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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경제교육 광풍 속에 팽당한 노동교육
[커버]경제교육 광풍 속에 팽당한 노동교육
  • 최중혁 기자
  • 승인 2006.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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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현재 우리나라의 임금노동자는 1509만8천명. 경제활동인구 2336만5천명의 65%를 차지한다.
생계 전선에 뛰어든 국민의 65%는 좋든 싫든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라는 얘기다.
그럼 이들 임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규정한 노동법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취업을 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노동자와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처음 맺을 때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임금, 근로시간, 업무장소 등등 근로조건을 반드시 명시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봉 2천만원이라는 계약을 맺었다면 연봉 속에 어떤 항목들이 포함돼 있는지 사용자는 서면상으로 반드시 알려줄 의무가 있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 사용자들은 이를 잘 안 알려줍니다.
연봉계약자라 하더라도 1년 동안의 ‘임금’만 정해졌을 뿐 ‘근로기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일반적인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용자나 노동자나 1년 뒤 마음대로 해고(당)할 수 있다고 여기죠. 그리고 입사할 때 체결한 계약 내용과 입사 후 실제 업무 내용이 다를 때는 바로 노동위원회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사용자는 사업장에 취업규칙을 항상 구비해놓아야 하고 이를 노동자에게 주지시켜야 할 의무도 있지요. 그런데 법에서 정해놓은 이러한 것들이 실제 사업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요. 몰라서도 못하고 알고도 안하는 거죠.” 윤여림 민주노무법인 노무사의 얘기다.
△ⓒ 이주노 비정규직 '증거' 전락한 근로계약서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24조 내용은 이렇다. ‘사용자는 근로계약 체결시에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근로시간 기타의 근로조건을 명시해야 한다.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명시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이 법과 이 법에 의하여 발하는 대통령령의 요지와 취업규칙을 상시 각 사업장에 게시 또는 비치하여 근로자에게 주지시켜야 한다(제13조)’고 규정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있는 대규모 사업장들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노동법 상식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드물다. 오히려 최근에는 비정규직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증거로서의 ‘근로계약서’ 작성이 보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3월 초 발생한 KTX 여승무원들의 파업도 그 배경에는 노동법 교육의 부재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들의 외모가 파업노동자들의 일반적인 모습 - 까칠한 수염에 노숙자 같은 점퍼차림 - 이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20대 여성들의 발칙한 반란’ 등의 시각으로 다뤘지만, 실제 내용은 ‘너무나도 무지했던 노동법 상식을 알아가는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 KTX 열차 승무지부의 민세원 지부장이 3월 초 과의 인터뷰에서 토해낸 얘기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더라도 알아야 하는 시민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고용의 여러 형태, 근로조건 등 노동자로 살면서 꼭 필요한 상식을 배우지 못했죠.” 이들은 2004년 3월 입사할 당시 사측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신분이 위탁 계약직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 측은 계약서에 1년 단위 계약조건이 명시됐고, 당사자들이 사인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 사용자는 계약서 작성뿐만 아니라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노동자에게 인지시킬 의무가 있음에도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철도유통(구 홍익회)은 대부분 사회 초년생들인 이들에게 계약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대신 회사 측은 3개월 동안 입사교육을 실시하면서 △2005년 정규직 전환 △ 준공무원 신분의 정년 보장 △ 항공사 스튜어디스 수준의 대우 등 지키지 못할 약속만을, 서류가 아닌 구두로 떠들어댔다. 취업규칙을 제대로 구비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대해 윤여림 노무사는 “사업주들은 대개 구두상으로 허풍을 떨지만 법적 효력은 하나도 없다”며 “자신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는 주종관계에 가깝기 때문에 계약서를 교부하고 확인하는 행위 같은 건 관행화되지 않은 것 같다”며 “취업난이 심하다 보니 가뜩이나 노동법에 무지한 사회 초년생들이 대부분 취업만 되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청소년 '알바' 대세 속에 노동교육은 전무 이런 사례가 비단 사회 초년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노동의 경우엔 문제가 더 심각한 편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동부지구협의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동부지회가 지난 2002년 서울 동부지역 고등학생 6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노동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1.6%(321명)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88.9%(복수응답 포함)가 초과근로나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폭언이나 체벌, 성희롱 등을 당한 경우도 15.9%나 됐다.
반면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에 대해서는 78.7%가 ‘모른다’고 답했고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또한 부당대우를 받은 후 ‘지원이나 상담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이 75.9%에 달해, 대부분 참고 넘어가거나 혼자서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이 조사를 주도했던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의 박학룡 조직부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시대가 바뀌어서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이 아르바이트 등 노동을 경험하고 있는데 선생님들은 이에 대해 너무 무관심합니다.
실업계 선생님조차도 노동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열심히 일하라고만 가르칩니다.
심지어는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면 정규직인 줄 아는 선생님도 계세요. 선생님 스스로가 노동자 의식이 약하다 보니 노동법에 관심이 없고 학생들의 노동실태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거죠.” 예를 들어 전교조에서는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학교가 암기나 진학 위주여서 그런 얘기를 꺼냈다가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왔다”며 “학교의 탄압을 피해 몰래 노동법 교육을 실시한 선생님이 있긴 했는데 돌아온 건 해직과 구속밖에 없었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노동에 대해 긍정적 인식은커녕 그저 힘들고 어렵다는 인식만 팽배하다”고 답했다.
우리 교육 현장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든 대학교를 졸업하든간에 노동자로서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할 기본 권리는 대부분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이리저리 몸소 부딪히며 터득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장기 농성에 들어간 민세원 지부장이 털어놓는 얘기에서도 이는 잘 드런난다.
“(노동자로 살면서 꼭 필요한 상식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디서도 배울 수 없었다.
노조를 결성한 뒤 법전을 뒤지고 노무사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한겨레21 이용호 기자 '노동'항목 빠진 사회교과서 그럼 이 같은 노동법 교육의 부재가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일까? 미국의 경우, 학교 노동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학교 노동교육위원회(교원연맹), 직업경험교육가협회, 교사와 대학교수, 비정부단체(NGO) 등 다양한 주체가 노동시장 전반, 직업세계, 노동사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단체협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에 대해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이 초등학교 단계부터 실시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교사를 위한 프로그램도 따로 마련돼 있다. 노동자 의식과 시민의식이 발달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서도 초등학교 때부터 공동체 생활과 시민교육, 노동법과 노동조합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초·중·고교 교육현장에서 노동법 교육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한국노동교육원이 2003년 12월 내놓은 ‘초·중·고교 사회교과서 노동교육 내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교육은 △ 일, 노동의 개념 △ 직업윤리 △ 직업선택 △ 노동과 여가 △ 경제활동 △ 현대사회 노동문제(여성근로자, 외국인근로자, 실업) △ 정보화, 세계화에 따른 변화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노동법이나 노사관계, 노동조합에 관한 내용은 아예 빠지거나 슬쩍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특히 노동3권,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등 노동 관련법 내용을 다룬 교과서는 ‘대한교과서’에서 출판하는 단 1종류에 불과하고, 나머지 교과서는 이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있었다. 노동법학을 전공한 김인제 상지대 교수는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조차 노동법을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다”며 “법과 사회라는 교양과목 중에 노동법 1~2시간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긴 하지만 강의목표를 두고 교육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현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이러한 관행이 사법연수원으로까지 이어져 노동인권에 대해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예비 법조인들이 판·검사 임용 후 친재계, 반노동 성향의 판결에 치우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죠.”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노동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9월 노동부는 대통령에게 ‘노사관계로드맵’을 보고하면서 학교 노동교육 강화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노동교육을 강화하는 목적은 노동자로서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나 피해 구제에 두어진 것이 아니라, ‘올바른 노사관 정립’에 맞춰졌다. 쉽게 말해 파업을 줄이는 데만 관심이 쏠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전경련 등 재계는 기존의 경제교과서 ‘무용론·해악론’을 대대적으로 펼쳤고 교육인적자원부와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정부 기관들은 앞다투어 이를 반영, 시장경제 및 금융교육 강화에 열을 올렸다. △EPA 제공
'노동교육=의식화' 단순 논리 한국노동교육원이 2004년 4월 개최한 ‘학교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워크숍’에서는 노동계와 재계, 정부, 학계, 교사 등 각계 사람들이 모여 노동교육 강화를 외쳤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동상이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인호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실업계 교과서의 경우 사용자 중심의 교과서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서술자의 주관이 배제된 객관적 관점의 노동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노동교육이 정식 교육과정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한국경영자총연합회의 황인철 사회정책팀장은 “사회적 이익과 배치되는 노동은 잘못이고 노동교육의 방향 또한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노동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재계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해와 21세기 회사경영을 위한 필수 교양에 대한 내용을 교과서에 포함시킬 것도 함께 요구했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정호 연구위원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합법적인 노사관계를 인식하는 근로자를 고용하면 기업은 노사분쟁이라는 비용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와 맞물려 기업의 경제교육 투자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논의 과정에서 우리나라 청소년과 대학생 대부분이 경험하고 있는 부당 대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관료나 기업인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왜 우리나라의 노동법 교육은 이 정도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군사정권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반공교육, 즉 우리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은 여전히 기피되고 있는 단어다.
아직도 정부는 ‘노동자’보다는 ‘근로자’, ‘노동조건 개선’보다는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홍길동처럼 한국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을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3년 11월27일 서울시 의회 행정사무감사장에서 의원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 한 토막은 이러한 현실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당시 민주노동당 심재옥 의원은 서울시 산하 직업전문학교의 열악한 노동조건의 실태를 지적하고 노동법 관련 교육을 실시할 것을 제안했지만 김종문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직업학교에다가 노동의식화 교육을 시키자는 거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심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서울시가 학생들의 취업률과 자격증 내용만 보고했는데 취업률도 중요하지만 어떤 근로조건에서 일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해 관련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1년 미만의 비정규직이었어요. 심지어 용역회사로 가고 최저임금 위반 사례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서울시는 ‘임금과 근로시간 전부 만족한다’는 사인을 학생들에게 받았더군요. 최저임금 53만원도 못 받고 평균 노동시간이 10시간 이상인 사람한테도요. 기본적인 노동법만 알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노동법 교육을 제안했더니 한나라당 의원들이 ‘노동자라고 부르지 말고 직원이라고 불러라’, ‘민주노총 해체시켜라’ 등 난리를 쳤고, 결국 산업국장이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발언하면서 마무리됐지요.”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서울시는 여전히 미용사, 선반공, 건설기계공 등 직업전문학교 학생들에게 노동법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인성교육 명목으로 교회 목사 등이 진행하는 교양교육이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심 의원은 이 시간만이라도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근로기준법을 가르치길 바라고 있다.
위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가 아직 체계적인 노동법 교육 실시에 대해 수용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직장 내 노동조합을 통한 교육을 차선책으로 고려해볼 수 있음직하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11%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법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우리나라 임노동자 10명 중 9명이 원천적으로 이러한 기회에 봉쇄돼 있는 상황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노동교육 않으면 앞으로 사용자도 피해자" 문제는 이런 현실이 지속될수록 국가 전체적으로 필요 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노동교육의 부재→노사 양측의 노동에 대한 왜곡과 극단적 인식→지나친 피해의식과 뿌리 깊은 불신→극단적 노사 대립’이라는 참혹한 노사관계가 반복되게 만드는 것이다.
재계는 교육부와 더불어 초등학교 때부터 친시장, 친재계 중심의 교육을 실시하면 이 같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분명한 오판에 가깝다.
이들 어린 학생들이 자라서 모두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내 자식이 ‘노동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실제 대부분의 국민들은 임노동자나 자영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친재계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수용하기 힘든 차별 앞에 순종적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힘들다.
오히려 학생 시절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과 억압을 직장에서 경험하며 ‘시민’에서 ‘전사’로 급격하게 탈바꿈해온 것이 지금까지의 국내 노동운동 역사의 한 단면이다.
이를 두고 심재옥 의원은 “사용자도 피해자”라는 한마디로 집약했다.
그는 “노동조합을 경험하지 못한 사업에서는 사용자도 노동법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사용자가 더 억울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가 극단적인 두 부류의 노동자 형성을 통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닌 이상 체계적인 노동법 교육은 합리적 노동계급 형성의 핵심 수단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서울 시내 4개 고등학교 2학년 3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노동자 하면 주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나는 되고 싶지 않다’(39.4%), ‘가난하다’(34.7%), ‘불쌍하다’(33.6%), ‘미래의 나의 모습이다’(5%), ‘자랑스럽다’(3.2%)의 순으로 응답한 것은 한국 노동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지 못하고 미래의 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 알아야 할 가치와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언제까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계속 심어줄 것인가?” <....> (-> 책 제목 기입)의 저자 홍세화 선생이 한 말이다.
최중혁 기자 tjp2010@economy21.co.kr
당신의 노동법 상식 수준은?
임금노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노동법 상식 10가지를 추려보았습니다.
내가 몇 개나 알고 있는지 점검해보세요. 1. 회사는 근로계약을 맺을 때 노동자에게 임금의 구성항목(기본급, 직무수당, 자격수당 등), 계산방법(월급제·연봉제 구분, 산정기간, 연장근로수당 산정방법 등), 지불방법을 서면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 □ ) 2. 평균적으로 5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1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반드시 퇴직금을 주어야 하고, 퇴직금을 매월 나누어서 지급할 수 없다.
( □ ) 3. 평균적으로 300인 이상을 사용하는 사업장의 법정근로시간은 1주 40시간, 1일 8시간이다.
( □ ) 4. 회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고,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최소한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하거나 30일분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 □ ) 5. 회사를 그만둘 때 다른 사유 없이 자발적으로 사직한다고 사직서를 제출하면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
( □ ) 6. 연장근로는 1주간에 16시간(300인 미만 사업장은 12시간)까지 노사합의에 따라 가능하고, 제한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시킬 경우에는 노동부장관의 인가를 얻어야 한다.
( □ ) 7. 연장근로[1일 8시간 초과 또는 1주 40시간(300인 미만 사업장은 44시간)], 야간근로(22:00~06:00), 휴일근로(주휴일, 법정휴일, 약정휴일) 시에는 50%의 가산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다만 주 40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3년간은 주당 최초 4시간의 연장근로는 25% 가산임금 지급이 가능하다.
( □ ) 8. 한 달간 개근하면 1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 1년간 80% 이상 출근하면 15일의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1년 동안 이미 사용한 휴가일수는 공제한다.
( □ ) 9. 회사는 1년에 한 번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하고 모집 및 채용, 임금, 배치, 교육, 승진 등에서 남녀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 □ ) 10. 일을 하다가 다치면 산재보험에 의해 보상받을 수 있으며, 산재로 휴직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할 수 없다.
( □ ) 자료:윤여림 민주노무법인 노무사
노동교육,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이루어지나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경제와 직업윤리’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동인권에 대해 역할놀이를 활용하는 등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일반계와 실업계 고교 공통으로 ‘시민-사회교육’이라는 교과를 통해 ‘시민권, 일할 권리, 노동계약, 임금, 아동 및 여성노동, 위생, 안전, 노동조건, 불법노동, 노동조합, 집단적 행위, 분배 정의, 다양한 인권선언’ 등을 가르치고 토론식 수업을 진행한다.
역할놀이를 통해 학생들이 노사 양편으로 나뉘어 단체교섭 훈련도 실시한다.
독일의 노동교육은 보다 철학적이고 섬세하다.
독일의 ‘노동지향적 일반교육’은 초등과정(노동세계와 관련된 초보교육), 중등1과정(기술 및 경제교육), 중등2과정·김나지움 상급단계(경제학, 기술학 등 노동세계에 대한 이론적 대비), 중등2과정·직업학교(사업장 견습 등 노동세계 연계교육), 교사들에 대한 노동세계 관련 교육, 노동지향적 성인교육 등으로 구성된다.
교과서에서는 독일사회의 해결과제인 실업문제에 대해 30쪽을 할애하는가 하면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이라는 관점에서 50쪽 넘게 관련 내용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헌법과 단체협약법, 공동결정법, 사업장 노사관계법, 직업교육법 등 노동권의 법률적 근거를 교과서에 명시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모의노사관계 놀이를 통해 단체협상에 대비토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교과서는 미국의 노동력이라는 하나의 장에 미국노동자, 조직화된 노동자, 단체교섭 등의 작은 절로 구성해 노동자를 사용자와 함께 미국 노동시장의 주체로 언급하며 노동자의 조직화된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윤리 교과서에서도 노동조합의 형성, 노사관계, 정부의 조치, 오늘날의 노동조합이라는 소영역을 다루고 있다.
일본 또한 ‘중학생의 공민’에서 기업의 여러 문제와 함께 노동조건의 개선을 다루고 있고,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영국도 ‘시민교육’ 교과에서 법률상의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 시간제 노동을 하는 학생들의 권리와 책임, 노동관련 분쟁과 노동조합의 역할, 노동자를 위한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는 곳에 대한 정보 등을 다루고 있다.
서울시 의회 감사 현장에서 오간 얘기 한 토막
지난 2003년 11월, 서울시 의회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서울 시립 직업전문학교 졸업생들의 ‘저임금·중노동’ 상황을 두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민주노동당 심재옥 의원 간에 설전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시가 심 의원에게 제출한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따르면 시립 엘림 직업전문학교 2002년도 졸업생들은 이들이 취업한 55개 업체 가운데 무려 45%인 25곳에서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거나 근로시간 규정을 초과해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래는 이 상황을 두고 의원들 간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심재옥 의원 : “이렇게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노동시간도 법을 위반하고 있는데 취업자들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고 설문조사에서 답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들의 근로조건이 법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각 학교 공히 노동법 관련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차로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법, 고용보험법 같은 노동조건과 관련된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각 학교별로 공과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청합니다.
안병소 위원장 : “그런데 법을 준수하면 하나도 취업할 수가 없어요. 간신히 기능공 전에 훈련을 받았는데 이 학생을 노동근로조건법에 전부 맞춰서 데려다 쓰려면 쓰고 말려면 말아라 그러면 어떻게 취업이 됩니까?” 김종문 의원 : “심재옥 위원님이 얘기하는 것은 직업학교에다가 노동의식화를 시키라는 얘기하고 똑같습니다.
” ... ... 김종문 의원 : “직업학교, 이것도 학교잖아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왜 설립되는 것이죠?” 최영 산업국장 : “선생님들 교사 부분이죠. 그것은 법에 보장되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김종문 의원 : “그러면 일반 우리 학교에도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것입니까?” 최영 산업국장 : “지금 현재 전교조라고 있습니다.
김종문 의원 : “그것하고는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최영 산업국장 : “전교조도 제가 알고 있기로는…” 김종문 의원 : “물론 비슷한 성격인데, 그러면 이 선생님들은 전교조와는 관계없이 별도의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 것이죠?” 최영 산업국장 :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김종문 의원 : “그런데 그것이 산업국에서는 용인되고 있는 것입니까? 좀 전에 심재옥 의원께서도 그런 질의를 많이 했습니다만 의식화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요인이 있거든요.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조합 때문에 망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산업국의 입장을 말씀해주세요.” 최영 산업국장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산업국장으로서는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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