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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메모]한국 기업이 미얀마 군사정권과 공범자?
[에디터스메모]한국 기업이 미얀마 군사정권과 공범자?
  • 최우성 편집장
  • 승인 2005.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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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독일의 어느 다국적 기업 본사 부근에서 사제 폭탄이 터졌다.
극렬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낙인찍혔던 한 조직이 자신들이 범행에 나섰다고 밝히고 나섰다.
그로부터 10여년 전, 이른바 적군파라는 테러조직으로 인한 대혼란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못했던 시절의 일화 한 토막이다.
문제는 범행 동기. 그 조직이 뿌린 문건엔 뜻밖에도 ‘KOREA’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해당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가 바로 한국에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한 채 노조 탄압 등을 일삼아 왔다는 게 그들의 논거였다.
이역만리 한국 땅의 피복분야 여성노동자들과 ‘연대’를 보여주겠다는 그들은 그 기업으로 하여금 즉각 해외 투자를 중단하고 철수하라는 주장을 폈다.
일종의 테러 행위로도 봄직한 이 사례와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지난 14일 서울 대우빌딩 앞에선 색다른 집회가 벌어졌다.
국내 10여개 시민단체가 미얀마의 활동가들, 국제인권단체인 ‘지구의권리’ 활동가들과 함께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앞바다 천연가스 개발사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 것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에 항의하는 내용의 집회가 열린 건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이 날 집회를 준비한 사람들은 국내 기업이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결국 현지 노동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환경을 무참히 파괴하는 해당 국가 군사 정권의 도움을 주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설 보호라는 명목으로 군인들이 현지에 주둔하면서 강제노역 등을 일삼을 공산이 무척 크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에 항의하는 목소리?! 문제는 이런 행위를 단지 해외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의 도덕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단지 이번 개발사업이 정당성 없는 미얀마 군사정권의 주머니만을 두둑하게 불려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비난받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의 유명한 정유회사 유노칼의 사례는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지난 90년대 미얀마 야다나 해역에서 천연가스 개발을 벌이던 유노칼은 개발을 도운 군사 정권이 저지른 무자비한 인권 탄압 행위로 인해 훗날 고발당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수천만달러의 배상금이라는 톡톡한 대가를 치러야 했음은 물론이다.
넓디넓은 지구촌을 무대로 펼쳐지는 오늘날, 기업활동의 면면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단지 해당 기업의 이미지 실추를 넘어 막대한 금전적 피해마저 떠안게 된다는 값진 교훈을 안겨준 셈이다.
잘 알려진 사례로, 옛 남아프라키공화국의 가혹한 인종차별정책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됐던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당시 부적절한(!) 행위의 죄과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법원 판결로 인해 수백, 수천만달러의 배상금을 물어내야 하는 탓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그 결정의 수혜자가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영향은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종업원, 해당 기업에 돈을 맡긴 투자자, 해당 기업을 품고 있는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당사자에게 고루 미친다.
물론 부정적 방향으로. 지난 14일 벌어진 이색 집회의 의미를 좀 더 긴 호흡으로 차분히 되새겨봐야 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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