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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30대]정미례 여성운동가
[나의 아름다운 30대]정미례 여성운동가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4.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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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여성도성을팔고싶진않다

요즘사람들이모여이야기할때열띤토론을이어가게하는주제가운데하나는‘성매매’다.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성매매알선처벌법)이시행되면서,그에따른법집행이시작됐기때문이다.
그런데실제로법집행에들어가자성매매여성들과업주들이“이것말고는먹고살방법이없다”며반발하고나서사람들사이에선찬반양론이갈리기시작했다.
일부에서는이렇게경기가나쁜데성매매여성들의생존을위해성매매를인정해야하는것아니냐며법집행반대논리를펼쳤다.
부작용이문제라면차라리‘공창제’를제도화해그들의생존권을유지해주자는주장도거들었다.
성매매는남성들의성욕을인정하기위해역사적으로있어온‘사회적필요악’이기때문에법적으로통제할문제가아니라는이야기까지덧붙여졌다.


하지만이런반론에대해그는단호하다.
“이여성들가운데누구도이일을계속하고싶다고생각하지않아요.단지지금당장나올수가없으니까,준비할기간을달라는것뿐이지요.직업으로인정하라는건대부분업주들의입장이고요.어떤사람한테너몸팔아살래,좀힘들지만다른일할래하고물어보면어떤걸택하겠어요.”그는성매매산업이존재하는한,사회에서가장약자의위치로내몰리던여성들은이쪽으로유입될수밖에없다는게가장무서운점이라고이야기한다.
이때문에국제적으로성을매매하는것은범죄로규정하고있다.
그산업이존재하는한사회적약자는그곳으로빠져들수있기때문이다.
하지만우리사회는극단적으로남성중심적이다보니사회적약자에대한보호보다는자신들의필요성을더중요하게여겨왔을뿐이다.
이제그중심성을옮겨놓고있다는이야기다.


인생을바꾼군산대명동참사

역사에선이후역사의방향을크게결정짓는‘원죄적사실’이존재하곤한다.
우리현대사에선1980년5월광주가그랬다.
성매매반대운동에선2000년군산대명동성매매집결지화재참사가그런기폭제다.
당시화재가나자성매매를강요당하며감금당해있던여성5명은질식해사망하고말았다.
여성들이창살에갇혀성매매를강요당했다는사실에,또경찰들은뇌물을받으며그런상황을방치했다는사실에모두들놀라지않을수없었다.
이사건을계기로여성계에선성매매를문제화하기시작했고,그결과이번법제정으로까지이어졌다.
“그전까지는몰랐어요.우리나라의성산업구조란것에조직범죄와뇌물과인신매매가이렇게연결돼있는지,여성들이그렇게까지착취당하고있는지요.이사건을계기로성매매반대운동이인권운동으로발전했죠.”

이사건은그에게도큰변화를가져왔다.
그때마침그는군산에서여성운동을막시작하려던차였다.
대학을다니며학생운동을했던그는85년부터10년동안인천에서노동운동을했다.
그러다남편을만났고,기아특수강에서노동운동을하던남편의회사가군산으로이사를가면서94년함께군산에자리잡게됐다.
그는노동운동을하면서도줄곧여성노동자들의운동에관심을기울여온터였다.
현장에서여성들이겪게되는문제들,예컨대모성보호조항준수,동일노동에서여성들이받는차별,여성들의노동이비정규직화되는것등이그의주관심대상이었다.
그러다군산에둥지를틀면서여성운동을대중적으로펼치기위해‘여성의전화’를열었다.
그곳에서성폭력,가정폭력등전반적인여성인권에대한일을다루며좀더많은여성들과만나려했던것이다.


그러다2000년군산대명동화재사건이나면서대책위를꾸리며성매매반대운동과조우했다.
여성운동에서도성매매에관련한운동을하는곳은별로없던터라그때부터그가싸워나가야할문제들은참으로많았다.
“성매매와관련한사회적편견을바꿔내는것부터시작해서성매매방지법을만들기위한준비들을함께했지요.그러면서성매매집결지의여성들을직접방문해피해자들을지원하는운동도병행했고요.”

하지만그가몸담았던노동현장과는달리성매매현장은접근조차쉽지않은경우가많았다.
“그곳에가도언니들을직접만나기가참어려워요.업주들도있고,삐끼하는이모들이막고그러니까.할수없이경찰들하고들어가는데,여성들이경찰을불신하기때문에같이들어가는여성단체도별로신뢰하지않거든요.”그래도꾸준히집결지근처에현장상담센터를만들어놓고주기적으로여성들을방문해신뢰를쌓았다.
그렇게자리를지켜줘야여성들이업소를옮기는과정에서도움이필요할때자신들을찾을수있기때문이다.


그들을찾는여성들의대부분은구조요청을하기위해서였다.
초창기엔선불금,즉업주들이성매매여성들에게미리떼어주는빚때문에업소를벗어나지못한다며그곳을나가게해달라는여성들이많았다.
대명동사건이나면서부터는쇠창살을없애달라,감금당하고싶지않다는요청이늘었다.
하지만그렇게구조를해준다해도법적문제가남는게골칫거리였다.
선불금이란게여전히처리되지않기때문이다.
성매매여성들이업소를벗어나더라도업주들은차용증을가지고사기로고소하거나민사소송을걸곤했다.


그래서그다음으로시도한것은채권채무무효소송이었다.
성매매를매개로한채무는무효라는걸소송을통해밝혀내는것이다.
여기에여성들에게성매매를강요하는것은불법이라업주에대해정신적인손해배상을요구하는소송도제기했다.
그런과정이꾸준히펼쳐지는과정에서이번성매매방지법도함께이뤄진것이었다.
많은사람들이보기에뜬금없이나타난것처럼보이는이법뒤엔그의이런활동들이알알이박혀있었다.


성매매방지법후속지원에전념

하지만여전히그에게이운동은쉽지않다.
우리사회가보수적이면서남성중심적이다보니한편으론순결을강조하면서또한편으론성매매영역을남겨두는자기모순성을보여왔기때문이다.
때문에대부분의여성들도‘순결한여성’과‘성매매여성’을이분화해자신의문제로받아들이지못한다.
“노동운동을할땐위장취업도하고,사명감도강하고,나름대로사회에서인정되는부분도많잖아요.그래서일은힘들어도사상적인갈등같은건없었어요.그런데성매매문제를이야기하면멀쩡한사람들도헛소리픽픽하고그러니까,너무많은것들과싸워야해요.어떨땐내가소수몇명의생각을너무확대한건가하는생각이들정도죠.”

요즘그는성매매여성들이업소밖으로나오도록지원하는프로그램에전력을다하고있다.
현재그들에게가장필요한것은주거지원,직업재활훈련등이다.
그곳을나와당장먹고살방법도,새우잠을잘곳도없기때문이다.
대부분가장으로서부모님의료비,동생들학비를대는그녀들을볼때마다저소득층의료비,학비지원이절실하다는생각또한굳어진다.
“제가이런운동을할줄은몰랐죠.사실맘으론지금국보법철폐운동하는데달려가고도싶어요.(웃음)제가80년에광주에있었기때문에,제눈앞에서학살이벌어지니까저항을할수밖에없었거든요.지금도같아요.지금제주위에이런문제가있고,그들이저에게도움을요청하니까이일을제가풀어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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