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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대신 빵틀을 주는 신흥 시장을 열게 하라
빵 대신 빵틀을 주는 신흥 시장을 열게 하라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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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크레디트프로젝트…빈자들에게열린금융서비스,영리사업으로접근


미국뉴욕의중심가인미드타운이스트강변,42번가부터47번가사이에4개동짜리빌딩군이서있다.
미국안에있지만어느국가에도,어느시장에도지배받지않는곳,이곳은국제연합(UN,UnitedNations)본부다.


2004년11월18일,이곳에서UN은2005년을세계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의해로선포한다.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DevelopmentGoals)를성취하기위한,전소득계층을포괄하는금융섹터의구축.이것이'UN마이크로크레디트의해'가내세운모토다.
마이크로크레디트,우리말로바꿔말하자면‘무담보소액대출’이다.
저소득층을대상으로소액대출,예금,송금,보험등금융서비스를제공하는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ace)의한영역이다.


2004년은쌀의해,2003년은물의해였다.
그밖에인권의해(1968년),교육의해(1970년),무주택자보호의해(1987년),관용의해(1995년)처럼어떤문화나지향해야할가치를한해의과제로선택한적은있다.
그러나인간이만든구체적인제도,그것도시장에서영리사업으로벌일수있는비즈니스아이템을UN이한해의과제로채택한것은이번이처음이다.
크리스티나배리뉴국제연합자본개발기금(UNCDF)수석기술자문관은“마이크로파이낸스는하나의아이디어”라며“금융제도에서소외되는가난한사람에게금융서비스에접근기회를주자는것”이라고말한다.


그는“마이크로파이낸스는가난한사람들이자기삶,자기돈을통제할수있게하고결정권을갖게해준다”고설명한다.
“가난한사람들의삶은독특합니다.
산업사회의임금생활자와는달리다들각자의타이프로살아갑니다.
가난한사람이가진것은자기두손뿐이에요.내가가난한데돈을벌려면컵을만들든,음악을만들든,내두손으로다양한뭔가를해나가야하죠.그리고내가내두손을활용하려면창업자금이든,교육자금이든금융서비스를제공받아야합니다.
그래서가난할수록금융기회를얻는건중요합니다.


계층에게금융접근권을허하라”

모잠비크의마이크로크레디트인ATA(AidtoArtisans)가마반다씨를처음만났을때,그는나무아래에서조각을하고있었다.
이제독창적이고독점적인개점자로서마반다씨는그의작업장에4명의다른장인을고용하고있다.
ATA는마반다같은소사업자들에게물건을발주하고운영자금으로구매가격의50%를사전에보내줌으로써소사업가정신을고무시켰다.


백단향항아리에이어그의가장성공적인제품은물결치는머리카락을가진백단향조각상이다.
그는조각상의앞부분을거친상태로놔두고뒤는윤기흐르는녹청으로광을냈다.
“나는지금더많이팔고있어요.”마반다는말했다.
“나는더일할수있어요.내제품이팔릴걸아니까요.내가받고있는대규모의해외주문들덕분에내삶은나아지고있어요.난동네시장에서만팔았을때보다더많은돈을벌고있다고요.”

UN은마반다처럼금융서비스를받으면이익을얻을사람들이10억명정도된다고본다.
이들중이런금융서비스를받는사람은10%밖에되지않는다.
하지만이렇게금융서비스를제공받는것만으로도가난한사람들이스스로빈곤에서탈출할수있다는사실을아는사람은세상에많지않다.
그래서UN은빈곤인구반감등새천년개발목표를이루기위한첫번째과제로‘마이크로크레디트’란금융시스템자체를선정한것이다.


UN은마이크로크레디트의해가지닌의미를이렇게설명한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우리가새천년개발목표를이루기위해공동으로벌인노력의집합체다.
우리의도전과제는사람들이전체금융서비스를받지못하도록막는제약들을없애는것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의해는국제공동체가이러한도전과제에맞부딪쳐공동으로대응하기위한중요한계기가될것이다.
모두함께,우리는전소득계층을포괄하는금융섹터를구축할수있고구축해야만한다.
이러한금융서비스는사람들이자신의삶을향상시키도록도울것이다.


에선복지사업,저개발국에선금융사업

비록모잠비크,방글라데시등극빈국가에서빈곤구제사업으로시작됐지만마이크로파이낸스는상업적으로상당한성장세를구가하고있다.
방글라데시의그라민은행은2002년기준으로지점이1175개,직원이1만2천여명,대출잔액이우리돈으로3조3600억여원에이르는대형은행으로성장했다.
연체나부실도적다.
1997년,98년아시아외환위기때도인도네시아의마이크로파이낸스기관인라키야트인도네시아은행(BRI)의원리금상환율은98.5%에달했다.

공급이 수요를 낳았다.
저개발국, 개발도상국에서 퍼져나온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비영리사업을 넘어 영리사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인 액시온 인터내셔널(Accion international)의 로빈 래드클리프 부사장은 “액시온 협력 기관의 75%가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스스로 수익을 낸다”고 말한다.
고리 사채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소득이나 담보가 없어도 노동력만 있으면 돈을 꿔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적은 돈에 대해서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
이에 다국적 금융기관들은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영리사업의 하나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씨티그룹은 올해 6월 마이크로파이낸스사업부를 차세대 시장 개발을 염두에 둔 영리사업부로 창설했다.
UN은 비자 인터내셔널, 중국은행(Bank of china), 일본국제협력은행(JBIC)도 저개발국가에서의 영리사업으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다.
하버드, 예일, 뉴욕 등 유수 대학의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마이크로파이낸스를 가르친다.
하지만 이러한 선진, 산업국가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영리사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U, 미국 등 선진국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주로 비영리사업, 효율적 기부 혹은 복지 수단의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지역 균형 발전, 계층 간 균형 발전의 수단으로서 꽤 대중화된 개념이다.
92년부터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열성 지지자로 활동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투융자에서 소외되기 쉬운 지역과 저소득층을 위해 제도화된 마이크로파이낸스라 할 만한 ‘지역개발은행’을 크게 육성시키는 정책을 썼다.
시장을 가치의 중심에 두는 신자유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금융의 사회 공헌을 중시한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통해 은행 등 금융기관이 수익을 얻는 지역에서 일정 비율을 대출, 투자하거나 기부 등 공헌활동을 하도록 법으로 정한 나라이기도 하다.
덕분에 미국에선 비영리 민간기구나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들이 넉넉한 기부금을 얻고 있다.
유럽에선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오래된 복지병을 치유할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임금노동자가 많은 유럽 국가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벌이는 실업자 창업 지원사업은 복지국가의 국민들이 실업급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창업가 역량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산업국가에서도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영리사업쪽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지원받은 고객의 생존율이 너무 낮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사회적 금융 프로그램’이 2002년 발표한 ‘산업화된 국가에서의 마이크로파이낸스’라는 보고서는, 산업국가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지원을 받은 고객들이 3년 정도 생존하는 확률이 적게는 53%(프랑스)에서 많게는 79%(미국)에 이른다고 보고한다.
사업기간이 길어질수록 생존율은 떨어져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의 부담률은 종국엔 40~70%까지 높아진다.
로버트 애니벌리 씨티그룹 마이크로파이낸스사업부장은 “산업국가에선 은행, 신용카드사, 신용협동조합 등 다양한 서비스에 어디서든 접근할 기회가 있는 데다 그것에조차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정부가 사회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며 “개발국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영리사업으로선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기부효과의 지속성, 복지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써 마이크로크레디트가 가진 ‘잠재력’은 산업국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ILO 보고서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산업국가에서) 완벽한 금융적 지속가능성은 환상으로 판명될지라도, 적어도 세금을 내는 국민은 자신의 세금이 더 잘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복지 사각지대 메워줄까 그런데 한국 정부의 반응이 시원찮다.
청와대, 보건복지부 일부 부처 외엔 마이크로파이낸스나 금융 소외 이슈 자체에 관심이 없다.
UN ‘쌀의 해’ 땐 농림부가, ‘물의 해’ 땐 환경부가 나서서 프로모션을 했는데 이번엔 정부 어떤 부처에서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를 준비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금융정책 제안권이 있는 금융감독위원회나 한국은행은 경제, 금융 정책수립권자인 재정경제부가 관할부서라고 말했으나 정작 재정경제부 관련 부서의 실무책임자는 “UN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UN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 사무국 직원은 “한국의 관련 부처들에 협조공문을 보냈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며 “정부 부처 중 어디와 이야기해야 하냐”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빈곤 퇴치를 화두 중 하나로 삼은 청와대 역시 아직은 마이크로크레디트보다는 세금공제 등 근로 인센티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11월10일 청와대는 내년부터 저소득 가구가 근로소득을 많이 올릴수록 세금으로 근로 인센티브를 주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파이낸스와 관련한 사업계획도 있기는 하다.
청와대는 기존 생업자금융자사업 등 정부의 저소득 창업 지원사업 일부를 민간재단, 즉 비영리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에 위탁해 지원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 규모로 보면 이것은 단지 실험적 수준의 사업으로 보인다.
김수현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 태스크포스팀장은 “일단 내년에 정부가 20억원을 출연하고 일부 정부자금을 위탁하는 등 재원 다양화를 통해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자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현재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신나는조합’이 2000년부터, 사회연대은행이 2003년부터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주로 기부받은 돈을 무담보 신용대출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기부, 정부 자금, 회원 예금 등 재원 마련의 통로부터 대출, 보험, 예금 등 금융 서비스 형태까지 매우 다양한 구조의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이미 발달하고 있다.
한국의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아직 초창기 단계라 정부의 태도가 소극적인 걸까? 원인은 한국에 다양한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이 없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니다.
금융당국, 경제정책의 주무부처가 금융 소외 문제 자체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한국이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원조국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소액 금융기관은 많다.
이종욱 서울여대 교수(경제학)는 “단순한 소액융자라면 방글라데시보다 한국이 먼저 시작됐다”며 63년 경남 산청군의 하둔조합을 효시로 꼽았다.
당시 한국에선 새마을금고의 전신으로 꼽히는 하둔조합뿐 아니라 곳곳에서 신용협동조합이 형성되어 마이크로크레디트 기능을 수행했다.
새마을금고 회원만 1400만명에 이를 정도로 곳곳에 서민금융 서비스가 파고들었는데도 왜 저소득, 빈민들은 금융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없어 고통받고 있을까?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어 자금은 흘러넘치는데도 왜 금융 소외현상은 줄어들지 않을까?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가 열린 지 10여년이 지났는데도 왜 일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조차 지킬 수 없는 가난에 허덕여야 할까? 정확한 분석이나 연구자료는 나와 있지 않다.
경제학자들도 그저 366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통계를 보면서 혹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도 돈이 돌지 않는 현상을 보면서 금융 서비스 소외계층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분석의 기초가 될 만한 조사자료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가계상태를 분석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조사 중 하나인 통계청 도시가계 조사에는 도시 외 지역은 물론 도시의 자영업 가계조차 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는 “미국에선 주 정부 주도로 5년마다 1번씩 은행계좌 보유자 비율 등 시민 전체의 금융 서비스 이용 실태 자료가 포함된 소비자조사보고서를 내고 있다”며 “한국 금융당국도 효율적으로 정책을 짜고 집행하려면 전 국민 대상 금융 서비스 실태 조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빈곤을 줄여다오, 시장을 줄게” UN이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를 정한 첫 번째 목적도 “모든 사람들에게 금융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높이는 것” 자체에 있다.
크리스티나 배리뉴 수석기술자문은 “UN이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영리사업화를 지지하는 이유”라며 책 한 권을 내민다.
'피라미드 바닥에 있는 부’(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C. K 프라하라드 시카고대 교수와 연구진이 빈곤층을 잠재고객에서 고객으로 끌어올려 비즈니스에 성공한 기업들의 스토리를 연구한 책이다.
여기엔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성공사례도 들어 있다.
'정부의 복지 대상을 기업의 유효 수요로.' 이것이 시장과 정부 사이에서 UN이 택한 빈곤 퇴치 '비즈니스'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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