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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이영호 농협대 교수가 만난 뮌크너 세계협동조합연맹 자문역
[초대석]이영호 농협대 교수가 만난 뮌크너 세계협동조합연맹 자문역
  • 이경숙 객원기자
  • 승인 2005.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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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H 뮌크너(Hans-H. M?nkner) 세계협동조합연맹(ICA) 법률자문역 1935년생. 독일 마르부르크대 법학박사. 마르부르크대 교수(1972~2000년). ICA 원칙 제정. <협동조합의 미래> 및 <협동자조조직, 어떻게 설립하나> 등 수십권의 저서와 논문 저술.



*이영호 농협대학 교수
1956년생. 서울대 농과대 학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농업경제학 석사. <협동조합론> 및 <한국농업협동조합론> 저술.



“서민금융기관 살려면 콜드머니 키워야”

이영호 한국에선 요새 서민금융기관 활성화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의 서민금융기관으로 꼽히는 농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 협동조합은 상업 은행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2007년부터 신BIS(국제결제은행) 협약 기준이 적용되면 협동조합 등 서민금융기관들의 활동은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신BIS가 적용되면 한국은 가장 대출여력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독일의 협동조합들은 어떤가? 대안은 없는가?

뮌크너 독일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상업 은행들은 소규모 거래 고객은 줄이고 대기업 등 대규모 거래 고객수를 늘리는 데에 영업을 집중한다.
소액 대출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가난한 개인은 은행에 큰 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다.
은행이 이렇게 영리 창출에만 집중하다 보면 사회적으로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협동조합도 합병으로 덩치가 커지면서 지역 이용자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40여년 동안 독일의 협동조합수는 1만4천여개에서 1400여개로 줄어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대규모 합병을 이행한 단위 협동조합은 은행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진짜 은행은 커져야 한다.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은행들은 서로 덩치를 키우며 경쟁한다.
그러나 국제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만큼 커지지 않은 은행은 경쟁에서 질 것이다.
협동조합이 중소규모 거래 고객들의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형화, 은행화만이 협동조합의 생존전략인 것은 아니다.


이영호 그러나 한국의 협동조합 중앙회, 정부는 협동조합 간 합병을 권장하고 있다.
경제적 규모를 갖추길 원하는 것이다.
조합원들도 더 높은 이자, 수익을 바란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


뮌크너 나는 합병을 선택한 조합과 합병을 거부한 조합을 다 지켜봐왔다.
그동안 합병하지 않은 조합들도 일부 살아남았다.
조합원에게만 차별화된 이익을 제공했던 덕분이었다.
그러면 조합원들은 돈을 더 가져오고 자본이익을 나눠 갖고 이익을 저축한다.
조합에 조합원이 많아지면 구매력을 발휘해 조합원은 더 싼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집단보험’(Group Insurance)이 그런 예다.
멤버십에 독점적 이익을 주는 것이 비합병 협동조합의 생존 전략이다.
조합이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똑같이 취급한다면 누가 조합원으로 남겠는가?

이영호 ‘집단보험’이 뭔가?

뮌크너 조합원이 사고보험,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 어느 단체가 집단명의로 가입하면 보험회사로부터 가격을 특별히 할인받을 수 있다.
많은 수의 조합원이 집단으로 가입하면서 구매력 파워가 생기고 위험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조합은 가입자 개인끼리는 누가 속이는지를 간여할 필요도 없다.
사기를 쳐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건 일종의 카르텔과 비슷하다.
회사들의 카르텔은 개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런 카르텔은 개인을 돕는다.
(웃음)

이영호 한국은 상황이 독일과 많이 다르다.
한국협동조합의 조합원은 개인 단위로 흩어져 있으며 그룹 단위로 특혜를 줄 수가 없다.
독일과 달리 조합원 출자금도 적다.
한국의 조합은 일부 조합원에게만 특혜를 줄 수가 없다.
그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은 대표 선출권 등 공익권을 지니고 있으나 사업이용권과 이용고배당에 대해서는 비조합원도 조합원과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협동조합이 사업을 통해 조합원에게 최대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며 그러다 보니 비조합원의 조합 이용이 날로 증대된다.


뮌크너 순수하게 협동조합 이론으로 보면 조합원이 소유자이고 이용자다.
만약에 조합원이 아닌데도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협동조합일까? 협동조합이 잘 되려면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없어야 한다.
조합에 출자자금을 낸 조합원은 그 자신의 서비스를 누리며 소득의 향상을 향유해야 한다.
조합원, 비조합원의 경계를 없애는 건 큰 실수다.


이영호 세계화 와중에 금융기관 경쟁이 심하다.
농협을 비롯해 협동조합의 경영진은 비즈니스 결과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비조합원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익을 얻기 위해선 비조합원에게도 서비스를 해야 한다.


뮌크너 어떤 사람은 말한다.
“네(조합)가 사라지면(합병되면) 커질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네(조합)가 커지면 사라질 것”이라고.(웃음)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경영이론에서는 균형을 중요시한다.
조합은 멤버십 장려와 경제적 효율, 조합원을 위한 ‘효과’와 경영적 ‘효율’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조합에 경영, 경제적 효율이 없으면 부도가 날 것이고 조합원을 위한 효과가 없으면 조합원을 잃을 것이다.


이영호 한국에서 출자-이윤 분배 방식의 조합은 제한이 크다.
독일에 비해 한국 협동조합의 조합원당 출자자금은 매우 적다.
한국의 조합은 낮은 자본화율로 고생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생존 전략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가?

뮌크너 조합원이 돈을 아껴 저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출을 받아가는 것이 협동조합 정신이다.
문제는 협동조합의 조합원들도 상업 은행 고객처럼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투기 자본이 늘어나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사회적으로 통제되는 자본, 교육된 자본이 필요하다.
그것을 나는 핫머니(Hot Money? 투기 자본)에 대비해 콜드머니(Cold money?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른다.
콜드머니는 조합원들에게 싼 돈(Cheap Money)을 제공한다.
이런 자본은 법률적인 규제와 아울러 교육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만약 협동조합 직원들, 간부들이 은행가처럼 비행기를 타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월급을 받아가길 원하게 되면 그 협동조합은 더 이상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비싼 비용을 치르려면 조합원은 싼 돈을 쓸 수 없게 된다.


이영호 올해 7월부터 개정된 농협법이 발효되면 농협중앙회 대표는 비상근 대표가 되면서 대부분의 조직에 대한 경영권을 하부로 이양하고 농민대표로서의 정치적 역할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자산 500억원 이상인 조합 909개는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하고 자산 1천억원 이상인 조합 434개는 조합장 선출 뒤 바로 상임이사를 선출해야 하는 등 일부 조합은 주식회사처럼 운영되기 시작한다.
규모의 성장은 금융전문가를 요구한다.
이런 시기에 농협 등 협동조합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뮌크너 협동조합끼리 협동해 시장 변화에 적응해 가야 한다.
독일에선 금융기관 관련법이 딱 2개 있다.
은행법과 협동조합법이다.
그래서 독일에선 협동조합 간 협동이 잘 이뤄진다.
독일 농촌 지역의 농민이 현격하게 감소하자 독일에선 농업협동조합(라이파이젠)과 도시협동조합은행의 합병이 진행됐다.
지난 35년간 이들은 1개 지역에 1개 협동조합은행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역량을 강화했다.
그런데 한국의 협동조합법은 농협법, 새마을금고법, 신협법이 제각기 따로 있다.
협동조합들은 서로 자기네 조직을 고수하면서 경쟁함으로써 전산비 등 엄청난 비용을 따로따로 부담하고 있다.
동일 지역에서 동시에 3개 조직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봐 UN은 협동조합을 총리실이나 기획부 장관이 관리하라고 지침을 내린다.
협동조합의 운영은 경제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분야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이미 지역예금 순환, 예금에 기반한 대출, 저비용의 예금-대출 시스템 등 협동조합과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한 기반이 존재한다.
정부는 공정하고 사람들은 성실하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합)지배구조는 다른 문제다.
협동조합이, 서민금융이 제대로 작동하길 바란다면, 작동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영호 조합이 경영 제일주의에 집착하고 협동조합으로서의 이념을 상실하면 대다수 국민들과 정부, 경쟁 기업의 외면을 초래하여 더욱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협동조합운동이 본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운동체’로서의 성격과 ‘경영체’로서의 성격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만 한다.
정부와 국민은 협동조합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이해하고 조합정신을 잃지 않도록 북돋울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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