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토끼한마리가있었다.
내가그토끼를만난것은내여자친구,J의집거실에서였다.
“이토끼,이름이뭐냐?”내가묻자,J의두딸들은그런멍청한질문은정말이지처음들어본다는듯한눈빛으로나를올려다보더니그저짧게한마디로“토끼잖아요!”하고는내게토끼를내밀었다.
나는불쑥내품안에들어와버린그토끼를…담요처럼부드럽고,애인의입김처럼감미롭고봄날오후의햇빛처럼따뜻한…뭐라형용할수없는그행복을…도대체어떻게다뤄야할지몰라그저눈만꿈뻑거리다가되돌려주었다.


그런데며칠후,나는그토끼의죽음을전해듣고말았다.
자초지종을이야기하자면,추석명절을맞아내여자친구,J는출장중인남편은빼고두딸들과사랑스런토끼를데리고시댁에갔다.
먼길에내려오느라고생많았다,아이구,아이구,내새끼들…못본사이에몰라보게컸구나,장허다,내새끼들!맨발로달려나와반겨주는시어머니.“허허,그것참!”반갑고기쁘지만속내를내보이면남자체면깎인다고생각해시어머니뒤에서서그저헛기침한번으로안부를대신하는시아버지.J는시부모님의사랑에보답하겠다는마음으로손에들고있던토끼는시어머니에게맡기고곧장집안으로달려가집안청소를하기시작했다.
그런데청소가끝나고저녁을먹는데밥상한가운데큼지막한냄비가올라오는것이아닌가!

“이게무슨찌갠가요,어머니?”J가묻자,시어머니왈“뭐긴뭐냐.아까네가가져온고기아녀?”,“제가가져온고기…토끼말인가요?”,“왜?먹으라고가져온거아녀?”그리하여사랑스러운토끼는저녁반찬거리가되고말았던것이다.


지금도난가끔그토끼를,그토끼가내손바닥위에남겨놓은온기와부드러움을떠올리곤한다.
토끼란,애완동물이란그런것인지도모르겠다.
뺨을비비고털을쓰다듬고온기를느끼는것으로그저가슴한쪽이뭉클하게저려오는것.굳이그값을따져식용으로적당한가,잡으면몇인분이나오는가,기타등등머리아프게생각할필요가없는.

그사랑스러운토끼가죽은것은무척슬프고애석하지만J의시어머니에게무슨악의가있었던것은아니다.
그런데,어떤인간은이사랑스러운토끼를,그것도무슨악의를품고죽이려하고있다니한마디하지않을수가없다.
자신을유괴범이라고주장하는한정체불명의인물이‘베른트’라는이름의귀여운토끼를인질로삼아전세계네티즌들을상대로돈을요구하고있는것이다.


“동물을사랑하는모든런던시민들은이토끼의사진을보시라.만일당신들이돈을보내지않으면이토끼는내저녁거리가될것이다.
”라는협박성멘트와함께이정체불명의인물은자신의사이트에토끼‘베른트’의귀여운사진밑에저녁거리가될‘베른트’의사진(토끼요리)을함께올려놓았다.


그래도양심은있는지성금의최소80%이상은공식자선단체에전달할거라고약속했다고한다.
참!참!참!하고혀를내두르지않을수가없다.
혀를내두르다보니문득,토끼‘베른트’와이유괴범은어떤관계일까,궁금해진다.
혹시라도정말아끼고사랑하는토끼를상대로이런짓을하는인간이라면…이런인간이존재하는세상이라면…혹시나자신의소중한자녀를대상으로이런짓을하는인간도없지말라는법은없지않은가?갑자기끔찍한예감이등줄기를내리훑는것은또왜인가?

이명랑/ 소설가 market297@yahoo.co.kr
1973년생. 소설집 <삼오식당>,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