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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한국 경제가 사라진다
[책과삶]한국 경제가 사라진다
  • 이정환/월간<말>기자
  • 승인 2004.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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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의한국습격보다자본의투기적속성이문제

재벌또는국민기업이과연투기자본의대안일까.좀처럼풀리지않는과제다.
스웨덴발렌베리그룹의사례가주목받는것도그런맥락에서다.
스웨덴은우리나라로치면이건희회장의지배권을법으로보장해주면서삼성그룹에사회적책임을강제했다.
기업의사회적책임,말이야좋지만강제하기는결코쉽지않다.
스웨덴은대주주의지배권을내주면서이른바사회적타협을끌어냈다.


기업의사회적책임은무엇보다도투자와고용이다.
더많은공장을짓고새로운사업을벌이고그래서더많은노동자들에게일자리를줘야한다는이야기다.
그런데요즘우리나라는이게안되고있다.
기업이벌어들인돈은배당으로주주들에게빠져나가고나머지는그대로쌓여있다.
은행에서돈을빌릴일도당연히없다.
기업은돈을버는데사람들은갈수록가난해지고,돈은넘쳐나는데풀리지않는다.
이모든게IMF외환위기이후나타난현상이다.
심상치않다.


이책은문제의발단을투기자본과주주자본주의,금융시장의왜곡에서찾는다.
투기자본문제에앞장서온이찬근인천대교수를비롯해대안연대회의와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활동하는진보적경제학자들이공동집필했다.
최근몇년사이은행들움직임을살펴보면논의의지점이명확해진다.
먼저은행의덩치가커졌다.
세계200대은행가운데7개가우리나라에있다.
1997년만해도외환은행하나밖에없었다.


주목할부분은이들은행의자산운용방식이다.
외환위기이전에는제조업기업들이설비투자의75%이상을은행차입금등외부자금에의존했는데99년들어30%정도로줄어들기시작해올해들어서는15.6%에그쳤다.
주식시장의존도도낮고나머지는거의기업의내부자금으로충당할수밖에없다.
은행이은행의역할을포기하면서이제돈이없는기업은더이상설비투자를할수없게됐다는이야기다.


물론은행은은행나름대로믿는구석이있다.
먼저예대마진이96년0.42%에서올해들어서는9월기준으로2.23%까지크게뛰어올랐다.
전체수익의25%정도가현금인출수수료등비이자부문에서나온다는통계도있다.
굳이기업에돈을빌려주는위험을감수할이유가없다는이야기다.
97년만해도65대32이던기업대가계대출비율은지난해말기준으로53대45로역전됐다.

그결과는우리가익히알고있듯이400만명에이르는신용불량자와가구당2926만원에이르는가계부채로나타났다.
기업은기업대로죽어나고일자리는줄어들고내수시장은끝없이무너지고있다.
그와중에은행과몇몇대기업만돈을긁어모으고있다.
그한계는너무나분명하다.
미래를부정하면서스스로목을조르는상황이된것이다.


투기자본에넘어간은행,금융시장왜곡시켜

이찬근교수는이모든문제가투기자본이은행과대기업을장악하면서나타난현상이라고본다.
이미웬만한기업과은행의외국인투자자지분비율이50%를넘어섰고그에따라주주의이익을요구하는목소리가거세다.
주주들은10년뒤의미래에아무런관심이없다.
노동자를자르면주가가오르고새로운사업에뛰어들겠다고하면주가가떨어진다.
기업의이익과주주의이익이갈라지는부분이다.


유철규성공회대교수는이를두고“한국경제의공격성이거세됐다”고정리한다.
자동차와철강,반도체,조선등그동안우리경제를끌어왔던공격적인설비투자가사라지고있다는판단때문이다.
조원희국민대교수는신자유주의가극단적으로전개되면투자와투기를구분할수없게된다는사실을지적한다.
신자유주의는결국주주자본주의고투기는주주자본주의의필연적인병리현상이라는이야기다.


정승일국민대교수의지적도주목할만하다.
90년대초폴란드시내에는이런대자보가나붙었다.
“우리는민주주의를원했다.
그런데막상우리가얻은것은알고보니자본주의였다.
”정교수는지금우리도비슷한상황을겪고있다고지적한다.
“우리는경제민주화를원했다.
그런데막상우리가얻은것은알고보니주주자본주의였다.


이들이스웨덴모델에주목하는것은주주자본주의에맞설유일한대안이결국국내기업,특히재벌에있다고보기때문이다.
이른바‘국민기업’을만들고이들을앞세워투기자본과주주자본주의에맞서자는이야기다.
물론논란의여지는많다.


최근국제사무직노동자연맹주최로열린토론회에서는스웨덴모델을놓고해묵은논쟁이재연됐다.
스웨덴의이른바‘국민기업’들이스웨덴국민들을배신하고있다는게논쟁의핵심이었다.
고삐풀린재벌이독점기업이됐고이들의독점가격이복지비용을높여복지국가의근간을뒤흔들고있다는이야기다.

물론대안연대회의쪽반박은만만치않았다.
그래서재벌을해체하면우리에게다른대안이뭐가있느냐는논리다.
정승일교수의경우스웨덴모델의성공요인을성장을통한분배에서찾는다.
오히려국내기업을보호해주면서사회적책임을다하도록돕는게위기를벗어나는해답이라는이야기다.


심지어최근에는조선일보를비롯한보수언론들까지대안연대회의의주장을차용해공정거래법개정안등재벌개혁을반대하는논리로전용하고있다.
그경계는언뜻모호하다.
이들은국부유출을막기위해그국부를재벌에게넘겨주자고주장한다.


투기자본에물들어가는재벌

유철규교수는이런논쟁에명확한방향을제시한다.
“국적과무관하게이땅에서활동하는모든기업에게민주적책임성과투명성을요구해야한다.
외국자본과손잡고국내재벌을공격하거나재벌과손잡고외국자본에대항하는2가지방식으로우리가직면한과제를대립적으로바라보는것은옳지않다.

결국문제는투기자본이아니라자본의투기적속성이다.
투기자본뿐만아니라국내재벌까지이에물들어가고있는것이지금위기의본질이다.
전선을명확히그을필요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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