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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에너지 소외’ 없는 세상은 언제쯤 찾아올까?
[진단]‘에너지 소외’ 없는 세상은 언제쯤 찾아올까?
  • 조수영 기자
  • 승인 2006.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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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전기료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고 살던 여중생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에너지 소외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지난 2004년 한 해 동안 하루 이상 단전을 경험한 가구는 총 48만6362가구. 한 가구당 평균 3.2명씩 계산해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100명당 3~4명이 단전을 경험한 것으로, 저소득계층의 에너지 소외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에너지기본권에 대한 인식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저소득계층의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와 수도, 가스의 공급을 보장하자는 ‘에너지기본권’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때마침 지난 1월5일 지속가능경영원의 주최로 열린 ‘사회적 약자 지원을 위한 에너지 정책 토론회’는 에너지기본권 논의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에너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력산업기반기금 활용도 높여야 ‘에너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맡아 이날 토론회의 시작을 연 김기찬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에너지 기업들을 일컬어 “힘과 실력이 있으나 비전이 없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햄릿형 기업”이라고 지적하고, “사회적 정의를 위해 기업이 가진 힘을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사회가치와 시장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IMF를 기점으로 점차 이를 통합하는 경향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김 교수는 “현재의 이익만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 경제활동의 외부효과로 발생하는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정책의 허상을 꼬집는 얘기도 쏟아졌다.
이강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정부의 2004년 결산보고에 따르면 원자력 관련 홍보비로 약 236억원을 지출하고, 언론 광고비로만 한 해 동안 174억원을 지출한데 반해, 저소득층 단전가구에 대한 대책으로 산자부와 한전이 ‘소전류제한기’를 확대 보급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예산은 1억5천만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소전류제한기란 전력회사가 수용가정의 입구에 설치해 미리 정한 값 이상의 전류가 흘렀을 때 일정시간 내의 동작으로 정전시키기 위한 장치를 말한다.
정부는 여중생 촛불사망 사건 이후 전국 단전가구에 형광등 2~3개를 켤 수 있는 수준의 110W 전력을 공급해 주는 소전류제한기를 구매해 단전가구에 확대 보급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소전류제한기는 대부분의 가구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냉장고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음식 부패는 물론, 컴퓨터를 통한 자녀 학습이 곤란한 것과 같은 어려움 등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소전류제한기를 통해 공급되는 전력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TV의 순간전력조차 되지 않는 수준인 탓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여중생 촛불화재 사망 사건 이후 한전은 전국적으로 20만2932가구에 대해 단전유예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전은 “주거용인 주택전력 고객에 대해서는 혹서기, 혹한기 등 부득이한 경우 전기사용계약의 해지를 유예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한 상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정부의 의지와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 노력이 저소득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며 산자부나 한전 차원의 실태조사로 단전가구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하고, 실제로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력산업기반기금의 활용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력산업이 경쟁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한전의 공익기능을 정부가 담당하면서 소요되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기금으로, 전기요금의 4.591%로 구성된다.
이 연구원은 “8천억원에 이르는 2004년 미집행자금의 1%도 안 되는 70억원이면 단전가구 중 10만 가구에게 최소 생활에 필요한 전력 100kWh를 매월 무상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 제안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한국도시가스협회의 정희용 박사는 전적으로 공감의 뜻을 나타내며, 한전의 공적기능을 활용하기 위한 기금의 상당량이 다른 부분에서 활용되는 현실에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가스업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에너지기업에 의해 제공되고 있는 저소득층에 대한 요금 할인 혜택은 장애인, 상이용사, 학교 등 다른 부분의 할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그 할인분만큼 다른 사람이 요금을 더 부담하게 되는 교차보조가 발생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정부가 공적자금이나 예산으로 지원하거나 요금체계 안에서 적정한 요금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총괄원가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에너지 지원 대상자인 저소득층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의 부족도 이번 토론회에서 꾸준히 지적된 문제점이다.
정희용 박사는 “지난 연말 기초수급자와 저소득층을 방문해 보니 실질적인 지원과 제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공급 기업에서도 데이터를 정확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복지부 차원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형식적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기초수급자가 되지는 못했으나 실질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경우임에도 이들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다.
형식적인 수혜 대상자와 실질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수혜 대상자에 대한 정보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지원 대상만 차상위 계층까지 확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정 박사의 생각이다.
일원화된 집행기관 설립도 검토할 만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운용되고 있는 각종 에너지 지원제도의 효율성 역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권혁수 박사는 “정부가 연탄의 최고가격을 고시가격으로 정하고 생산원가와의 차액을 지원하는 가격보조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연탄 수요가 최근 다시 급증하는 상황에서 현재 1천억원이 넘는 연탄가격 지원액은 내년에 2500억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권 박사는 “연탄 사용 가구가 20만 가구 미만인 상황에서 현재 방식의 지원으로는 그 혜택이 정작 사회적 약자보다는 지원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시장 교란이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지금의 지원제도는 에너지원별로 분리되어 있어 효율성이 떨어지는데다 정작 수혜자들은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권 박사는 그 대안으로 영세가구에 대한 지원방식을 가격보조에서 소득보조 방식으로 변환하고 지금의 공급원별 지원방식을 통합지원방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를 위한 세부안으로는 에너지쿠폰제도를 도입해 에너지원간의 대체효과를 이용할 것과 저소득층 지원을 총괄하는 일원화된 집행기관을 설립해 절차를 통일하고 복지부, 지자체 등과 연계를 강화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권 박사는 “지금은 법적 근거가 없지만 에너지기본법이 발효되면 지원의 근거가 생긴다”며 “에너지 공급사들이 기금을 출연하고 지금 들어가는 연탄 보조금의 절반 정도만 모아도 상당한 규모의 기금이 될 것”이라며, 조만간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국전력은 자체적으로 앞서 언급한 전기요금 할인, 혹서혹한기 단전유예제도, 소전류제한기 부설 외에도 직원들이 모은 희망기금으로 저소득층의 전기요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실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만 이 같은 일시적 지원보다는 ‘에너지소외’ 자체를 좀더 근본적인 사회문제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재단을 통한 우회적 지원보다는 일선의 한전 담당자, 사회복지사, 공무원들의 유기적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민주노동당 이강준 정책연구원은 “에너지 소외자는 기초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사람들로서 이들이 또 다른 빈곤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 영업운영팀의 조태웅 팀장은 “지원제도의 수준에 대해 고민 중”이라며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에너지 공급자의 무한 책임이 아니라 정부 복지정책 차원에서 현 지원제도를 포함하는 사회안전 종합대책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조수영 기자 zsyou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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