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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메모]<돈의 철학>, 2004
[에디터스메모]<돈의 철학>, 2004
  • 최우성 편집장
  • 승인 2004.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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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둘의 ‘젊은’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의 손은 거침없이 원고를 써내려갔다.
‘세기말'의 혼돈과 ’새로운 세기‘를 향한 수줍은 희망 사이를 칼로 베듯 둘로 가른 바로 그해, 1900년. 엄청난 분량의 역작 <돈의 철학>은 드디어 세상에 태어났다.
당대를 풍미하던 열혈 사회이론가들 가운데 짐멜의 관심은 특히나 ‘돈’에게로 쏠렸다.
물론 짐멜에 앞서 탄탄한 논리와 날카로운 필치의 거대담론으로 인류사회의 본질을 갈파했던 많은 이들에게서도 돈이란 언제나 모든 사고활동의 무게중심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관여했던 전통과 관습을 빠른 속도로 밀어내는 돈의 위력이 당대 이론가들의 뇌세포를 마구 자극한 건 당연했다.
돈이 군림하는 질서가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눈을 치켜뜬 문필가들은 냉혹한 인간관계의 이면을 거침없이 파헤쳐대기도 했다.
하지만 짐멜을 여타의 이론가나 사상가들로부터 구별짓는 건 바로 돈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있었다.
대부분의 논객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손에 쥐는 과정 그 자체에 좀 더 비판적으로 주목했다면, 짐멜의 관심은 오히려 수중에 쥔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달리 말해 돈의 소비에 놓여 있었다.
아웅다웅하며 맹목적으로 돈을 늘려 나가는 과정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얼마나 멋있게, 시쳇말로 cool하게 돈을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에 그는 더 집착했다.
이렇듯, 분명 짐멜은 젊은 사회학자였다.
사회학자인 그가 자신의 역작에 ‘돈의 사회학’이란 이름을 붙이길 거부한 채, <돈의 철학>이란 이름을 고집한 데서도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단은 드러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경제학자 베블렌이 기존의 생산중심적 패러다임과 과감히 결별한 채, 과시적 소비와 이른바 ‘모방효과’에 주목한 것과도 맥이 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명 고전(古典)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법한 <돈의 철학>이 세상에 처음 선보인 시간으로부터 또다시 한 세기가 훌쩍 지나갔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의 현실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돈의 악마적(!) 매력에 빠져들었던 짐멜을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비로소 만개한 돈의 시대에 되돌아보는 100년 전은 그야말로 촌티 팍팍 나는 ‘옛날 옛적’일 뿐이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분명한 건 돈엔 그야말로 숨길 수 없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때론 인간관계를 허물어뜨리고, 또 때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마저 파괴하는 것도 돈이 지닌 힘이다.
온갖 비효율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세상을 ‘투명’하게 만드는 힘 또한 돈은 지니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힘 자체가 돈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라면, 이제라도 그 힘을 빌려, 그 힘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세상을 소리 없이 바꿔볼 수는 없을는지. ‘돈의 철학’을 넘어 이제 진정한 ‘돈의 미학’을 싹틔워볼 수는 없을는지. 그 꿈이 단지 몽상에 그치지만은 않음을 애써 믿고 싶은 이 순간, 부디 한마디만을 더 내뱉고 싶을 뿐이다.
힘 가진 자, 이제라도 그 힘을 쓸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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