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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메모]<The Economist> 대 <기업기사단>
[에디터스메모]<The Economist> 대 <기업기사단>
  • 최우성 편집장
  • 승인 2005.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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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그건 한마디로 허튼소리야. 그럴듯한 겉치레 포장에 불과할 뿐이지.” 이런 얘기도 좀 더 덧붙이고 싶단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쟁 기업들에게 부당한 진입장벽을 둘러치는 일이고, 일종의 보호주의다.
소비자들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앗아가는 일이며,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다.
” 행여, 요즘 들어 부쩍 사회적 책임이란 단어를 들먹거리며 잔뜩 폼을 잡는 기업들의 행태에 내심 심사가 뒤틀렸던 사람들이라면 가슴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맛봤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 얘기는 누가 뱉어낸 말일까? 시쳇말로 반(反)기업정서에 깊이 물든 사회운동진영? 아니다.
1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저명한 경제주간지 가 지난 1월 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펴낸 특집 기사 속의 한 토막이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가장 앞서 수호한다는 예의 그 경제주간지 말이다.
묘하게도 내로라하는 전 세계 정·재계 리더들이 3만5천달러씩을 내고 스위스 산간 마을에 모여 나흘간 자본주의의 미래를 놓고 머리를 맞댄다는 다보스포럼이 열리기 직전의 일이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핵심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의 고집스런(!) 권위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A:기업이 착한 일을 하는 것, 예컨대 법을 준수하고 진실을 말하며 이해당사자에 충실한 건 모두 기업의 평판과 관련된 일이며, 그 자체로선 특별한 일이 못 된다.
사회적 책임이라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B: 좋은 기업시민이 된다는 일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자체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A: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오류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주주와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데 있다.
소유권 개념을 폐기하지 않는 한 이해당사자가 결코 기업의 공동주인의 자리에 올라설 수는 없다.


B: 주주를 절대시하는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주주가치 극대화가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긴 하지만, 현실세계에선 주주가치 역시 실제로는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가치와 맞물려 있다.


A:이윤이란 명확한 것이다.
예컨대 환경과 같은 여타의 가치는 어떻게 측정한단 말인가?

B:근대적 회계제도의 산물일 뿐이다.
이윤을 측정하는 일이 언제나 명확한 건 아니다.
나라별 회계원칙은 실제로 세세하게 다르다.


A()의 명쾌한 논리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저널 <기업기사단>(B)이 끈질기게 이어가는 반론도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기사의 알맹이는 사실 단순하다.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지 말라!” 칼로 물 베듯 시장(기업)과 정부 영역이 나눠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영미 전통에 접줄을 댄 주인공임에랴. 물론, 흔히 우리 주변의 얼치기 시장주의자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가 있음을 그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 기사의 맨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비즈니스의 고유한 비즈니스는 곧 비즈니스일 뿐이다.
”진정으로 시장을, 기업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기업에 비즈니스의 자유를 온전히 허락하는 일? 아니면 다양한 사회적 가치에 눈떠 기업 스스로 생명력을 키워나가는 일? 와 <기업기사단>. 이름에서 풍기는 인상과는 달리 정작 서로 다른 해법을 들려주는 이들 가운데 독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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