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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미국 금리인상 속도 조절, 경제 ‘파란불’
[진단]미국 금리인상 속도 조절, 경제 ‘파란불’
  • 홍춘욱/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
  • 승인 2005.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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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일 열린 미국의 정례 금리결정회의(FOMC)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투자자들마저 FOMC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미국 FRB의 금리 결정이 주식은 물론, 채권, 환율에 이르는 거의 전 금융자산의 가격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 예로, 지난 1월4일 공개된 12월 FOMC 회의록의 충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FRB 관계자들은 "실질 기준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 이하에 머물러 있다"는 것과 "경제 성장이 더욱 심화됨에 따라, 비용과 물가가 건전한 경제활동에 더욱 압력을 가할 위험이 있다"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FOMC 회의록이 공개된 당일 다우존스 산업 평균(이하 '다우지수')은 98.65포인트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1개월 동안 이 주가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주식시장으로선 다시 한번 FRB의 영향력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FRB의 이와 같은 영향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FRB는 연방기금금리(한국의 콜금리에 해당하는 초단기 금리, 이하 '정책금리')의 변경과, 좀 더 중요하게는 향후 정책금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관한 전망 제시 등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직·간접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더 나아가 FRB의 수장으로 있는 앨런 그린스펀은 그 탁월한 예측력과 간접화법을 통해 끊임없이 시장으로 하여금 FRB에 신경을 쓰도록 만든다.
결국 정책금리 그 자체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지만, 채권시장의 참가자들은 FRB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처럼 신용카드 및 각종 할부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에서는 금리에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책금리 변화율은 기업실적 전망 선행변수

그렇다면 FRB의 정책금리는 미국 경제의 동향을 얼마나 잘 설명할까? 그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기업의 실적 전망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정확하게 실적을 전망할 수만 있다면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버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 일이다.
그런데 FRB가 결정하는 정책금리의 변화율은 미국 기업실적 전망에 가장 중요한 선행변수로 흔히 활용된다.
다시 말해 FRB의 정책금리 동향만 살펴보면, 기업실적 전망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놀라울 정도의 예측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끊임없이 경제의 동향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다, 정책금리의 변동이 또한 경제의 사이클에 큰 영향을 미치는 2가지 원인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시 지난 5월3일 열린 FOMC 회의 순간으로 돌아오자. 이 날 FRB는 역사적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고'를 터뜨리며, 다시 한번 전 세계의 눈길을 붙들어뒀다.
그 사고란 다름이 아니라 FOMC가 끝난 후 매번 A4 용지 한 장 분량의 보도문이 발표되는데, 이 날은 이 보도문의 내용을 주식시장이 마감되기 5분 전에 전격적으로 수정해 발표해 버린 것이다.
FOMC가 개최되는 날이면 미국 재무부에 위치한 보도실엔 오후 2시10분경에 공식 성명서를 담고 있는 팩스가 전달된다.
그리고 이 팩스에 나와 있는 내용은 5분 동안 외부 유출이 엄격히 통제된다.
5분의 시간이 다 지나갈 무렵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데, 마지막 ‘제로’를 외치기 전까지 모든 언론기관들은 보도문 내용을 전송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날 FOMC는 예전과 다름없이 보도문을 발표했지만, 이 날의 FOMC 회의는 여기서 상황이 종결된 게 아니었다.
오후 3시50분, FRB는 보도실에 전화를 걸어 각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통신장비 연결을 즉시 끊으라고 요구했다.
FRB가 이러한 요구를 한 경우는 지난 1998년 여름처럼 긴급 FOMC 회의를 소집해 금리를 조정했을 때뿐이었다.
그로부터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수정 보도문이 담겨 있는 팩스가 도착했고, 또다시 5분간의 외부유출 금지 시간이 시작됐다.
그리고 오후 3시55분에 기자들은 수정된 성명서를 전송할 수 있었다.
이후 국채금리는 하락을 시작했고, 주식시장의 주요 지표는 일제히 반등하기 시작했다.


수정된 보도문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보도문을 들여다보면, "장기 인플레 전망이 잘 억제되고 있다”(Longer-term inflation expectations remain well contained)는 표현이 두 번째 문단 마지막에 추가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FRB 대변인은 "이 같은 표현이 누락된 것은 부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애써 변명했으나, 평소 FRB가 보도문에 기울이는 각별한 노력을 감안할 때 이런 변명은 사리에 맞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FRB가 보도문 내용을 장 마감 직전에 수정해 발표한 것은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리 안정세, 달러강세 진정시킬 듯

물론 앞으로 FRB가 기준 금리를 더 이상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일거에 50bp 이상의 금리 인상이 단행되기도 어려워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약화될 경우, 한국 주식시장은 물론 세계 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세계 주식시장의 조정과정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 탓에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번 FOMC 회의를 계기로 큰 악재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시중 금리의 이 같은 안정세는 달러 강세를 진정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미국의 시중 금리와 엔/달러 환율의 추이를 살펴보면, 달러 가치와 금리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아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시중 금리의 안정이 지속될 경우, 달러 약세에 대한 기대가 다시 높아질 것이다.
한국 주식을 비롯한 ‘비달러화 자산'에 대한 선호가 재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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