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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 행복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법
[책과삶] 행복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법
  • 김윤지/ 객원기자
  • 승인 2005.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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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녀가있었다.
깡마른체구에왕방울만한눈,그래서더커보이는함박웃음을가진소녀였다.
소녀는사람들을만나면경상도억양을살짝섞어시원스레먼저인사를건네,늘깊은인상을남기곤했다.
게다가시키는공부도척척해낸덕분에소녀는과학고·KAIST를단기로쑥쑥진학한이른바‘과학꿈나무’였다.
소녀는주위의기대대로경영공학으로대학원까지마치고대기업에들어가실력을인정받기도했다.
그런데어느날갑자기소녀가회사를나와천연염색을배운다고했다.
나역시대기업의부속품처럼일하는데조금씩재미를잃어가고있던무렵이었지만소녀의모습은생뚱맞아보였다.
조금쉬다다시제자리로돌아가겠거니생각했는데,소녀는점점더삼천포로빠졌다.
바느질로전통조각보를만들고민속품가게에서점원으로일하는등,자신에게주어졌던길에서점점멀어져갔기때문이다.


한남학생이있었다.
그역시우리나라에서가장뛰어난수재들이들어간다는대학의독문과학생이었다.
그를만난건,강의실보다는거리의집회가더친근한사람들이만든학내한모임에서였다.
그모임엔유난히억센사투리와강한남성성을과시하는남학생들이많았던터라,잘생긴외모에조금수줍어하는태도를보이는그의모습은단연돋보였다.
“저렇게생긴사람이이모임에있다니,혹시성격에문제가있는건아닐까.”똑똑하고잘생긴사람이심지어올바른(?)사고까지가진게이상하다며,모임친구와난그의‘하자’를고민하기도했다.
졸업뒤한친구로부터그가벤처기업을하나뚝딱뚝딱만들었다고,그런데그회사가버젓이성공까지했다는이야기를전해들었다.



기득권포기하고시골로삶의터전옮겨


소녀와남학생은한회사에서만났다.
다시는회사일을하지않겠다던소녀는후배들이만든회사를도와주다회사의합병으로억지출근의기회를한번더얻은것이었다.
남학생은자신이만든회사가자신이꿈꾸던일터에서멀어지는것을안타까워하던때였다.
아마도서로만나지않았다면어떻게든그틀에자신들을구겨넣고살았을지모르는이두사람은,만나자마자강한화학반응을일으켰다.
이들은보란듯이함께회사를때려치웠고,두사람이직접준비한별난결혼식을치렀다.
그리고는꼭서울에서살필요가없다며대전에내려가살겠다는소식을전했다.


얼마뒤이들이삶의터전을무주로옮겼다는이야기를들었다.
둘다농촌태생도아닐뿐더러도회적인생활을해온이들이었다.
이런걸귀농이라고해야하는걸까,물어보니딱히농사를짓기위해산골로간것도아니었다.
궁금했다.
나만그랬으랴.하지만시시콜콜‘뭘먹고살려그러느냐’,‘앞으로나이먹으면어떡할래’와같은질문은할수없었다.
이런질문을하는내모습이속물적으로보일것같은걱정에,또세상의잣대에서벗어난삶을택하는그들의용기를꺾고싶지않았기때문이다.


그러다지난겨울이들의이엉뚱한모습이KBS의<인간극장>이라는다큐멘터리프로그램에소개됐다.
일주일동안조금씩토막내보여준이들의모습은새해벽두사람들의관심을기대이상으로잡아끌었다.
그만큼도시생활의비인간화에많은사람들이진절머리를내고있었는지도모르고,젊고잘생긴엘리트부부의시골생활이소꿉장난처럼재미있게느껴졌는지도모른다.
여하튼<인간극장>이란프로그램이생긴이후최고의시청률을기록했을정도로사람들은이들의삶에열광했다.


그프로그램은나에게도큰사건이었다.
일단내가잘아는사람들이(그것도두명이한꺼번에!)일주일내내텔레비전에나온다는것자체가충격이었다.
그리고내가그동안그토록물어보고싶었던‘어떻게’살고있는지에대한답도충실히보여줘,나를더혼돈의도가니에빠뜨렸다.
그모습은무한정낭만적인것만도아니었다.
하루종일세끼를준비하고,밥을지어먹고,개밥을주고,그러다하루가뚝딱가버리는모습이누군가의눈에는너무나‘비생산적’으로보일수있지않은가.그렇다고어떤거창한대의가있냐하면그것도아니었다.
그들은그냥그렇게사는게편하고좋아서일뿐이라고했다.
내일의행복을위해오늘의행복을저버리는건진짜행복한삶이아니기때문이라는것이다.


사람들은나에게자꾸만물었다.
아무리여섯다리만건너면다아는사람이라고는하지만,서로소개시켜준것도아닌데오래전부터부부양쪽을다알고있는경우란흔치않았기때문이다.
나는그런질문을받을때마다“이것은위대한시너지의힘”이라고에둘러피하는수밖에없었다.
텔레비전에나온그들의모습은그들의선택의결과물일뿐이었고,여전히그들의삶의수수께끼를풀수없었기때문이다.



“당신들의삶은중요한게빠져있다”


아마도그런궁금증을가진사람들이많았던듯싶다.
그래서이들은그답을한권의책으로모아냈다.
<인간극장>에나왔던제목<이보다더좋을순없다>를그대로붙여준책이다.
이책에서그들은자신들의선택에대해좀더자세하게세상사람들에게이야기한다.
“생계대책이라는것은물론경제에대한것이지만단지돈을버는방법에대한이야기만은아니다.
먼저내가살고싶은삶의모습과나의행복에대한그림이있고,그것을뒷받침하기위한경제적인계획이나올때그것이정말현실성있는생계대책이아닐까?아무리좋은직장에서많은월급을받아그것을모으고있다고할지라도지금자신의건강을심각하게해치고있다거나그렇게번돈으로행복한삶을지속할수없다면그것은현실적인생계대책이아닐수있다고생각한다.
”자신들의엉뚱한삶에대해질문하는사람들에게이부부는똑부러지게답한다.
오히려당신들의삶에서뭔가중요한게빠져있다고,자신들은자신들의행복에맞는아주현실적인방법들을찾고있다는것이다.


그렇다고이들이자신들의방식이옳다고강하게주장하냐면,그것도아니다.
글사이에서간간이느낄수있듯,이들은지금방식이최선이라고생각하지는않는다.
도시의깨끗함과시골의깨끗함이란차이가있고,그차이가운데어떤것에더중점을두냐에따라선호도가생길뿐이라는것이다.
지금이야도시생활에서느꼈던각종불편함에서해방돼시골의삶이더좋지만,또도시의방식이더필요하게될때면언제든떠날준비가돼있다는게또이들의삶이다.
어쩌면이들에게가장중요한원칙은미래를위해현재를희생하지않는다는것,그때그때필요한것을채워나가겠다는유목민의삶이기때문이다.

책을읽으며최근회사를그만두고싶다는한친구가떠올랐다.
이제까지야어찌어찌왔지만앞으로는점점더자기가하기싫은일을해야만살아남을수있을거라고,그런식으로살고싶지않다는고민을털어놓는친구였다.
하지만지금직장의보수를포기하는게쉽지않아보였다.
술한잔기울이며“그래,잘생각했다.
다른걸찾아보자.”이야기를건네자,친구는이제껏이이야기를꺼내동의를얻은건처음이라며힘없이웃었다.
우리삶이란이런모습이다.
유목민이되기엔너무나많은것이두렵다.
어쩌면이들부부에게서진정배워야할것은두려움을떨쳐내는법인지도모른다.


책과삶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장길연 지음
정신세계원 펴냄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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