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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경제] 인텔의 ‘아웃사이드’ 프로젝트
[해외경제] 인텔의 ‘아웃사이드’ 프로젝트
  • 함석진(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1.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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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비트 ‘이타늄’ 개발… 서버시장 공략·네트워크·통신장비 업체 인수 등에 총력

지난달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인텔 본사 사장실. 이 회사 크레이그 바렛 사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조그만 컴퓨터칩 하나를 계속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과연 이 칩에 인텔의 미래를 걸 만한가?” 인텔과 휴렛팩커드의 최고 기술진이 7년 동안 매달린 끝에 개발해낸 64비트짜리 차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 ‘이타늄’이었다.
GLOBAL BUSSINESS 1993년 인텔와 휴렛팩커드는 한 조그만 회의실에서 비밀회의를 열었다.
회의내용을 필기하기는 것은 괜찮지만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엄격한 규칙까지 세웠다.
전세계 PC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한 인텔이 서버 시장까지 손에 넣겠다는 야심찬 ‘이타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인텔 기술진은 32비트 서버용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한계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곧 인터넷을 통해 고속·대용량으로 정보가 오고가는 시대가 열릴 것이고, 32비트를 뛰어넘는 64비트 프로세서를 개발만 한다면 약속된 땅이 활짝 열리는 셈이었다.
시장에 대한 전망은 적중했지만, 숨가쁘게 진행된 인터넷 혁명은 인텔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앞서갔다.
성능이 떨어지는 중고서버도 시장에서 동이 날 정도로 수요가 폭발했다.
그러나 이타늄 개발소식은 얼른 들리지 않았다.
인텔 이타늄은 두번이나 개발일정을 늦춘 뒤 최근에야 겨우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닷컴 몰락’을 겪은 뒤인지라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또 서버칩 시장을 쥐고 있는 경쟁업체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이미 지난해 6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표해 김까지 빼버렸다.
인텔의 서버 시장 석권전략은 이대로 물 건너가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답변은 한마디로 ‘아니오’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인텔은 이미 한해 100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리고 현금자산만 340억달러가 넘는 정보기술 업계의 거대 공룡이 됐다.
토마스와이젤파트너스의 에릭 로스 투자분석가는 “PC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AMD(어드밴스트마이크로디바이시스)에게 가격공세로 재갈을 물렸던 것처럼, 인텔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화력’을 견뎌낼 업체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텔은 “이타늄은 고가의 고급 서버와 워크스테이션 시장이 주요 공략 대상”이라면서도 “소비자들에게 합리적 가격을 제시하는 것을 피할 이유는 없다”고 밝혀 가격경쟁을 벌일 뜻이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가트너그룹의 잭 로빈슨은 “PC 시장의 오랜 침체로 얼른 새로운 숨통을 찾아야 하는 인텔에게 초기 시장진입 비용은 문제될 게 없다”고 분석했다.
인텔은 관행대로 이타늄의 공급단가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지만, 많은 서버 제조업체들은 이미 줄을 대기 바쁘다.
이 칩을 공동개발한 휴렛팩커드 외에 델과 컴팩, IBM, 실리콘그래픽스가 다음달부터 이타늄 기반의 서버 제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인텔은 올해 안에 25개 업체의 35개 모델 제품이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은 PC 마이크로프로세서 매출 비중이 80%가 넘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몇년 전부터 사업 다각화에 부쩍 힘을 쏟고 있다.
서버 외에 네트워크 장비와 통신 칩 분야도 인텔이 새 수익원으로 눈독을 들이는 분야다.
모든 유·무선 통신과 가전기기가 인터넷 기반으로 묶이는 ‘올 아이피(ALL IP)’ 시대가 열리면 이 분야의 수요는 무궁무진하다.
인텔은 지난 2년 동안 수백억달러를 들여 20개 이상의 네트워크와 통신장비 업체를 인수했다.
또 이동전화 단말기의 핵심 칩인 디지털신호프로세서(DSP)의 개발에도 뛰어들어 아날로그디바이스와 공동으로 신호처리·저장·연산 기능을 칩 하나로 처리하는 통합 칩을 내년 안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 칩이 나오면 단말기 크기와 배터리 소모량이 지금의 3분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인텔 인사이드’ 상표로 세계를 평정한 인텔의 이런 맹렬한 ‘아웃사이드’ 전략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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