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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그 이후] 우리 시대 물적 토대에 관한 고찰
[보도 그 이후] 우리 시대 물적 토대에 관한 고찰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5.08.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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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오래된일이지만소설가김훈은어느인터뷰에서“좌익과진보는세상을맡을수없다”고말했다.
그이유는“물적토대가없으니까”이다.
김훈은“비참하게도우리시대물적토대의역사는우익이만들었다”면서“한국사회의물적토대를건설한사람은박정희대통령”이라고단언했다.


김훈의주장은언뜻경박해보이지만부정하기어려운힘이있다.
김훈의말이라서가아니라사실우리시대누구에게나박정희는콤플렉스처럼남아있다.
적어도우리는이제굶어죽지는않게됐다.
성장뿐만아니라분배를고민하게도됐고더나아가서웰빙을꿈꾸게도됐다.
공과는따로가려야겠지만박정희가그런물적토대에크게기여했다는사실을우리는인정할수밖에없다.


박정희는국부를쏟아부으면서재벌그룹을마구키워줬고이들이우리경제의성장동력이됐다.
경쟁력은낮은인건비에서기술력과자본으로옮겨갔다.
우리는세계를통틀어그어느나라보다빨리성장했다.
그비결은선도적이고공격적인모험투자에있었다.
박정희는이를드러내놓고아낌없이지원했다.
이를테면국가적인모험이었지만그런모험은운좋게도대부분성공했다.


성장이있어야분배도있다는논리,가난을벗어날뿐만아니라다같이부자가될수있다는환상.성장이데올로기는아직도우리모두를사로잡고있다.
261호커버스토리'LG필립스LCD의성공비결'은이런성장이데올로기의연장선위에있다.
이건사라져가는우리의물적토대에관한이야기다.
우리가더성장할수있느냐라는의문에대한나름대로의해답이다.


먼저우리는박정희때와지금이어떻게다른가제대로이해해야한다.
핵심은성장의방식이다.
박정희가외형성장을꿈꿨다면지금우리는이른바질적인성장을꿈꾼다.
외형성장과질적성장은같이갈수없다.
질적성장은무작정외형을늘릴게아니라더많은이익을내자는이야기다.
외형을줄이더라도더많은이익을내자는이야기다.


이익이야많으면많을수록좋겠지만문제는그이익이과연어디로가냐는것이다.
직원들월급을펑펑올려주고주가도오르고배당도듬뿍뿌리고.이익이늘어나면모두가행복해지는것처럼보인다.
그러나진짜문제는그런질적성장이과연지속가능하냐는데있다.
이익이나는대로모두나눠가지면성장을위한물적토대는누가만드나.

탐욕은스스로를집어삼킬만큼끝이없다.
외환위기이후기업들움직임은이런순진한우려에확신을더한다.
많은기업들이설비투자를줄이고있고당연히이익은늘어나지만그만큼매출은줄어든다.
성장성도줄어든다.
극단적인경우회사자산을팔아가면서이익을늘리는경우도있다.
직원들을자르는것은기본이다.


박정희의성장이데올로기는2000년대들어서면서종지부를찍었다.
이런변화는거슬러올라가면1999년대우가망하면서부터시작됐다.
기업들은이제투자를하지않거나하지못한다.
우리경제는눈에띄게성장의동력을잃고있다.
더이상새로운공장도없고새로운일자리도없다.
우리는성장하지않으면서이익만늘어나는시대에살고있다.
그이익은과연어디에서와서어디로가는것일까.그런이익은지속가능한것일까.

LG필립스LCD는지나간시대의향수를담고있는많지않은기업가운데하나다.
기업을홍보하는따위의기사는쓰고싶지않았지만,말하고싶었던본질은이런회사가이제드물다는것이다.
박정희가물적토대를만들고그동안그토대를딛고성장해왔지만그런성장이이제한계에이르렀다는이야기다.
성장의막바지에서그나마남아있는이익을마저쥐어짜내고나면우리는무엇으로미래를꿈꿀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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