를도입하는기업들이늘게된것도이런맥락에서다.


지난해노동부실태조사에따르면100인이상사업장4570개중에서1712곳이연봉제를도입했고1256곳이성과배분제를도입했다.
연봉제의경우2000년조사에서23%에그쳤다가2003년에37.5%까지껑충뛰어빠른속도로확산되고있음을알수있다.
이밖에도기업들은직무성과제나PS(Profit-Sharing:이익배분),
임금피크제,생산성임금협약제등을두루도입해나가고있는실정이다.


호봉제+자격급+직무급‘섞어찌게’

흥미로운것은이런변화에도여전히연공적요소가기업들의임금체계에서큰비중을차지하고있다는점이다.
올해노동부의연봉제실태조사결과에따르면연봉제를도입한사업장(1694곳)중에서호봉제가완전히폐지된경우는44.3%에그친다.
호봉제를기반으로두면서일부직능급이나성과급을도입한기업들이많다는이야기다.
무늬만연봉제라는상징적표현이나오는것도이때문이다.


실제POSCO의사례에서도이런분위기가읽혀진다.
이회사는지난90년부터능력에따라임금을지급하는직능급제도를채택해왔다.
하지만별다른사유가없으면매년단계적으로올라가는연공급과직능급이6대4정도로혼합된형태다.
자연스레인사담당자들의고민은연공급의비중을어떻게줄여나가느냐에맞춰진다.
최홍길POSCHR개선그룹실장은“매년본인이획득할수있는직능점수가적게는20점부터많게는40점까지”라며“직능급의비중을높여나가려고하지만,격차가너무커지면위화감이조성되고격차가너무작으면하나마나한제도가될수있다”고말한다.
제도에대한수용성을높이고동기유발효과도가져올수있는적정선을찾는게어렵다는이야기다.


국내최대은행인국민은행의임금테이블에서도과도기적혼란이엿보인다.
호봉제에기반을둔기본급과자격급,직무급의3가지종류의테이블이있다.
김종규국민은행차장은“은행통합과정에서직무급도입에노조와합의했지만,아직까지는여전히연공적요소가더크다”고말한다.
아직까지직무가치나성과등의개념이담겨있진못하다는이야기다.
임금 경직성이 청년실업과 조기퇴직의 원인 현행 호봉제의 운영방식이 능력과 무관하게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는 연공급의 경직성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동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총 호봉수가 대략 30호봉 정도로 나타나는데 호봉간 금액 차이(호봉피치)가 동일하거나 체증형인 기업이 전체의 76.1%를 차지하며, 전 사원 단일호봉제도 51.5%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연공임금이 결과적으로 고용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대목에선 심각성이 더해진다.
김동배 연구위원은 “고용 경직성보다 임금 경직성이 청년 실업과 중고령자 조기퇴직, 비정규직 증가의 더 큰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금속산업연맹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2002년 기준으로 13.1년, 평균 연령은 38살에 달한다.
94년 평균 근속연수 6.9년에 평균 연령 31.3살과 비교하면 그동안 신규 채용이 그만큼 자제됐다는 이야기다.
대신 사내하청 종사자는 2001년 현재 조합원의 약 28.7%까지 늘어났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총액은 생산직 평균 대비 37%에 그치기 때문에 기업이 정규직으로 인해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비정규직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규직은 근속이 증가함에 따라 남녀를 불문하고 임금이 가파르게 증가하나, 비정규직은 초기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더라도 3~4년을 기점으로 정체상태에 머무른다”고 분석한다.
연공임금을 택하는 기업들의 경우 연령 프리미엄이 높은 편이어서 은퇴연령에 해당되는 50대 후반이 돼서야 임금하락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권에 도입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이런 연공임금의 부작용을 줄이는 한 기제로 작동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일정 비율에 따라 삭감해 나가는 제도다.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이 도입한 이래 금융권에서 확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임금피크제의 경우, 세부시행안을 놓고 노사간 의견 대립을 보이는 기업도 상당수 있어 도입이 쉽지만은 않다.
또한 임금피크제가 고육지책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박호환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피크제는 해당되는 전 직원에게 일률적으로 임금을 줄이거나 인상을 중지시켜 인건비 상승을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에 불과하다”며 “인건비 상승은 막을 수 있어도 모티베이션 효과와는 무관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임금의 자동상승을 막는 동시에 내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바탕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직무급제도가 적절하다는 것이다.
“역할급 거쳐 직무급으로 가는 게 효과적” 이런 가운데 정부도 내년께 한국노동연구원 산하에 임금직무혁신센터를 설치하는 등 직무급을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논의에 속도를 높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비용절감 차원의 단기적 접근에서 벗어나 동기 유발과 역량 형성을 꾀하는 임금체계의 한 대안으로 직무급이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 임금정책과 관계자는 “직무가치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급 도입 등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임금체계를 개편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각종 조사연구와 인프라 구축 등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한다.
인사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국내 기업 문화에 맞게 단계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인사 전문 컨설팅회사 타워스페린의 송계전 부사장은 “연공적 서열 문화가 뿌리깊은 국내 기업에선 역할급을 거쳐서 직무급으로 가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중간단계격인 역할급은 4~5단계의 급여밴드로 나눠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인상시키는 제도다.
역할급을 채택하게 되면 기존 연공서열적 위계질서를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한 임금인상을 줄이고 성과관리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용어설명 연공급: 개개인의 학력, 자격, 연령 등을 감안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임금체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근속연수가 많아짐에 따라 기준급 또는 단위임금률이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직무급: 직무평가에 의해 평정된 각 직무의 상대적 가치에 따라 개별임금이 결정되는 임금제도다.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연령, 근속, 학력 등에 상관없이 같은 임금을 지급받는다.
직능급: 근로자가 직무를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능력을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제도다.
연공급이 ‘사람’에 대한 임금이고 직무급이 ‘일’에 대한 임금이라면, 직능급은 ‘일을 전제로 한 사람’에 대한 임금으로 볼 수 있다.
인터뷰/최종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연공급은 후발 산업국가와 궁합 맞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자 서울대 노사관계연구소 소장인 최종태(65)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위 임금전문가로 통한다.
최근 연구하고 있는 주제도 ‘노사관계와 공정보상 시스템’이란다.
하지만 대안적인 임금체계가 무엇이냐는 그로서도 한마디로 단언하기 힘든 문제다.
다만 그가 각별히 관심을 두는 건 공정한 임금이다.
만족스런 임금은 되지 못할지언정, 공정성만큼은 확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공급 임금체계는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 연공급이 보편화된 나라는 일본과 우리뿐이다.
1949년 일본의 전기회사들에서 보편화된 연공급은 한 사람의 노동자가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두는 과정에서 점차 늘어나는 생계비를 기업이 뒷받침해 주는 생애임금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건가.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국내에서도 기업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입된 걸로 안다.
흥미로운 것은 연공급이 처음에는 대졸 사무관리직을 중심으로 도입됐다는 것이다.
블루칼라(단순노무직)의 경우에는 입사 이후 3~5년이 되면 임금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화이트칼라가 월급제로 임금을 받았다면, 블루칼라는 시간급으로 계산이 됐기 때문에 차이를 뒀던 것이다.
현대중공업도 중화학공업이 본궤도에 올라설 무렵인 79년이 돼서야 비교적 숙련을 요구하는 직종을 중심으로 생산현장에서 호봉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보편화된 건 87년 노조설립이 붐을 이루고 생산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다.
노조들이 생산직과 사무직 간의 임금차별 해소를 위해 단일호봉제부터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유입만으론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국내에 연공급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요인을 뭘로 보나.
저임금 고도성장기일수록 관리가 편한 것이 연공급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산업화가 뒤늦게 진행되면서 연공급과 궁합이 맞았다.
지난 77년 대우중공업의 인사 시스템을 진단한 적이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동일 기업 내의 똑같은 선반공인데도 인천 공장과 창원 공장 간에 직무이동이 어려웠다.
필요로 하는 기술이 현격히 달랐기 때문이다.
인천 공장은 일제 시대부터 내려오는 기계를 다뤘고, 창원쪽은 최첨단 정밀기계를 쓴 것이다.
즉 후발산업국일수록 재래식 생산기술과 최신 생산기술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선 해당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유한 기술 축적이 요구되기 때문에 오랜 근속을 통해 숙련을 쌓는 연공급이 정착되기 용이했던 것이다.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연공급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연공급은 한계를 맞이했다.
고임금 수준이 형성된 데 비해, 숙련 형성이나 업무의욕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데, 체질에 맞게 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점이다.
달라진 환경요인을 살피는 것만큼 중요한 게, 전통적인 연공급체계에서 살려낼 긍정적인 유전인자가 무엇이냐를 찾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식만 무조건 따라간다면 소화불량에 걸리고 만다.
임금이란 기본적으로 체화가 필요한 유기체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안정적 임금보장과 장기적 생활설계를 가능하게 했던 연공급의 장점만큼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충분히 살려내야 하지 않겠나. 새 옷은 어떤 게 좋은가. 대안적 임금체계를 꼽는다면.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만족과는 다른 개념이다.
임금에 100% 만족할 근로자는 없다.
다만 기업이 직무에 기반해서 임금을 주는 게 타당할지, 능력에 따라서 주는 게 좋을지를 면밀히 판단해 봐야 한다.
똑같은 일만 계속 시킨다면 직무급이 좋을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업무를 시키는 회사라면 능력급이 적절할 수 있다.
심지어는 여전히 회사 로열티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게 좋은 기업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환경 변화만큼 기업의 임금체계도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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