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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비정규직 통계]사각지대 300만명, 비정규직 판정 받고파!
[이슈/비정규직 통계]사각지대 300만명, 비정규직 판정 받고파!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5.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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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오락가락 통계발표에 노동계 발끈…노동부 추정방식으론 ‘비정규직’ 범위 제한적 지난 10월27일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이례적인 기자 브리핑을 가졌다.
하루 전날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이날 노동부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가 지난해보다 9만명이 늘어난 548만명”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지난 8월 실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하루 전날, 비정규직 규모가 한 해 동안 37만명이 감소해 503만명이라고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심지어 지난 2001년 관련 조사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비정규직의 규모가 감소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매년 80만명 정도가 증가하던 추세가 처음으로 꺾였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과도한 비정규직 채용을 자제하기 시작했다는 나름의 ‘해석’까지 덧붙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통계 오류에 대해 김대환 장관은 불과 하루 만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 이런 오류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통계청에서 넘어온 자료의 코드표 오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그 결과 검증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실무자들의 ‘실수’였다는 이야기지만, 이로 인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한때 김 장관이 청와대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사의표명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는가 하면, 노동계는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양대 노총은 “잘못된 통계 발표에 책임을 지고 노동부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국회에서도 이번 해프닝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1월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책임을 추궁하는가 하면, ‘책임통감’에 대한 진의를 따져 묻기도 했다.
그야말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셈이다.
비정규 근로자냐, 취약계층 근로자냐? 굳이 통계오류가 아니더라도, 비정규직 규모를 추정하는 통계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해묵은 과제나 다름없다.
실제 비정규직 통계를 내는 방식에서 정부와 노동계 간 견해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으며, 이에 따라 추정 규모도 300만명 정도 차이가 난다.
정부가 지나치게 규모를 축소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돼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규모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통해 추정된다.
통계청은 매월 ‘본조사’를 실시하고, 매년 8월에 한 차례씩 ‘부가조사’를 실시한다.
흔히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라는 해석이 대세를 이뤘던 것은 본조사에 따른 것이다.
본조사에선 근로자를 종사상 지위에 따라 상용직과 임시직, 일용직 등으로 분류하는데, 이 중 임시직과 일용직을 비정규직으로 본 것이다.
부가조사에선 고용형태에 따라 더 세부적인 분류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비정규직의 실태를 파악해 왔다.
그렇다면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분석하는데, 왜 차이가 나는 걸까. 우선 노동부는 지난 2002년 5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문에 근거해 비정규직의 규모를 집계하고 있다.
당시 합의문에선 △한시적 근로자 또는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용역·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로 비정규직을 정의했다.
또 한시적 근로자의 개념을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자 혹은 근로계약기간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비자발적 사유로 계속 근무를 기대할 수 없는 자로 규정했다.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실장은 “지난 2002년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노사정 합의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빠져 있기도 했지만, 설혹 그 합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노동부의 추정방식은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시적 근로자 또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해석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부의 기준에 따라 비정규직의 규모를 추정하게 되면, 기존 통계청의 분류에서 임시, 일용직으로 비정규직 ‘판정’을 받았던 이들 중 상당수가 빠지게 된다.
고용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종사상 지위는 임시직인 장기 임시근로자들이 대표적이다.
일용직도 마찬가지다.
건설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이지만, 고용계약기간 없이 장기간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은 제외되는 식이다.
대신 노동부는 이들을 취약근로자로 분류해 별도의 보호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노동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부가조사의 설문문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 중에서 비정규직으로 판정받으려면, 부가조사의 설문 문항에서 지정한 비정규직의 범주에 부합해야 한다.
예컨대 회사가 폐업 또는 고용조정을 하거나 당신이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는다면, 계속 그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이에 대해 ‘예’라고 답한 사람들은 언제 짤릴지 모르는 임시직이라고 해도 비정규직의 판정을 받을 수가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 통계가 ‘현실’과 괴리됐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설문문항부터 바꿔야 결과적으로 이런 잣대를 적용하면, 올해 8월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청의 임시, 일용직 704만명 중 287만명이 ‘비정규직’에서 빠져나간다.
하지만 노동부쪽은 오히려 과대 추계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통계청의 임시, 일용직 개념은 고용계약기간 이외에 다른 기준을 복합적으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고 말한다.
사규에 따라 채용돼 인사관리 규정을 적용받고 퇴직금이나 상여금, 각종 수당 등을 받아야 상용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규직이지만 이런 기준을 채우지 못해 임시, 일용직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제외하자는 논리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계는 대체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의 계산방식을 따르고 있다.
최근 김 소장이 통계청의 자료를 분석해 제시한 비정규직의 규모는 840만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56.1%에 달한다.
비정규직의 규모가 절반을 훌쩍 넘어선 셈이다.
김 소장의 계산방식은 이렇다.
통계청의 임시·일용직 704만명에, 상용직 중에서 부가조사에서 확인된 비정규직(파견이나 용역 등) 136만명을 합치면 전체 비정규직의 규모는 84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유선 소장은 “비정규직이란 용어가 등장하기 전인 1970~80년대에도 많은 단체협약이 임시직 관련 조항을 체결하고 있는 것에서 보여지듯이, 노동현장에서 임시, 일용직은 불완전고용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통용돼 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김 소장은 “논란의 핵심인 정부쪽 추계에서 제외된 임시, 일용직 중 287만명의 노동조건을 보면 저임금 계층이 127만명인 데다,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가 33만명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들이 비정규직의 범주에서 제외된다면, 그야말로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계가 비정규직의 규모가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계산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실장은 “비정규직의 범주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따라,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정책의 강도가 달라질 뿐 아니라 관련 법이 마련되더라도 적용받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경제활동인구조사를 수행하는 통계청은 비정규직 통계가 이슈가 될 때마다 곤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상용, 임시, 일용으로 분류하는 고용조사는 정부가 구분하고 있는 정규직, 비정규직 개념과 일치하지 않아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꾸준히 이루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60년대부터 자료가 축적돼 온 기존 고용조사의 분류체계를 폐기하게 되면 관련 연구기관이나 노동계 등의 반발에 부딪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진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황보연 기자 hbyoun@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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