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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외화 밀반출 혐의 드러난 론스타, ‘솜방망이’ 처벌
[이슈추적]외화 밀반출 혐의 드러난 론스타, ‘솜방망이’ 처벌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03.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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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유동화는 파생상품과 금융공학의 꽃이다.
유동성은 떨어지지만 시장가치가 높은 유무형의 자산을 넘겨받아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이를 운용해 원리금과 배당금을 지급하는 걸 말한다.
보통 유동화전문회사(SPC)라는 페이퍼컴퍼니가 그 역할을 맡고 발행회사가 이 회사에 신용을 제공해 자금조달을 돕는다.
1998년에 제정된 자산유동화법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론스타의 자회사인 허드슨코리아가 이 유동화전문회사를 활용해 거액의 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한 사실이 최근 적발됐다.
지난해 10월 국세청이 론스타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 이래 드러난 위법 사실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허드슨코리아는 해외에 여러 개의 유동화전문회사를 두고 채권 등의 유동화자산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사들여서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특정 회사에 자산을 이전하는 수법을 썼다.
허드슨코리아는 이 과정에서 유동화전문회사를 내세워 금감원에 신고하지 않고 자금을 제3자에게 대여하거나 차입하기도 했다.
또 론스타코리아가 제3자와 허위로 컨설팅 계약 등을 맺고 용역비를 청구해 해외의 유동화전문회사에 자금을 불법 반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페이퍼컴퍼니일 뿐인 유동화전문회사에 대해 금감원이나 국세청 등의 통제와 감시가 소홀하다는 사실을 노린 것이다.
그렇게 빠져나간 자금이 무려 860만달러에 이르렀다.
위법 사실은 충분히 드러났고 이제 남은 건 처벌 방법이다.
그런데 자산유동화법의 경우 규제를 위한 법이 아니라 부실자산의 처리를 지원하기 위한 법인 탓에 처벌조항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장 수위가 높은 제재조항이라고 해봐야 업무개선 명령 정도다.
만약 허드슨코리아가 유동화전문회사의 등록 서류 등을 조작했거나 고유자산과 유동화 자산을 구분해서 관리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처벌이 가능하지만 둘 다 해당 사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860만달러 밀반출에 개선명령으로 끝나 그래서 금감원이 내린 제재조치는 결국 내외부 통제장치를 구축 보완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업무개선명령에 그쳤다.
허위 용역과 관련해서도 1년간 비거주자에 대해 용역대가 지급정지 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결국 860만달러의 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했는데도 벌금 한푼 물지 않고 끝난 것이다.
관련 제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던 셈이다.
금감원 공시감독국 현정근 팀장은 “관계부처와 협의해 제도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 팀장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사항과 재산해외도피 혐의 등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의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고 보고 관련 위반내용을 검찰에 통보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론스타의 자산유동화법 위반 혐의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국세청을 통해 확인된 사안이었다.
금감원이 거의 반년 가까이 뜸을 들이며 발표를 미룬 것은 마땅한 처벌 방법을 찾지 못한 고민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한편 론스타는 이례적으로 홍보대행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금감원의 업무개선 명령을 충실히 이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론스타는 또 “관련 대상자 개인에 관한 문제이지만 회사가 개인의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론스타는 지난달에도 외환은행의 매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최근 들어 부쩍 여론의 동향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이날 자료에서는 “이미 대상자에 대한 내부감사를 진행했고 그에 따른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힌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본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860만달러의 탈법 행위에 대해 미국 본사의 승인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10월 국세청 조사를 앞두고 출국한 뒤로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상태다.
어이없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서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도 여전히 유효하게 됐다.
은행법에 따르면 대주주가 금융관련 법률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은행 대주주 자격이 박탈된다.
이 경우 10%가 넘는 지분에 대해서는 6개월 이내에 강제로 처분해야 하지만 론스타는 해당사항이 없다.
외국환거래법과 재산해외도피 혐의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남겨두고 있지만 역시 대주주 자격에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처벌 법적 근거 여부 논란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재산해외도피 등은 금융관련법의 대상이 아니다.
혐의가 드러나 형사 처벌을 받더라도 대주주 자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결국 현재로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가 전혀 없는 셈이다.
윤증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법적인 보완 없이는 론스타에게 벌금형 이상의 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금감원은 6개월마다 금융기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하게 돼 있다”며 “탈세 혐의가 명백히 드러난 만큼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지분 매각을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일단 매각을 중단시키고 시간을 번 다음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윤 원장은 이에 대해 “매각을 중단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정무위 회의에서는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외환은행의 독자생존을 추진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윤 원장은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라며 일축했다.
윤 원장은 “몇 조원이 들어가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겠느냐”고 말했다.
매각을 중단하라는 심 의원의 주장에는 “강제로 매각을 막았다가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은행법에서는 외국인(금융기관일 경우)이 국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 요건으로 국제적인 신인도가 높을 것, 외국에서 3년 동안 제재를 당한 사실이 없을 것 등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론스타는 금융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6개월마다 한번씩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조차도 받지 않고 있다.
게다가 론스타는 일본에서 탈세혐의로 130억원을 추징당한 사실이 있다.
자격을 박탈당할 요건은 이미 충분한 셈이다.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국장은 론스타가 매각 승인 당시 금감위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실도 지적했다.
금감위 회의록에 따르면 론스타는 “미국 당국을 설득해 외환은행 현지법인을 2년 동안 계속 영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외환은행 미주지점은 모두 폐쇄되거나 송금업무 등만 전담하는 대부업체로 전환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론스타는 아무런 제재조치를 받지 않았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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