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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노인들의 취업별곡
백수 노인들의 취업별곡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4.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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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희망자갈수록느는데일자리제한적…복지정책으론한계,체계적지원책마련해야

지난10월21~22일서울코엑스태평양홀에는3만2천여명의노인들이몰려북새통을이뤘다.
서울시가주최한‘하반기실버취업박람회’에참가하기위해서다.
이번박람회에선260개업체가참가해총4700명을뽑기로했다.


서울시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따르면접수된이력서는1만7천통.아직채용집계가마무리되진않았지만,어림잡아3.6대1의경쟁률을보인셈이다.
이태영고령자취업알선센터팀장은“지난번박람회에선더많은구직자들이몰렸다”며“취업을의뢰할수있는창구가다양해지면서노인들의구직활동이일상화되는경향을보이고있는것”이라고설명한다.


실제고령층의구직열기는곳곳에서감지된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구직상담을받고있는신유이사회복지사는“지난해만해도취업률이55.9%로두분중한분은취업이됐는데,올해는5월말현재37.7%에그친다”고말한다.
그만큼구직을희망하는노인들이더많아졌다는것이다.
특히소득양극화현상이심각해지면서여가활용보다는생계형취업을원하는노인들이늘었다고한다.
지난해서울시고령자취업알선센터를통해일자리를얻은55살이상노인4785명중3153명(66%)이경제적인이유때문에취업을원했다는것이다.


고령자끼리경쟁치열…취업훈련너도나도

“청년층만취업재수생이있는게아니더라구요.박아무개(63)노인분은요근래에만3번이나면접에서떨어지셨어요.경비직에지원하셨는데,염색을하지않아백발이성성한데다외모가마음에들지않는다고업체에서거부를했나봐요.67살된한여성노인은한살젊은다른노인에게밀려청소직채용에서탈락되기도하셨죠.업체에선조금이라도젊은분들을선호하거든요.”신윤이사회복지사의이야기다.
구직층이넓어지면서,노인들간에일자리를얻기위한경쟁도치열하다는것이다.


업무능력이떨어진다는평가를받지않기위해취업훈련을받는노인들도적지않다.
올해서울시가개설한‘노인취업훈련센터’는경비원,베이비시터,컴퓨터,주차관리원,주유원,가사도우미등노인들이주로취업하는12개직종에대한교육과정을마련했다.
미래에유망한직종으로오는12월에는무역실무에대한교육도예정돼있다.


실버취업박람회에서간병인관리업무를추천받았지만,취업을2개월뒤로미뤘다는김송자(63)씨도최근7주과정의컴퓨터교육을신청했다.
마우스조차제대로다루지못하는일명컴맹이기때문에직장에서따돌림받을까두려워서다.
가뜩이나회사에선60살이하를선호했기때문에김씨는더욱조심스럽다고했다.
상담일선에있는사회복지사들은“인기직종중의하나인경비원이나주차관리원을하더라도기본적인컴퓨터조작능력이있어야하기때문에교육욕구가높은편”이라고귀띔한다.
업무에적응을못해2∼3개월만에그만두는경우도허다하다는것이다.


취업으로가는길도어렵지만,그이후도문제다.
일자리의질이나지속성여부가심각한문제로대두되고있기때문이다.
이번실버취업박람회에서소개된직종을보면지하철택배나간병인,경비원,청소인력등이주를이룬다.
간병인이나경비원이전통적인노인업종이라면지하철택배는최근개척된업종에속한다.
지하철택배의경우65살이상노인들의지하철승차비용이무료라는점을들어급성장한업종이다.
업계추정치에따르면현재700~800명정도의노인들이지하철택배일을하고있다.


하지만전문가들은고령층의구직욕구가높아진데비해,일자리는낮은임금에단순노무직종에몰려있다고지적한다.
현재국내에세분화된직종은2만여개에달하지만,고령자에적합한직종은단순노무직위주의160개에불과한수준이다.
실제통계청자료에따르면지난해65살이상취업자의직업은농업이나어업종사자가53.6%로절반을넘고,그다음이단순노무종사자(20.6%)로나타났다.


반면구직노인들의학력수준은점차올라가고있어일자리불일치의문제도증폭될것이란주장도나온다.
서울시관계자는“지난해구직등록을한55살이상의노인들중에서고졸이상이49%,4년제이상대학을졸업한사람들도14%에달해점차학력수준이높아지는추세”라고말한다.
이와관련지하철택배업체중의하나인조이플러스청개구리퀵의임석권사장도“은행지점장에대사관업무를보던분들도이력서를제출한적이있다”며“2~3개국어를자유자재로구사하는분들도있어깜짝놀랐다”고분위기를전한다.


직장안팎에서느끼는세대간갈등도고령노동자들에겐큰어려움이다.
강남노인인력지원기관에서만난백정기(68)씨도이런이유로어렵사리들어간회사를그만둔경험이있다.
그는지난해한특허사무실에사무장으로취업이됐다.
고졸여직원의초봉과똑같은수준으로임금을받는것은그래도참을수있었다.
일자리를얻게된것자체가너무기뻤기때문이다.
하지만몇달뒤에백씨는사장으로부터회사를그만둘것을권고받았다.
“나이가많은사람과일하는게불편하다면서젊은직원들이사장실에투서를보냈다고하더군요.나로선큰소리한번제대로못내고사무실을다녔는데,결국‘나이’때문에권고사직대상이된거였죠.”

정부,노인일자리만들기박차

이런가운데2007년까지노인일자리30만개창출을장담한정부의행보도점차바빠지는분위기다.
현재인구구조고령화추세로보면,고령자고용이촉진되지않을경우2020년경부터는노동력규모가줄어경제에타격을줄뿐만아니라,노후소득보장이어려워대거빈곤층으로전락할위기에처해있기때문이다.


특히55살이상고령자의경제활동참가율은97년49%에서2002년45.9%로오히려떨어진상태다.
65살이상으로가면30.7%에그친다.
변재관대통령자문고령화및미래사회위원회인구·경제팀장은“65살이상비취업노인인구280만명중에서고령및건강으로인한취업곤란층을제외하면,30만명정도가일자리부족등으로취업을못한것으로추정된다”고말한다.


이에따라정부는올초노인인력운영센터를설치하고30여곳노인인력지원기관등과연계해일자리만들기에박차를가하고있다.
재활용품가게운영이나숲해설사업,거리환경지킴이사업등이대표적이다.
이중지하철택배,간병인파견,세탁방,떡방등시장참여형사업으로분류되는업종은대체로공동창업의형태로이루어지며,사업초기에지원금을대주고점차자립할수있는기반을마련하도록돕고있다.


이와관련변재관팀장은“정부는물론이고,시나군,구등지방자치단체가종합적으로움직일필요가있다”고지적한다.
경기도부천시의경우지난해일반용역업체에주던일자리를노인관련단체와계약해눈길을끌었다는것이다.
이로인해노인100명이거리청소와가사도우미등으로취업전선에입성했다.


그렇지만여전히갈길은멀다.
기존노동시장에선고령자에대한고용이유지되거나연장되지못하면서,노인일자리문제가복지정책에머물고있기때문이다.
예컨대미국에선제조업의경우평균노동생산성이100이라고할때,65~69살의노동생산성은87정도라고명시하고있다.
연령및직무대비생산성에대한개념이명확한대신,연령차별이없다는것이다.
미국에선이미지난86년에연령을이유로한정년제가폐지됐다.
국내에선아직민간기업이고령자고용에대해적극적으로움직일수있을만한기반이나지원체계가미흡하다는것이전문가들의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오일뱅크가 지난해 5월 사내에 별도로 설치한 고령자 취업알선센터는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이 회사에선 주유원, 세차원 등의 직종에서 55살 이상 고령 노동자가 230명이 일하고 있다.
정재복 현대오일뱅크 혁신추진팀 과장은 “실버취업박람회 등을 통해 총 3천명 정도의 구직 고령자 데이터를 갖고 있다”며 “이를 서버에 입력해 놓고 각 주유소와 연결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회사쪽은 주유소 인력난으로 시작한 이 사업을 점차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포부다.

노인대국 일본에게서 배우자
일명 ‘노인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한국에 비해 훨씬 일찍 늙어버린 나라다.
일본 총무성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이면 인구의 25.3%가 65살 이상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고령화사회에 대비한 움직임은 발 빠르다.
특히 고령자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오오시마조선소는 고령자를 위한 작업 환경 개선을 이룬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여기서 일하는 710명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40살이다.
45살이 넘은 직원들이 300명이고, 정년을 연장한 60살 이상의 직원도 80명에 달한다.
작업 환경을 고령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쪽으로 바꿔나간 것도 이 때문이다.
예컨대 에어샌드 공정에서 의자 위에 올라서서 2m나 되는 높은 위치로 호스를 끌어올려야 했던 작업을 가슴 아래쪽에서 가볍게 펌프질만 하면 처리가 되도록 기기와 공정을 바꾸는 식이다.
에어샌드의 무게만 1kg이 나가고, 호스를 잡아끌면서 작업하다보면 무게가 4~5kg에 달해 고령층에 주는 부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단급식을 제공하는 엠티후드사의 경우 고연령자 고용대책을 촉진하기 위한 전임 담당자가 별도로 있다.
이 회사는 고령자를 위해 주 3~4일만 나오는 격일근무제를 도입하는가 하면, 60살부터는 연금병용형 급여제 등 노동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들을 신설했다.
이 밖에도 마츠시다 전기산업은 노사공동으로 고용상황의 변화에 대한 대처에 나서기로 하고, 2001년 4월부터 ‘넥스트 스테이지’(Next Stage)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의무정년인 60살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임금조정을 통한 재고용, 60살 이상 고령층에 적절한 직무개발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런 사례들은 일본 고령자고용개발협회가 노동후생성의 지원으로 개발, 관리하고 있는 ‘직장개선 지원 시스템’에 따른 것이다.
이 시스템은 1986년부터 2003년까지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시켜 놓은 것으로 작업 환경이나 고용활성화 등에 대한 개선사례를 검색할 수 있다.
고령 노동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려가 각별하다는 것은 관련 법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의 노동안전위생법에선 ‘고령 근로자의 작업부담 허용기준’을 세세하게 명시해 놓고 있기도 하다.
이 법에는 직무 배치, 작업 시간, 작업 속도는 물론이고 청년 노동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갖도록 하기 위한 지침까지 담겨 있다.
또한 팔을 어깨보다 높이 드는 작업이 없도록 하는 등 고령층의 작업 디자인에 대한 지침도 꽤 세부적으로 나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재해발생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각종 사고방지책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11월 중으로 ‘고령화사회와 기업교육훈련’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낼 예정인 손유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사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경우 작업 환경을 인간공학적 접근을 통해 바꿔 나가는가 하면, 임금체계 개선과 직무재설계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손 박사는 또 “철강이나 조선업 등 고령현상이 심각한 국내 제조업쪽에서도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표1/60살 이상 인구의 월급여 수준(단위 %) 구분/1985년/1990년/1995년/2000년/2001년/2002년 60살 이상/164.1/116.8/95.4/89.4/86.8/79.4 남자/174.6/135.7/106.4/95.0/91.5/85.2 여자/80.8/58.0/55.0/63.9/64.4/54.7 (자료 노동부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보고서>, 임금근로자의 평균 월급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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