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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의 술이 익는 풍경]철마다 바뀌는 안주 일본 술 “골라골라~”_천상
[박미향 기자의 술이 익는 풍경]철마다 바뀌는 안주 일본 술 “골라골라~”_천상
  • 박미향 기자
  • 승인 2004.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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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술학. 어쩌다 보니 이 공부 저 공부 수다스럽게 기웃거려서 나 자신의 뿌리와 가지는 여러 가지 색깔로 울긋불긋하다.
한 나무에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어 내겐 시간의 정체성이 없다.
뿌리는 1980년 말 이념이, 가지와 잎새는 90년대 상대적인 풍요와 자유가 차지했다.
그래서 철이 없다.
한마디로 ‘세상을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내겐 없다.
90년대 새파란 청춘들과 공부한 사진예술학은 선명한 충격이었다.
맑은 고로쇠 수액이 나의 붉은 피로 마구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한번은 교수가 <3학년 순수사진실기> 수업시간에 ‘성’에 대한 과제를 냈다.
어떤 녀석은 여자친구를 기숙사 풀밭에 벗겨놓고 찍어오지 않나, 다른 친구는 밥알 가득한 그릇에 콘돔을 마구 꽂아 찍어오기도 했다.
여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온 친구도 있었다.
다양한 작품 속에 ‘성’은 여전히 떫은 곶감이거나 이미 달게 삼켜버린 욕망이었다.
앗! 그런데 그 순간 한 작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역시 교수님도 그 아이 작품에 최고점을 주었다.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의 심정을 이해하는 찰나였다.
작품의 내용은? 궁금하지롱~ 울퉁불퉁한 뱃살, 그 아래 보잘것없이 늘어진 페니스, 축 처진 가슴 아래로 제왕절개의 흔적들…. 그녀는 부모님을 벗겼다.
두 분이 각자의 침대 위에서 서 있는 모습 혹은 어깨동무하고 있는 장면 등 그녀의 작품에서 ‘성’은 매우 일상적이고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무료해 보이기까지 한 그분들의 ‘성’은 까만 흑백사진과 잘 어울렸다.
한편으로 현실이 아닌 듯! 멋진 사진이었다.
당시 속으로 ‘아버님이 대단히 단단하신 분이시군’ 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건물이나 사람, 술집을 만나면 옛 기억들과 오버랩되면서 매우 기쁘다.
이태원에 있는 <천상>도 그러하다.
도쿄의 일상을 그대로 떼어 옮겨놓았다.
입구에는 주인장이 꼼꼼히 메뉴를 적어놓은 칠판이 있고 키 낮은 조명은 쏙닥쏙닥 속삭이기 좋다.
마네 그림 속 여인들이 된다.
한 장의 붉은 그림이다.
이 모든 것이 일본인 코디네이터, 마에다상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2~3번 들러 메뉴와 실내장식을 손보고 일본글을 써놓곤 한다.
그의 글, ‘모든 일을 좋아서 열심히 하면 더 좋아진다’가 한껏 술맛을 돋운다.
이 집의 장점은 일본 술 종류가 많다는 것과 안주가 100가지가 된다는 것, 주인장의 철학 때문에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렸다는 데 있다.
아주 깔끔하다.
3명의 주방장의 빠른 손재주로 안주는 주문 즉시 나온다.
마치 만화 <초밥왕>의 주인공들 같다.
주인장이 그저 일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천상>이라지만 일본을 자주 왕래하면서 새로운 메뉴 개발에 열성이다.
<이자카야>라는 일본 선술집 소개 책자를 늘 몸에 끼고 다닌다.
새 메뉴는 칠판에 철마다 소개된다.
예전에 일본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돌아와서 일본 술집에서 먹었던 ‘에다마메’를 잊을 수가 없었다.
완두콩 줄기인데 어느 술집에나 공짜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것을 만나다니…. 어찌나 반갑던지, 1·4 후퇴 때 헤어진 형제를 만난 듯 기뻐 날뛰었다.
<천상>에서도 공짜다.
벽 머리에는 여름 술 다루사케와 겨울술 죠센이 빼곡히 놓여 있다.
이른바 키핑하는 술이다.
병 뒤에는 손님들의 이름이 소담스럽게 걸려 있다.
나마죠조, 고메소주, 구보라 등 맛난 일본 술이 필통 속 연필처럼 가득하다.
안주는 3천원대부터 2만원대까지 있고 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금세 배가 부르다.
이 <천상>에는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 보물이 하나 있다.
‘컵’! 물컵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종인데 작은 플라스틱 캔 형태로 돼 있다.
왠지 집에 있는 아내와 따끈하게 한잔하면서, 아내송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노래 가락을 듣고 싶으면 사가지고 가자. 남은 안주도 싸달라고 해서. *약도 여는 시간 오전 10:30 오후 6:00 닫는 시간 오후 2:00 새벽 5:00 문의 02-749-2224 *가격 생맥주 2500원 OB라거 4천원 참이슬 4천원 히레사케 6천원 컵 6천원 나마죠조 1만2천원 고메소조 3만원 그 외 죠센, 다루사케 도꾸라, 아쯔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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