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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MBA리포트]인재 제일주의에 도사린 함정
[이원재의 MBA리포트]인재 제일주의에 도사린 함정
  • 이원재
  • 승인 2004.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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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확보전쟁이벌어지고있다.
삼성,LG,POSCO등세계적기업들은물론이고,아직은세계적이되고싶어하는단계인기업들조차도미국명문대학MBA스쿨과박사과정을학기초부터직접방문하고거액의보수를제공하면서사람을챙겨둔다.


세계최고인재를데려와야세계일류경쟁력을가질수있다는당위에는누구도거역하기힘들다.
게다가인재를귀하게대접하는게사람중심의경영이라는데누가감히반발하겠는가.한국에도바야흐로‘사람중심경영’의새시대가열리고있는걸까?

인재제일주의는물론한국기업들의특허품이아니다.
1990년대말인터넷과주식시장붐을등에업고혜성같이등장한‘스타CEO’들이몰고온전지구적경영트렌드다.
80~90년대를풍미하던일본식‘시스템경영’에대한찬사를쑥스럽게만든최신이론이기도하다.


세계적전략컨설팅회사맥킨지는‘인재제일주의’의확산에큰몫을했다.
90년대말맥킨지는‘인재전쟁’이라는제목의대형프로젝트에착수한다.
전세계의맥킨지컨설턴트들은각국의기업들을직접방문해인재관리정책에대한대대적조사를벌인다.


결과는명백했다.
가장큰차이는인재관리였다.
인재를체계적으로확보하고관리하는회사는승자였고그렇지않은회사는패자였다.
맥킨지는외쳤다.
“가장훌륭한인재를뽑는데전력투구해라.그리고그인재들이조직에서빛을발할수있게하라.자원을소수인재에게집중시켜라.그래야무한경쟁의세계시장에서살아남을수있다.


수많은기업인들이이구호에고개를끄덕였지만,누구보다도이구호를마음깊이새겨실행한기업이있었다.
텍사스의조그만석유회사에서순식간에급성장해세계최대에너지회사반열에올랐다가,세계최대금융스캔들을터뜨리고순식간에파멸의길을걸었던,그리고맥킨지의가장큰고객이기도했던,엔론이었다.


엔론을아는대부분의사람들은이곳이인재들의천국이었다고증언한다.
일단인재를엄청나게많이채용했다.
90년대엔론은매년250여명의톱스쿨MBA졸업생들을쓸어갔다.
‘슈퍼토요일’이라는회사방문행사를열어미국전역에서모여든수백명의MBA들에게숙식을제공하며회사설명회와인터뷰를진행하기도했다.
현재재판을받고있는켄레이전엔론회장은당시“엔론과경쟁사들의유일한차이점은사람들뿐”이라고말하기도했다.


채용한인재들에게는다른어떤기업보다도매력적인보수를제공했다.
엔론은한때“우리는매우똑똑한사람들을뽑아그들의가치보다더큰보상을해준다”고자랑하기도했다.


물론금전적보상만이인재들을행복하게해준건아니다.
엔론은인재들이원한다면무엇이든할수있는환경을제공해줬다.
29살의가스트레이더루이스키친의성공담은유명한사례다.
그녀는온라인트레이딩아이디어를제출하고작업을시작했다.
6개월만에그녀는250명을거느린부서의책임자가되어22개나라의온라인가스트레이딩을지휘했다.


스킬링당시CEO는“나는그모든일이벌어지고나서야통보받았다.
바로이런행동이엔론의정신을반영하는것이며,그힘이엔론을전진하게한다”고칭찬했다.
젊고,원기와아이디어가넘치고,하고싶은일이무궁무진한젊은인재들에게엔론은천국이었다.
이런스타들이회사를끌고나갔다.


앞줄에선사람들을골라내기위해서는뒷줄에설사람들도정해야했다.
엔론에서는모두가철저하게평가받고등급이매겨졌다.
모든직원들은1~2년에1번씩관리자들의평가를받았고A,B,C의3개등급으로나뉘어졌다.
A등급은인재반열에올라보상과자율을명확하게보장받았다.
B등급은자극을받아야할대상으로분류됐다.


불쌍한C등급은엔론안에서는C급인생을각오해야했다.
아니면배에서내릴마음을먹어야했다.
어차피자기업무의결과가자기운명을결정하는거다.
일면잔인해보였지만명분은너무나논리정연했다.
낙오자들을챙길여력이있다면1등이능력을더발휘하도록격려하는데써야했으니까.

이렇게쌓여진‘인재제일’의탑이한순간에무너져버린건왜일까.인재가부족한건절대아니었다.
인재를제대로관리하지못한것도결코아니었다.
왜그수많은똑똑한사람들이엔론이완전히무너질때까지제대로된경고메시지조차보내지못했을까?

문제는간단했다.
결과적으로엔론의인재관리시스템은능력이뛰어난인재를골라낸게아니라스스로능력이뛰어나다고믿는사람을골라냈다.
중요한결정권은자기가그결정을할수있다고믿는사람에게주어졌다.
그사람이잘할수있느냐는질문은아예던져지지않았다.


루이스키친의일화로돌아가보자.루이스는전세계를대상으로한온라인트레이딩사업을가장잘할수있는사람이었을까,아니면가장하고싶어하는사람이었을까?그힘은엔론을전진하게했던것일까,파멸로몰고간것일까?
엔론에서선택된‘인재’들은실패에대한책임조차지지않았다.
큰실패일수록아름다운경험으로치장돼이력서를장식했을뿐이다.
그들은끝없이새로운사업을찾아자리를옮겨댔다.
매년옮겨대니성과평가도불가능했다.
반면에인재대열에서탈락한사람들은동요했다.
핵심사업은흔들리기시작했다.
새사업에서는이익이나오지않았다.
회계부서에서는‘창의적인’회계로실적을치장하기시작했다.
회사는파멸의길을걸었다.


말콤글래드웰은<뉴요커>에서최근금융스캔들을일으키며무너진미국기업들은크게2가지종류로나뉘어진다고분석한다.
탐욕스런기업과자기도취적기업이다.
월드컴은탐욕스러웠다.
부패했고초단기이익에만집착해편법을가리지않았다.
엔론은그렇지않았다.
자아도취적이었을뿐이다.
스스로가똑똑하다고확신하는‘인재’들이기업을지배했다는것이문제였을뿐이다.


정치에서나경영에서나윤리의식의실종은부패와탐욕을낳는다.
인재제일주의는부패와탐욕을기르지는않는다.
대신잘못된인재제일주의는자기도취형인간을양성한다.
능력과자기도취가혼동되고,성과평가제도는성과를제대로평가하지못한다.
앞줄에서서구호를외치는자기도취형인간들이인재반열에올라선다.
뒷줄에서서동료들을격려하며궂은일을도맡는팀플레이어는갈곳이없어진다.
구호만남발할뿐,성과는온데간데없다.


왜곡된인재제일주의의가장큰함정은정작합리적이고겸손하고이웃과조직을걱정하는‘인재’들은결코이배에올라타지않게된다는것이다.
스타가될수없지만시스템에꾸준히기여하는사람들을위한안전망이없기때문이다.
엔론에위기가가까워지자,회사의‘스타’관리자들은퇴근해집에돌아가있는B,C등급직원들에게“내일부터는출근하지말라”는전화한통으로차례차례해고를통보했다.
B,C등급에게는예고도,예의도없었다.
합리적인인재가이런회사를삶의터전으로선택했을까?

보스턴=MIT슬론스쿨MBA과정
이원재는<한겨레>와&lt;Economy21&gt;에서6년간경제기사를쓰다가2003년9월부터미국MIT슬론스쿨MBA학위과정을밟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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