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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응접실]인수합병 지도에서 빠진 이야기들
[독자응접실]인수합병 지도에서 빠진 이야기들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5.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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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페이지에 걸쳐 실었던 인수합병 지도에서 군인공제회를 비롯한 각종 공제회와 사모투자펀드(PEF), 그리고 우리사주조합이 빠졌다.
모르고 빼먹은 건 아닌데 사실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 전쟁에서 정작 그 기업의 구성원들에 대한 논의를 빠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 부실과 출자전환 이후 정상화와 매각에 이르기까지 하이닉스반도체의 노동자들이 겪었던 그 고통에 우리는 별 관심이 없다.
LG카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카드대란 이후 6552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투기펀드에 넘어간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던 외환은행도 빼놓을 수 없다.
경영 정상화는 상당 부분 이들의 희생을 딛고 이뤄졌다.
인수합병 전쟁에서 기업은 하나의 매물일 뿐이다.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동자들은 숱하게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거나 정리해고되거나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린다.
기업은 더 우량하고 건실해지는데 그 기업의 이익은 특정 대주주에게 넘어가고 사회에 환원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이 인수합병 전쟁의 모순이다.
기업의 경영권이 송두리째 넘어가는데도 노동자들은 흔히 아무런 선택권도 갖지 못한다.
최근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LG카드 등 노조들이 모여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인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핵심을 제대로 짚어낼 수 있었다.
민간 기업이라면 어떻게 서로 인수합병을 하든, 정부가 개입할 이유도 없고 방법도 없다.
그러나 정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이라면 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미치게 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50% 이상의 지분, 즉 절대적 경영권 또는 지배권을 특정 주체에 넘기느냐 마느냐에 있다.
다시 말하면 기업을 특정 주체의 소유로 만드느냐 아니면 다수의 분산 소유로 남겨두느냐의 문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다만 비싸게 팔기 위해 기업이 특정 주체에 넘어가는 걸 방치해 왔다.
재벌 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외쳐왔으면서도 정작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해 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론스타에 넘어간 외환은행이다.
발상을 바꾸면 해법은 분명하다.
정부가 조금 이익을 덜 보더라도 지분을 조금씩 나눠 파는 것이다.
어차피 이 엄청난 물량을 소화해낼 만한 인수 주체도 마땅치 않은 상황 아닌가. 군인공제회든, 교원공제회든, 우리사주조합이든, 건전한 투자자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기업의 지배권을 넘겨주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특정 주체의 지배권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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