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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메모]‘달러 없는’ 세상?
[에디터스메모]‘달러 없는’ 세상?
  • 최우성 편집장
  • 승인 2006.0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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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없는 세상. 한반도 좁은 땅덩어리에선 제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구경할 수 없는 ‘기름’을 사들여 오기 위해, 무엇이든 내다팔아 달러를 벌어들여야 했던 우리네 슬픈 지난 시절을 떠올리자는 게 아니다.
혹여, 미국 정부의 으름장처럼 ‘위폐’라도 찍어내 필요한 달러를 조달한다는 어느 정권 치하의 세상에 대한 얘기도 아니다.
분명히 한 나라의 ‘국민통화’임에도 실상은 세계 경제를 떠받드는 ‘기축통화’로 군림하는 현재의 ‘달러 체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최근 들어 ‘달러 제국의 붕괴’를 알리는 시나리오들이 부쩍 활발히 떠돌고 있다.
논자들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달러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 통화체제에 담긴 모순들이 결국엔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가져온 장본인이며, 현재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뒤바뀌지 않는 한 세계 경제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게 이런 류의 시나리오에 공통적으로 담긴 알맹이다.
연초부터 모두의 눈과 귀를 환율에 매달리게 만든 달러화의 약세 기조가 이런 시나리오의 파괴력을 더욱 높여주는 토양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과연 ‘달러 체제’를 넘어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 세상을 준비하는 움직임은 시급히, 하지만 차분하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일 게다.
지난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세계 경제를 주물러 온 마에스트로의 퇴장 순간이 때마침 나라 안팎의 이런 분위기와 한데 겹친 것은, 분명히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지난 1987년, 앨런 그린스펀이 80년대를 몰아친 인플레이션 광풍을 일거에 잠재운 폴 볼커 의장의 바톤을 이어받았을 때만 해도 이후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세계 경제가 이런 모습을 띨 것이라 미리 가늠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터이다.
‘그린스펀 시대’ 내내 마에스트로와의 뿌듯한 싸움을 즐겼던(!)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에서 이달 말 물러나는 마에스트로를 불러 세워 마지막 승부를 청한 것 역시 앞서 말한 최근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번 호에 실린 특별기고에서 지적되었듯, 그린스펀 의장이 재임 시절 취한 저금리 기조가 미국에선 경상수지 적자를, 동아시아에선 과잉저축을 낳으며, 전 세계적 차원의 불균형을 가져온 첫걸음이라는 비판은 최근 들어 더욱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19년에 걸친 재임 기간 동안 시장의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마에스트로란 칭호를 얻었을지언정, 그가 만만치 않은 과제를 던져준 건 분명하다.
이제 마에스트로는 떠나지만, ‘당분간’ 그의 시대가 계속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대는 후임자에 의해 자산 거품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해결’된다고 해서 쉽사리 종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퇴장을 지켜보며, 자꾸만 달러 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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